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④) 사회적 강자위한 임대차제도..재정비 시급

저소득층 주거비용 급등..주거환경 하향세
공공성 결여, 사회적 약자 위한 제도는 없다

입력 : 2011-09-20 오후 4:02:42
[뉴스토마토 황민규기자] '내집 없는 설움'은 선진국 진입이 코앞(?)이라는 요즘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사상 최악의 전세대란까지 겹치면서 전세가 월세로 급속도로 전환됨에 따라 서민들의 보호막이 사라지고 있다.
 
최근 통계청의 아파트 거주 가구의 연령별, 점유형태별 현황'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아파트 가구주의 연령별 주거 점유형태를 분석한 결과 20~30대의 자가나 전세거주 비율이 줄고 월세전환이 대폭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30대 가구주들은 자가 비율이 3.4%포인트 감소했는데 특히 월세전환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경제력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계층일수록 남의 집에 세들어 사는 경우가 더 많아진 것이다.
 
◇ 서울서 12만 가구 합판칸막이 非주택서 거주.."그래도 다주택자만 챙겨?"
 
게다가 극심한 주거불안에 시달리는 주거취약계층도 여전히 문제다. 통계청에 따르면 서울에서만 약 10만명 정도가 고시원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이들은 한달에 주거비로 약 20만원씩 내면서 창도 없는 합판 칸막이 1평방에서 살고 있다.
 
오래전부터 도심지 일용노동자들의 거처였던 쪽방, 시내 구석구석에 위치한 남루한 여인숙과 같은 비(非)주택에서 월세나 일세로 살아가는 가구까지 합치면 서울에서 약 3%, 즉 12만여가구에 육박한다.
 
월세는 형편이 어려운 사람일수록 장·단기적으로 재정적 부담이 더 크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최저소득계층들은 수입의 거의 절반 이상을 임대료로 지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서민층의 주거임대료 부담은 매년 더 늘어가고 있다.
 
◇ 주거비 부담 매년 늘어..`자가->전세->월세`로 주거환경 하향세 뚜렷
 
고소득층의 부담이 줄어드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운영하는 복지패널 분석에 따르면 최근 4년간 저소득층은 '자가에서 전세, 전세에서 월세'로 내려가는 등 주거환경 하향세가 뚜렷하다.
 
이는 월세 확대와 소득 양극화 영향도 있지만 뉴타운, 재개발 사업 등으로 인해 서민들이 살아갈 주거공간이 줄어든 탓도 큰 것으로 분석된다.
 
현재 재개발 사업의 원주민 재정착률이 15%내외임을 고려할 때 재개발이나 뉴타운 사업 자체는 서민들과는 사실상 무관한 사업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주거 정책에 '공공성'이 더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주원 나눔과 미래 지역사업국장은 "영국은 뉴타운을 만드는데 보통 20~30년씩 걸리는데 이는 단순히 주택을 공급하는 것뿐만 아니라 커뮤니티 활성화와 일자리 만들기까지 포함하기 때문"이라며 "현재 우리나라처럼 물리적인 환경개선에만 집중하는 것은 기존의 일자리와 커뮤니티를 해체하는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김수현 세종대 교수는 "재개발, 뉴타운사업에 서민용 주택공급을 늘려야 하는데 원래 서민들이 살던 곳에 고급주택만 짓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재개발, 뉴타운사업시 공공임대주택을 20% 이상 포함시켜야하고 하루 빨리 LH를 정상화시켜 보금자리 공급을 재개해야한다"고 강조했다.
 
◇ 유럽식 주거복지 핵심은 민간·공공임대주택 '병용'
 
물론 한국주택토지공사(LH)에 국가 전체의 주택공급을 일임할 수는 없다. '복지의 천국'으로 알려진 유럽도 국가가 직접 나서서 주택을 공급하는 공공임대주택의 비율이 그리 높은 편은 아니다.
 
유럽 선진국들의 경우 한때 공공임대주택이  민간임대를 대체하는 공적개입 수단으로 강력히 추진돼 1960~1970년대의 이른바 복지국가의 상징정책으로 각인된 바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복지정책이 가장 활발했던 1970년대까지 공공임대주택이 중위소득 이상의 계층까지 입주하는 대중적 형태로 성장했지만 1980년대 들어 자가소유 확대 정책과 함께 공공임대주택은 상대적으로 축소됐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국가에서 공공임대주택은 서민·저소득층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으로 기능하고 있다.
 
