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황인표기자] 지난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미국 금융권에서 제기된 금융회사들의 '약탈적 대출'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한국에서도 높아지고 있다.
당시 미국의 은행들은 집값의 90%까지 대출을 해줬는데, 대출을 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이 빚을 갚을 능력은 없으면서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다가 나중에 은행에 집을 뺏기고 거리로 나앉거나 도시 외곽의 텐트촌으로 쫓겨났다. 이후 미국에서는 은행들의 '약탈적 대출(predatory lending)'이 도마 위에 올랐다.
'약탈적 대출'이란 이렇듯 빚 갚을 능력이 없는 고객에게 돈을 빌려 준 후 비싼 연체료를 내게 하거나 담보물을 압류하는 대출을 말한다.
이런 모습이 한국에서도 재연되고 있다. 국내 은행들이 주택을 담보로 돈을 빌려준 규모가 무려 300조원에 달한다. 은행들은 저금리와 부동산 거품에 편승하면서 분양업체들과 함께 대대적인 주택담보대출에 나섰다.
지난 3분기말 현재 전체 가계대출의 70% 가까이가 주택담보대출이었다. 은행으로서는 '가장 손쉽고도 안전한 장사'였기 때문이다.
◇ 소득 감소에 부동산 버블 꺼지면 '위험'
한국은 대출에 있어 총부채상환비율, 즉 DTI를 적용하고 있다.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연간 상환액이 서울은 연 소득 대비 65%(투기지역 55%)를 넘지 못하게 규제하고 있다.
그러나 만기를 최장 30년까지 고무줄처럼 늘리면 대출액수는 크게 늘어난다. 소득증빙이 어려워도 4인가구 기준 최저생계비 1500여만원을 적용해 대출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실직, 급여 감소 등으로 대출이자를 내지 못하거나 집값이 하락해 담보가치가 떨어질 경우 결국 은행의 압류를 피할 수 없다.
실제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2분기 실질 국민총소득(GNI) 증가율은 전년동기대비 0.6%로 2009년 2분기 0%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기존 낙관론자 조차 향후 부동산 경기를 어둡게 보는 마당에 많은 서민들이 은행빚에 허덕일 수 있다는 얘기다.
<개인부채추이>
(자료 : 한국은행 / 단위 : 조원)
은행의 약탈적 대출은 과도한 '이자놀이'에서도 드러난다.
작년까지 2%대였던 예대마진(대출이자에서 예금이자를 뺀 이익)은 올해 3%에 육박하고 있다.
부당한 이자를 고객에게 전가하다 이제서야 시정되기도 했다. 지난달 금융감독원은 예금담보대출에 매겨온 10%대 후반의 높은 연체이자를 대폭 내리도록 시중은행에 지시했다. 예금이라는 확실한 담보가 있는데도 높은 연체 이자를 물리는 은행들의 '탐욕'에 뒤늦게 제동을 건 것이다.
제대로 된 설명 없이 금융상품을 파는 ‘불완전 판매’도 약탈적 대출의 한 행태다. 지난 금융위기 전 멋 모르고 펀드에 가입한 다수 고객은 수익이 반토막 났다. 당시 시중은행 은행원이었던 김 모 씨(31)씨는 "할머니 등 연세가 있는 분들에게 '손해 볼 일 없다'며 펀드를 판 건 사실"이라며 "은행들이 이와 관련된 영업을 독려하는 분위기"였다고 발했다.
"은행이 절대 망할리 없다"며 판매한 저축은행 후순위채권은 영업정지로 휴지조각이 돼 버렸다. 금융소비자협회는 현재 불완전판매와 관련된 소송을 준비 중이다.
◇ 빚 권하는 정부와 금융사들
현재 가계빚은 비공식 통계를 포함해 1000조원을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개인 부채는 계속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한나라당 이한구 의원은 지난달 국감에서 "2007년 145.8%였던 가처분소득 대비 개인부채가 2008년과 2009년 각각 150.2%와 154.6%로 솟은 데 이어 지난해엔 157.6%로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부채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데 오히려 부채로 살찌고 있는 셈이다. 물가는 올해 매월 4%이상 올랐고 실질 소득은 줄어드면서, 빚을 내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사회가 되버렸다.
이런 상황에 정부는 빚을 권하고 있다. 가계 부채 관련 대책은 대부분 대출 완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일례로 전세난이 벌어지자 국토해양부는 '집값 안정책'이 아닌 대출금리 인하와 한도 확대 정책을 내밀었다.
은행들이 대출이자 인하는커녕 대출을 줄이고 나오자, 이번에는 제2금융권이 서민 약탈에 나섰다. 지난 8월 중순부터 시중은행들이 대출총량규제로 대출을 제한하자 일부 외국계 은행, 저축은행, 대부금융업계들이 고금리 상품을 파는데 혈안이 돼 있다.
◇ "은행, 고객의 능력을 파악해라"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자본시장통합법에서는 '적합성의 원칙' , 즉 고객의 상황에 따라 적합한 금융상품을 권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며 "은행 역시 이런 의무를 강제하도록 은행법이 개정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선대인 전 김광수경제연구소 부소장은 "DTI 적용 전 이뤄진 대출은 상환능력을 보지 않고 해 준 사실상 '약탈적 대출'"이라며 "거시경제차원에서 집값에 대한 기대감을 낮춰 단계적으로 가계빚 문제를 연착시켜야 하는데 정부는 부동산 거품을 계속 키우고 있다"며 비판했다.
미국에서는 불법 대부업체 등에 의한 약탈적 대출이 저소득층의 '빈곤 악순환' 문제로 연결된다고 보고 이를 막기 위한 입법을 마련했다. 1994년 '자택 자산보호법'을 제정한 후 최근 '책임대출법'을 마련해 약탈적 대출 규제에 나서고 있다. 빚을 갚을 능력을 조사하지 않고 대출을 했을 경우 해당기관은 제재를 받게 된다. 개인의 책임 보단 금융기관의 책무를 강조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