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 1조달러를 돌파했다. 축하할 일이다. 하지만 그 성장의 열매는 대기업이 독식하고 있다. 대기업들이 이뤄낸 성과라는 것도 분명하지만, 대기업들의 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다른 많은 부분을 희생한 것도 사실이다. 이런 성장정책을 추구한 것은 이른바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 때문이다. 우리나라 경제가 개발도상국 단계에 있을 때는 낙수효과가 일리있었다. 수출기업의 성장은 투자를 늘렸고, 일자리를 늘리고, 소비를 늘리고, 세수를 늘렸다. 하지만 무역대국으로 성장한 오늘날 더 이상 낙수효과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는 낙수효과를 전제로 대기업과 수출기업 중심의 경제정책을 고수했다. 그 결과 한국경제는 기형적인 구조가 심화되고 있다. 이에 고용과 투자, 소비, 세금 등 각 부문 별로 낙수효과가 얼마나 허구인지를 짚어보고, 바람직한 국민경제 방향을 모색한다. [편집자주]
[뉴스토마토 임애신기자] 전라남도 장성에 사는 박모씨는(61세)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을 하지 못하는 딸에게 "아빠가 직장을 구하던 시절에는 '어디로 갈까'가 고민이었는데 지금은 '취업이 되냐 안되냐'가 문제구나"라는 말을 했다.
우리나라가 무역으로 인해 경제성장에 가속도가 붙던 60~80년대에 기업들은 젊은 인력 채용에 박차를 가했다.
수출이 잘되면 생산량이 늘고 경제가 성장하면서 고용도 창출되는 낙수효과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지금처럼 일자리가 없어서 어쩔 줄 몰라하는 일은 찾아보기 힘들었던 것이다.
65년 만에 교역규모가 100위권 밖에서 세계 9위권으로 올라 '무역 1조달러'를 달성하는 등 비약적인 경제 성장에도 불구하고 일자리는 좀처럼 늘지 않고 있다. 고용 없는 성장과 내수 부진은 무역 1조 달러 시대의 그늘인 셈이다.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정부가 무역 규모 1조달러 달성을 자랑했지만 우리나라 영세 자영업자들은 하루 끼니를 걱정해야 할 지경"이라며 "수출이 잘되면 일자리가 늘고 중소기업 생산이 늘어난다는 논리가 통하지 않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지적했다.
◇ 왜 성장하는만큼 고용 창출 없나?
2000년대 들어 수출은 늘고 있지만 일자리 창출은 줄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00~2008년 수출액은 2.5배 증가했지만 취업은 1.2배·고용인원은 1.3배 느는 데 그쳤다.
이는 기업들이 무역으로 벌어들인 돈을 생산성 높은 해외로 투자하기 때문이다. 저렴한 인건비와 임대비를 위해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고 있어 국민들의 일자리로 연결되지 않고 있다.
수출로 인한 고용 창출도 줄었다. 수출이 늘었을 때 얼마나 많은 고용이 창출되는지를 보여주는 수출 취업유발계수가 수출 10억원당 9.8명으로 나타났다.
수출액이 10억원 늘어날 때마다 9.8명의 신규 고용이 창출된다는 뜻이다. 2000년도에 15.3명이었던 것에 비해 11년만에 36% 줄었다.
수입 의존도가 높은 수출 방식 또한 낙수 효과를 줄이는 요인이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중소기업이 주로 담당하는 중간재 수입 비율은 지난 10년 동안 32.3%에서 37.4%로 높아졌다. 독일 24%, 중국 20%, 일본 17%, 미국 15%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즉, 1000원을 수출하면 533원만 남고 나머지 467원은 원자재 수입으로 빠져나가 인건비 등을 주기에도 빠듯한 상황인 것이다.
수출이 정보기술(IT)과 자동차·선박 등 특정 품목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도 문제다. 전체 수출에서 이들 상위 5개 품목이 차지하는 비중이 42%에 달한다.
그 만큼 대기업 의존도가 높아져 수출이 늘어나도 대기업에만 혜택이 집중돼 고용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이다.
◇ 그럼에도 '고용 대박'이라는 정부
지식경제부가 발표한 '무역의 성과·과제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 19~39세 국민들은 무역 1조달러 달성으로 인해 경제가 성장하고 국가 위상이 높아졌다는 답이 80% 정도 더 많았다.
그러나 고용 창출과 국민 후생은 이에 미치지 못한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무역으로 고용창출이 발생했다'는 답은 61.7%인 반면 '그렇지 않다'는 답은 38.3%로 집계됐다. 특히, 교수와 연구원·재계 등 전문가들은 '무역이 국민후생 증대에 대해 기여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고작 4.7%에 불과했다.
현재 청년 실업은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통계청이 밝힌 1~10월 통계를 보면 취업을 하고 싶은데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공식 청년 실업자는 32만4000명, 실업률은 7.7%다.
일자리를 구하려는 의지조차 사라져 경제활동 인구에 잡히지 않는 사람들까지 포함할 경우 실업자가 110만1000명으로 급증한다고 현대경제연구원은 분석했다.
이를 감안하면 체감 실업률은 22.1%로 정부 통계보다 3배나 많아진다. 2003년과 비교해 체감 실업률은 17.7%에서 8년 사이 4.4% 포인트 높아졌다.
일자리의 질적인 측면이 악화되기도 했다. 올해 8월 비정규직이 600만명을 넘어섰다. 임금 근로자 3명 중 1명 꼴이 비정규직이라는 소리다. 비정규직 중 고학력의 비중도 30%를 넘어섰다. 정규직과의 비교해 월급은 약 100만원 가량 적으며 복지도 열악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15~24세의 경제활동참가율은 25.5%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평균 47.4%에 훨씬 못 미친다.
청년 고용률이 향후 취업률의 바로미터가 된다는 점에서 미래가 밝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정부는 통계를 기반으로 '고용이 대박났다'고 외치고 있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8월 취업자가 49만명 늘었을 때 '고용 서프라이스'라고 하더니 11월에는 '고용 대박'이라고 평가했다.
박 장관은 "고용률이 증가하고 실업률이 줄면서 그동안 고용통계를 둘러싼 실업률 사각지대 논란도 깨끗이 해소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잠재적 실업자를 비경제활동인구로 제외하는 등 실업통계의 허점을 감안하고 연령대별 취업자 수와 비정규직 통계를 분석했을 때 '대박'과는 거리가 멀어보인다고 학계과 정계에서는 비판했다.
◇ 앞으로도 고용은..'찬바람 예고'
당분간 세계적인 경제 불황이 예고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 고용시장에 더 찬바람을 몰고올 것으로 보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내놓은 내년 세계경제 전망치는 3.4%로 6개월 전보다 1.2%포인트 하향 조정됐다. 한국처럼 개방된 경제 구조에서는 성장과 고용에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은 "수출과 수입이 고용을 늘리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기본적으로 중소·중견기업이 수출 기업으로 육성되면 자연스럽게 일자리는 늘어난다"고 말했다.
경제전문가들은 고용을 늘려 수출 증가에 따른 파급효과가 가계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손민중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그동안 선택과 집중을 통해 산업을 육성해와
서 일정 부분에서 고용확대가 없고 생산 증가도 미미해 양극화 현상이 벌어졌다"며
"앞으로 산업정책은 중소기업 육성과 세제조정 등을 통해 탈락자를 보호해주는 대
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