(기자의눈)구제역 책임 피하려는 정부의 '능청스런 변명'

입력 : 2011-01-26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이자영기자] ‘정부 발표에 의하면’ 전국을 휩쓸고 있는 구제역 대란이 처음 신고된 것은 지난해 11월29일이었습니다.
 
두 달여 만에 경남과 전라를 제외한 전국 8개 시도, 63개 시군의 축산업은 초토화되다시피 했습니다. 이 기간동안 우리나라 전체 돼지의 5분의 1이 땅 속에 산채로 묻혔고, 매몰된 소와 돼지는 250만마리를 넘었습니다. 지금도 매일 소.돼지 10만~20만 마리가 매몰되고 있습니다.
 
축산농가의 눈물은 키우던 소, 돼지 매몰 때문만은 아닙니다. 청정지역 지위를 상실한 국내 축산업은 큰 타격을 입고 있습니다. 2조원이라는 막대한 재정이 날아갔고 소, 돼지 값도 들썩이고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재앙같은 이 가축질병이 언제, 어디까지 퍼질지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정부의 방역대책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초동 대응 미흡과 이후의 속수무책이 언론의 질타를 받았습니다. 이런 비판에 침묵을 지키던 정부가 25일 처음으로 '구제역 확산 원인 분석 결과'라는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구제역의 첫 발생신고부터 지금까지 확산된 경로에 대한 분석 자료입니다.
 
정부는 여기서 초동 방역조치 미흡을 인정했습니다. 지난 11월 중순경에 발생했던 구제역을 제때에 발견하지 못해 초기 대응이 늦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발표 내용을 들어보면 반성의 목소리가 솔직하지 않습니다. 무책임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정부는 분석결과를 통해 구제역이 사실상 11월 28일이 아닌 23일에 처음 접수됐다고 밝혔습니다. 23일 안동의 한 농가로부터 신고를 접수한 방역당국자는 2가지 간단한 검사로 ‘구제역 아님’ 결정을 내리고 돌아갔지만 늦은 검사 결과 구제역으로 밝혀졌습니다. 28일 다른 농가에서 구제역 의심신고가 접수되자 부랴부랴 재조사를 실시한 겁니다. 치명적인 실수이었고, 결과적으로 업무 태만이었습니다.
 
돼지의 바이러스 배출량은 소의 1000배로, 전염속도가 엄청납니다. 방역당국의 실수와 업무태만으로 인한 5~6일간의 ‘방역공백’은 결국 구제역 바이러스가 날개를 달고 전국으로 급속히 확산하게 만든 최초의 요인이 되었습니다. 
 
정부는 그간 최초 구제역 발생신고일을 ‘23일’이 아닌 ‘29일’이라고 밝혀왔습니다. 첫 신고를 한 안동 농가와 네티즌들이 ‘최초 발생신고를 은폐하고 신고시간도 조작했다’는 의혹제기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해 왔습니다. 지금도 정부는 최초 신고일을 ‘23일’이 아닌 ‘29일’이라고 주장하는 것 같습니다. ‘신고일’이 아니라 ‘신고접수와 확진판정일’로 따져야 한다는 주장이 능청스럽기까지 합니다. 
 
이는 23일 첫 신고접수 당시 생긴 방역당국자의 실수와 무능력에 모든 책임을 돌리고, 구제역 발생 보고과정에서 생긴 치명적 잘못을 은폐하려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이후 벌어진 정부의 ‘방역공백’에 대해서도 책임을 덮으려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을 줍니다. 
 
이런 자세로는 구제역 확산을 저지할 책임있는 대책을 기대하기 힘듭니다.정부가 솔직하고 책임있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구제역 대란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감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구제역보다 더 무서운 것은 정부에 대한 ‘불신’입니다. 
 
 
뉴스토마토 이자영 기자 leejayou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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