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성빈 기자] 최근 일본 대지진 여파로 연일 엔화값이 폭등하고 있는 가운데 그 파장이 국내 산업계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쏠린다.
전기전자 업계를 비롯해 자동차, 철강, 조선 등 업계에서는 전반적으로 엔고 현상으로 경쟁력 우위의 효과를 얻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수혜의 지속 여부가 엔화의 정상화 시점에 달려있는 만큼 향후 시장 상황을 주의깊게 살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 전기전자 업계 "IT 수출 증대효과 있지만 오래가지 않을 것"
전기전자 업계에서는 최근 엔고 현상으로 인해 국내기업들의 수출 증대 효과가 있겠지만 오래가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정대선 삼성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엔·달러 환율이 1% 하락(엔화가치가 1% 상승)하면 국내 수출은 0.95% 증가하고 정보통신(IT) 수출은 1.32% 증가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G7 국가들의 엔화 공동개입 발표로 엔화가 다시 약세로 돌아설 가능성이 큰 만큼 장기간 엔고 반사이익을 누리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원석
NH투자증권(016420) 연구원은 "낸드플래시, 2차전지 등 일본과 경쟁하는 분야에서는 분명 나쁘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며 "그보다 관건은 엔고가 언제까지 지속될까 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실제 업계에서는 급격한 환율 변동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 두고 있다.
삼성전자(005930) 관계자는 "엔화 강세 현상에 따라 일본으로부터 구매하는 원자재나 설비에 드는 비용 부담이 증가하기는 하나 전체 비중이 크지 않기 때문에 큰 영향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또 특정 통화변동에 영향받지 않도록 환헷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재고도 많이 있는 상황이라 웨이퍼 등 재료 수입에 크게 영향받지는 않을 것"이라며 "이밖에도 원가절감, 물류개선 등으로 꾸준히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어 비용에는 별 영향이 없다"고 덧붙였다.
◇ 자동차 업계 "엔고로 일본에 비해 가격경쟁력 확보"
일본 업체들과 글로벌 시장에서 가장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는 분야가 바로 자동차다. 엔고 현상으로 가장 큰 효과를 보는 곳도 국내 자동차 업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일본 자동차 메이커들은 적자에서 지난해 흑자전환에 성공했으며 올해 신흥시장을 비롯한 글로벌 시장에서 본격적인 회복세를 띄게 될 것으로 예상됐다.
그렇지만 지진으로 인한 생산 불안과 엔고까지 겹침으로써 일본업체들의 경쟁력 하락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 업계 역시 엔고로 인한 효과는 '지속 기간'이 관건이다.
지난 1996년 고베지진 당시 엔화는 3개월간 강세를 보이다가 이후 진정세를 보이면서 급격히 하락한 바 있다.
이번에도 지진 피해가 어느 정도 수습돼 엔화가치가 제자리를 찾을 경우에는 상대적으로는 우리 자동차기업의 경쟁력이 타격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 철강 업계 "일본 직수출 비중 적어..영향 미미"
국내 철강업계의 경우 엔화강세로 받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국내 철강업체들이 일본에 직접 수출하는 비중이 낮기 때문에 엔고 현상으로 인해 국내 기업들의 수익성이 높아진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분야별로 보면 수입을 주로 하는 냉연업체의 경우 국내 거의 모든 업체들이 달러로 계약을 하고 있어 엔화강세로 인한 직접적인 영향은 없다.
현대하이스코(010520) 관계자는 "전체물량의 약 30%인 70~80만톤 정도를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지만 엔화가 아닌 달러로 거래하기 때문에 실적에 큰 영향을 미치진 않는다"고 말했다.
이창목
우리투자증권(005940) 연구원은 "포스코는 전체 철강재의 30%를 수출하고 있지만 이 중 일본 수출은 10%도 되지 않고 매출로 따지면 2~3% 수준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만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엔고 현상으로 인해 해외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이 앞서 시장 점유율을 높일 수 있고 그에 따른 판매증가가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 조선 업계 "국내업계 수혜 확실..조선 시장점유율 더 확장"
조선업체들은 적지 않은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엔고현상으로 일본 해운선사까지도 우리 조선업체의 문을 두드릴 것으로 예상된다.
엄경아
신영증권(001720) 연구원은 "엔고 현상이 지속되면 상대적으로 일본의 원가 경쟁력이 떨어지게 된다"며 "따라서 엔고 지속으로 자국내 발주를 내던 일본 해운선사들이 우리나라 조선소들로 방향을 트는 현상이 심화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실제로 자국내 발주만을 고집하던 일본의 다이치 십핑은 계속되는 엔고 현상을 이기지 못하고 최근 전례없이
현대미포조선(010620)에 선박을 발주한 바 있다.
이번 엔고 현상으로 인해 일본 조선사들이 아예 회복불능 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석제
미래에셋증권(037620) 연구원은 "지진으로 인한 엔고 현상 이전에도 이미 엔고가 지속돼 옴으로써 일본 조선업의 포션이 크게 줄어든 상태였다"며 "이번 엔고 지속으로 시장 점유율을 우리나라에 대부분 넘겨주게 돼 일본 조선업체가 회복불능 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이 연구원은 "정상화 시점이 온다고 하더라도 원엔 환율 격차로 인해 수주가 더욱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