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퇴직연금 '부익부 빈익빈'..큰 형님 있어야

운용원리 앞서는 조직논리..제2의 저측銀 사태 우려

입력 : 2011-10-27 오후 3:58:34
[뉴스토마토 김세연기자] 퇴직연금 시장이 올해말 50조원에 육박할 정도로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시장은 급격하게 커지고 있지만 시장 내 경쟁은 오히려 줄어드는 모습이다.
 
대량 수급권자를 확보하고 있는 대기업 계열 사업자와 그렇지 못한 사업자간 격차가 더욱 더 빠르고 크게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 커지는 연금시장, '大兄' 덕에 나팔불어
 
올해 상반기까지 생명·손해보험사와 증권사를 포함한 51개 퇴직연금 사업자 중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소속인 사업자는 총 15개다.
 
누적 적립금은 14조359억원으로 각 그룹 계열사의 적립금은 전체의 45.9%인 6조4416억원이다. 증권·금융업계에서 가장 많은 퇴직연금 수탁사업자는 삼성그룹 계열사인 삼성생명으로 총 5조6187억원 중 계열사 적립금이 57.7%인 3조2396억원에 달한다.
 
전체 적립금 중 계열사 적립금의 비중을 따져보면 롯데그룹의 롯데손해보험이 전체(2353억원)의 95.4%인 2245억원을 그룹 산하 계열사로부터 위탁받고 있다.
 
전체 시장의 20%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증권가에서 대기업 계열의 증권사는 현대차(005380)HMC투자증권(001500)을 비롯해, 현대중공업(009540)의 하이투자증권, 삼성의 삼성증권(016360), 현대그룹의 현대증권(003450), 한국투자금융의 한국투자증권, 미래에셋의 미래에셋증권 등 6개사다.
 
◇ 2011년 상반기 대기업 소속 증권사의 계열사별 퇴직연금 적립현황
<자료 = 금융감독원> 
 
이들 6개 대기업계열 증권사의 퇴직연금 적립금은 4조9852억원이며 이가운데 계열사에서 들어온 적립금은 2조3510억원이다.
 
계열사별 적립금 비중을 살펴보면 HMC투자증권은 전체 적립금의 89.6%인 1조7003억원이 계열사로부터 적립됐고, 하이투자증권도 전체 적립금의 82.7인 5492억원이 현대중공업으로부터 들어왔다.
 
현대증권과 삼성증권도 총 적립금중 계열사 적립금 비중이 각각 11.3%(272억원), 11.2%(598억원)으로 두 자릿수에 달했고, 한국투자증권과 미래에셋증권은 각각 2.6(134억원), 0.1%(11억원)에 그쳤다.
 
◇ 그룹 증권사 효과 '톡톡'..업계 수위 '한 방'
 
특히 지난 2008년 시장에 뛰어든 HMC투자증권의 약진이 눈에 띈다.
 
HMC투자증권은 올해 상반기까지 가장 높은 1조8974억원의 퇴직연금 누적 적립금을 기록하며 증권사중 가장 많은 수탁기업으로 올라섰다.
 
지난해 증권업계중 5위에 머물렀던 HMC투자증권은 5만5000명에 육박하는 현대차 임직원들의 퇴직연금 1조7003억원이 몰리며 단숨에 업계 1위 기업으로 올라섰다.
 
전체 적립금의 89.6% 수준으로 증권업계에서는 가장 높은 계열사 적립비중을 나타냈다.
 
업계 관계자들은 당분간 퇴직연금 시장에서 HMC의 독주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HMC투자증권의 경우 이미 가입한 현대차 외에 3만3000명에 달하는 기아차(000270)의 퇴직연금 가입도 눈 앞에 두고있기 때문에 당분간 퇴직연금 시장 증권사 1위는 상당기간 지속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 한 바구니에 담지마라..격언 안 먹히는 큰 형님
 
퇴직연금은 수탁금액의 운용을 통해 장래 적립금액의 수익율을 높이는 차원에서 운용되는 것이기에 운용 수익률이 높고 안정적인 운용이 평가잣대일 뿐 대기업 계열사 증권사냐 아니냐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등 정부도 대기업집단의 계열사간 퇴직연금 몰아주기 논란에 대해 ▲ 사업자 선정시 근로자 대표의 동의가 필요한 점 ▲ 운용 수수료 수익이 계열사간 지원금액에 비해 미비한 점 ▲ 퇴직연금 제안금리와 부가서비스에 대한 차별이 없는 점 등을 들어 '부당성 없음'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문제는 시장 논리가 아닌 기업논리로 막대한 퇴직연금이 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한 증권사의 퇴직연금 운용팀장은 "퇴직연금이란 근로자의 근속을 통해 마련된 재원을 회사 외부의 금융기관에 예치해 근로자의 수급권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됐다는 설립취지를 따진다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수급권자인 근로자의 사업자 선택권이 일부 제한됨은 물론 안정적 수급권도 저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계열사간 퇴직연금을 몰아주는 것은 결국 계열사에 부당이익을 제공한 것과 같은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사업자에 대한 공정한 경쟁을 사전에 제한한 셈"이라고 꼬집었다.
 
김병덕 한국금융연구원 선임 연구위원 "저축은행 사태와 같은 연쇄적인 퇴직연금 시장의 부실이 나타날 수 있다"며 "제도적 측면에서 이를 규제하고 감시해야하는 정부의 직무유기도 크다"고 강조했다.
 
김 연구위원은 "자산운용 측면보다 편법 지원의 우려가 큰 것이 사실"이라며 "예금자 보호나 퇴직연금 부실에 대한 보장 기구가 없는 상황에서 금산분리의 원칙을 감안할 때 계열사의 퇴직연금 수탁분을 일정부분 제한하는 등의 규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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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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