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형주기자] 최근
삼성전자(005930) 등과의 글로벌 특허전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애플이 '궁여지책(窮餘之策)' 끝에 '특허괴물'을 소송전에 끌어들였다.
지난 주말 삼성·모토로라 등 경쟁사들과의 특허소송에서 잇따라 패하고, 무리한 소송행진이 자사 브랜드 이미지만 실추시키고 있다고 판단, 자신은 전선에서 빠지고 대리를 내세우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12일 테크크런치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애플은 디지튜드 이노베이션(Digitude Innovation)과 손잡고 특허권을 대거 양도했다.
디지튜드 이노베이션은 지난해 설립된 특허 전문 업체로, 상품의 제조나 판매는 하지 않으면서 자신이 보유한 특허만을 무기로 제조사로부터 받는 특허 사용료를 주수익으로 삼는 특허괴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이 업체는 지난 2일 삼성전자·
LG전자(066570)·HTC 등 스마트폰 업체들을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제소하면서, 삼성-애플 소송전에도 새로운 복병으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특허권 양도는 애플의 경쟁사들에 대한 공세 강화 차원이 아닌 방어적 성격에 가깝다는 게 국내 법조·전자업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한 국제특허 변리사는 "소송전을 통해 애플은 제품의 질로 승부하기보다는 무리한 소송으로 기업 인지도에 타격을 입었다는 비난을 받아 왔다"며 "특허권 양도는 더이상 브랜드 가치에 데미지를 주지 않겠다는 궁여지책에 가깝다"고 진단했다.
특허 전문 회사에 권리을 이양하면 글로벌 기업이 특허에만 치중한다는 비판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고, 패소했을 때의 책임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다는 판단이 섰을 것이란 분석이다.
그는 또 "반대로 애플과의 특허전에서 가장 수혜를 입은 업체는 아마도 삼성전자일 것"이라며 "삼성은 애플과의 지속적인 대립구도를 통해 '갤럭시'라는 제품명이 해외 언론에 꾸준히 노출되는 등 광고효과까지 얻었다"고 말했다.
전자업계 관계자도 "애플이 자기 돈 들여가며 소송을 걸었지만 얻은 것은 없고, 결국 삼성 등 경쟁사 제품 홍보만 해준 꼴이 됐다는 고민을 했을 것"이라며 "무엇보다 스마트폰 시장 내 점유율 회복이 시급하다보니 비로소 특허에선 한발 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따라서 애플의 행보가 언뜻 삼성전자에 불리하지 않을 것처럼도 보이지만, 경우에 따라선 삼성에게 상당히 기운 빠지는 전략일 수 있다.
삼성전자는 그간 애플과의 소송전에서 2승5패의 전적으로 열세지만, 소송 기간 애플 덕에 누린 브랜드 인지도 확산 효과는 소송에 들인 비용을 만회하고도 남는다는 게 전자업계 분석이다. 하지만 앞으로의 승부에서 애플이 뒤로 빠지면, 삼성의 상대는 특허괴물 뿐이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그간 소송전을 통해 시장에선 갤럭시탭 등 삼성 제품이 애플 아이패드 등과 겨룰만한 제품이라는 인식에 더해, 애플이 삼성으로 인해 상당히 긴장하고 있다는 인식도 심어졌는데 이제 삼성은 실체(애플)없는 전쟁을 치러야 한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측은 "우리가 가진 통신·기술특허 등 고유 특허가 많기 때문에 특허괴물의 출현에 대해 크게 신경쓰고 있진 않다"며 "다른 특허괴물과 손잡고 같은 수법으로 대응하는 등의 무리한 계획은 더더욱 세운 바 없다"고 말했다.
한편 애플이 디지튜드 이노베이션과의 계약을 통해 특허권을 어느 정도 양도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조만간 삼성과의 소송에서 디지튜드가 원고로 나설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에는 업계에 이견이 없다.
당장 이번주로 예정된 일본, 이탈리아 등에서의 특허소송에서 디지튜드가 모습을 드러낼 수도 있다.
애플이 디지튜드에 이양한 권한의 정도에 따라 남은 소송전에서 디지튜드가 애플 측 대리인과 함께 원고로 참여할 수도 있고, 애플 없이 디지튜드 측만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