민간임대주택은 전반적으로 주택 자체가 부족했던 산업화 초기에는 도시 노동자 주거공간으로 기능했고, 최근에는 도시인들의 빈번한 직장 이동, 1인 가구 증가 등의 사회 변화 속에서 그 지평을 더욱 넓혀가고 있다.
 
하지만 유럽에서 민간임대주택은 한국처럼 급격한 가격변동성을 보이거나 주거불안을 가중시키는 요인이 아니라 오히려 주거 안정성과 질을 높여온 것으로 평가된다.
 
이는 임대차 규제제도를 통해 민간임대를 안정시키면서 임대료 보조제도의 시행을 통해 민간임대를 촉진하거나 주거수준을 높이는 정책이 병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 일부 국가는 공공임대주택 비율이 10%도 채 되지 않지만 상당히 안정된 주택시장을 유지하고 있다. 국가가 꼭 임대시장에 개입해 직접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지 않더라도 규제제도 정비를 통해 국민의 주거안정성을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경우 국토 면적상 공공임대주택을 신축할 수 있는 여지가 별로 없다.
 
유일한 방법은 보금자리주택사업처럼 기존의 그린벨트 구역을 파괴하는 대규모 개발 뿐인데 이미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은 상황이라면 이런 식의 환경파괴를 야기하는 것보다는 이미 준공된 공공주택을 임대방식으로 활용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김성달 부동산국책 사업팀장은 "참여정부때 수도권에 신도시 200만가구를 공급하는 계획도 처음에는 임대주택으로 하려고 했었지만 결국엔 일반분양으로 팔려나가 버렸다"며 "공공임대를 목적으로 지어놓고 결국엔 판매용으로 나간다는 것이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 '과잉자율성'이 문제라면, 답은 '규제' 뿐
 
민간임대주택이 전체 주거 비율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독일은 주택가격이 급격한 등락세를 보인다거나 서민·저소득층이 주거불안에 시달리는 일은 거의 없다.
 
민간임대가 많다는 것은 다주택 소유자가 많다는 의미인데 비슷한 임대차 시장구조를 가진 한국은 전셋값 폭등, 주거 불안 문제 등 독일과 극명한 대비를 나타낸다.
 
이같은 대비는 '규제'의 차이다. 독일은 세입자 보호를 위한 다양한 안전장치를 두고 있기 때문에 임대기간이 안정된 것은 물론이고 임대전용주택에 대해서는 자동계약 갱신제가 적용된다.
 
재계약 시에는 당연히 종전 임대료보다 일정비율 이상 올리지 못하도록 돼 있으며 신규 계약 시에도 인근 주택의 임대료 수준을 반영하도록 되어 있다.
 
또 세입자에게 소득의 일정비율 이상 임대료를 지출할 경우 임대료를 보조해주고 있다.
 
김수현 교수는 "안정된 주거형태를 갖춘 국가들은 임대전용주택 등록, 임대소득세 부과, 자동계약갱신제, 임대료 인상 상한제, 임대료 불복신고제 등 임대료 보조제도, 가옥주 지원제도 등이 패키지로 구성돼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우리나라 대부분의 '집주인'은 임대사업자가 아닌 다주택자 및 무등록임대사업자들이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세입자들은 임대차와 관련된 모든 계약사항에서 불리한 위치에 서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한국의 임대차 구조의 불평등성과 집주인의 과잉자율성을 규제할만한 수단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김성달 팀장은 "현행 세제는 전·월세소득에 대해서 세금부과 '안한다'가 아니라 '못한다'는 입장인데 사실 알아내려면 얼마든지 알아낼 수 있다"며 "집주인은 소득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는게 당연하고, 세입자는 소득공제를 받게 하는 등 전반적인 임대차 시장 제도의 정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이명박 대통령의 공약대로 임대시장 정상화를 위해 임대시장을 투명성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전월세를 벌어들인 소득세를 부과하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주거보조비 정책도 확대되는 것이 옳다"고 덧붙였다.
 
뉴스토마토 황민규 기자 feis1@etomato.com

- Copyrights ⓒ 뉴스토마토 (www.newstomato.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황민규 기자
황민규기자의 다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