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도 당위도 잃은 KBS 수신료 인상 요구

“국민 67% 수신료 인상 동의” vs “공영방송 역할부터”

입력 : 2012-02-02 오후 8:39:07
[뉴스토마토 김원정기자] 공영방송 KBS가 느닷없이 수신료 인상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여론의 싸늘한 비판을 사고 있다.
 
KBS는 지난 1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길환영 부사장이 직접 나서 "국민 67%가 수신료 1000원 인상에 찬성하고 국민 64%는 국회에 조속한 처리를 요구하고 있다“고 밝히는 등 수신료 1000원 인상을 재차 촉구했다.
 
이날 회견은 보도자료가 배포되기 전까지 업계에서 미리 알아채지 못했을 만큼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지난해 6월 국회에서 도청 파문과 뒤얽히며 수신료 인상안 자체가 유야무야 됐던 것에 비춰, 반년 만에 같은 카드를 다시 들고 여론전을 펴고 있는 KBS 행보는 이례적이라 할 만하다.
 
◇KBS 수신료 인상 촉구..왜 하필 이 시점에?
 
업계는 무엇보다 18대 국회가 이달 임시국회를 끝으로 실질적으로 끝이 난다는 점에서 이유를 찾고 있다.
 
앞서 지난달 여당 단독으로 ‘KBS 수신료 인상을 위한 여야소위원회 구성’ 안을 국회 상임위에서 통과시킴에 따라 KBS 입장에서는 수신료 인상안 자체가 폐기되지 않는 안전판이 마련됐다.
 
하지만 여야가 오는 16일 본회의를 끝으로 임시국회 일정을 매듭짓기로 함에 따라 이달 말까지 KBS 수신료 인상을 논의하자는 소위 구성 계획은 말 그대로 논의만 하다가 끝이 날 수 있는 상황에 처할 수 있기 때문에 KBS가 급하게 기자회견 일정을 잡았다는 설명이다.
 
이번 기자회견과 관련, KBS 안팎에서는 이래저래 코너로 몰린 김인규 사장의 절박함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하는 시각도 있다.
 
최근 KBS 구조노와 새노조가 ‘김인규 사람’으로 불리는 고대영 보도본부장을 ‘불신임’했고 사내여론에 떠밀려 고 본부장이 사의를 표하면서 김 사장 발등에도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김 사장은 더욱이 KBS 보도를 망가뜨린 장본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데다, 최근 케이블방송과 재송신 분쟁에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KBS 2TV 송출을 끊기게 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정권 말기라는 시점과 맞물려 전형적 낙하산 인사인 김 사장도 퇴진 압박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된 만큼 수신료 인상으로 일거에 상황을 반전시키겠다는 전략이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추락한 공정성..수신료 인상 명분이 없다
 
국회가 수신료를 1000원 인상하면 김 사장은 어찌됐든 ‘30년 만에 수신료를 인상한 사장’으로 체면을 세울 수 있다.
 
하지만 여론은 싸늘하다.
 
지난 연말 KBS는 여당과 하나가 돼 느닷없이 미디어렙법과 수신료 인상안을 연계 처리해야 한다는 여론전에 돌입했고 이 때문에 미디어렙법의 조속한 입법을 주장한 쪽에서 물귀신 작전을 편다는 비판을 받았다.
 
언론시민단체는 무엇보다 추락한 KBS의 공정성을 이유로 들어 수신료 인상은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업계 일각은 지난 달 KBS 2TV 정파 당시 반토막 난 프로그램 시청률을 근거로 국가기간방송의 직접 수신 비율이 턱없이 낫다는 점을 문제 삼고 있다.
 
수신료 인상을 요구하기에 앞서 공영방송 역할부터 제대로 이행하라는 주문이다.
 
길환영 부사장은 이에 대해 “KBS TV 수신료가 30년 동안 동결돼 있다 보니 사업이나 정책을 꾸려가기 힘들다”면서 “수신료가 인상되면 난시청 해소, 지배구조 개선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수신료 인상과 공영방송 역할을 견인하는 문제는 자칫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소모전으로 치달을 수 있지만 수신료를 재원 삼는 국내 유일의 공영방송으로서 역할이 미흡했다는 점에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국민 64%가 조속한 처리 원해?..설문 제대로 했나”
 
이런 가운데 KBS가 납득할 만한 세부 대안을 먼저 제시하지도 않은 채 국회 일정에 쫓겨 다분히 설문조사를 토대로 구걸하듯 수신료 인상을 촉구하는 게 방송계 맏형으로서 면이 서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워낙 급하게 추진하다 보니 일각에서는 설문 자체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KBS 방송문화연구소가 지난 달 9일부터 26일까지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면접 조사했다고 밝힌 설문 결과에 대해, 언론개혁시민연대는 KBS가 전체 9개 문항 가운데 수신료 부분만 기자회견에서 공개했다는 데 의혹을 제기하고 공개된 내용 역시 유도성 질문에 따른 답변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해당 설문은 국내 보다 수신료가 많게는 10배 이상 높은 영국 등을 비교해 KBS 수신료가 다른 나라에 비해 어느 정도 수준인지 묻고 있는 질문 등을 담고 있다.
 
업계와 학계는 30년 동안 동결된 KBS 수신료 인상 자체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찬성표를 던지는 입장이지만 지난해 수신료 인상 과정에서 불거진 도청 의혹 추문과 이번에 기습적으로 이뤄진 기자회견 등에서 공영방송 위상과 현실을 읽어내며 난처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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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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