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장사 좀 할만 하면…"..외곽으로 밀려나는 소상공인들

핵심상권서 임대료 뻥튀기는 '편법 컨설팅' 성행
영세업자들, 권리금 '폭탄'에 대기업 계열에 자리내줘

입력 : 2012-03-22 오전 11:20:11
[뉴스토마토 황민규기자] 서울 왕십리역 부근에서 의류 매장을 운영하던 김창익(가명·40세)씨는 임대 계약기간 만기가 다가오자 당초 건물주와 협의된 재계약을 위해 2000만원 가량을 은행에서 대출 받았다.
 
최근 인근지역에 뉴타운, 대형쇼핑몰 등이 들어서면서 유동인구가 급격히 늘었고, 김씨가 운영하는 가게도 매출액이 점점 늘어나 신바람이 나있던 터였다. 하지만 재계약을 일주일 앞두고 청천벽력 같은 통보를 받았다.
 
어느날 아침 건물주가 찾아와 가게 권리금으로 1억5000만원을 요구하더니, 당장 자금마련이 어렵다면 이달 중으로 가게를 빼야한다고 통보한 것이다. 김씨는 처음 듣는 권리금 얘기에 어안이 벙벙했지만 일방통행식 통보에 대처할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한 달 뒤 그는 가게를 정리해 왕십리역에서 20km 이상 떨어진 공업단지 상가로 가게를 이전했다. 원래 가게가 있던 자리에는 외국계 대형프랜차이즈 의류업체가 입점했고, 상가 내 다른 매장들 역시 대기업 계열 프랜차이즈 가맹점들이 속속 들어섰다.
  
◇대기업 핵심상권 장악 도우미는 '부동산컨설팅업체' 
 
서울 핵심상권인 강남역, 명동 등 매출이 우량한 상권에서 부동산 컨설팅업체들이 건물주들을 유혹해 기존 임차인을 내보내고 권리금, 임대료 등을 크게 올리는 식의 '편법 컨설팅'이 성행하고 있다.
 
거대 자본을 앞세운 대기업 프랜차이즈와 대형 의류브랜드, 커피브랜드 업체들이 입지와 상권이 좋은 점포를 끊임없이 찾는다는 점을 이용해 높은 임대료를 건물주에게 제시하고 기존의 개인 자영업자와 계약을 종료하게 만들어 중개 수수료를 챙기는 것이다.
 
이같은 부동산 컨설팅업체들은 공인중개사가 아닌 일반 영업사원을 대거 채용해 상가 건물이나 점포의 소유권, 임차권을 가진 이들과 접촉, 매물을 수집한 뒤 이를 팔아주는 방식으로 장사를 하고 있다.
 
강남역, 명동, 종로 등 초대형 상권들 외에도 노량진 역세권, 신촌·홍대 주변, 강남 테헤란로와 신사·논현동 일대 상권은 이런 임대료 폭등에 의해 개인 창업이 점차 감소하고 있는 대표적인 지역에 속한다.
 
노량진의 경우 대로변 점포들의 임대료 수준이 2000년대 이후 꾸준히 상승해 대로변에 위치한 20평대 매장의 임대료가 1000만원대에 육박하고 있으며, 신촌과 홍대의 경우에도 주요 입지의 임대료 수준이 3.3㎡당 50만원 가까이 형성되고 있다.
 
이같은 중개(컨설팅) 업체의 행위는 부동산 중개업법 위반 여부를 떠나 상가 시장과 창업 시장에 큰 부담을 주는 요소로 작용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안민석 에프알인베스트먼트 연구원은 "특정 지역에서 조금 장사가 된다 싶으면 건물주가 임대료·권리금 등을 말도 안되는 수준으로 끌어올려 자영업자를 쫓아낸 뒤 대기업 계열 가맹점을 끌어오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컨설팅 회사가 개입해 건물주·대기업으로부터 인센티브를 받은 뒤 시세를 조종해 소상공인을 내쫓는 경우가 90% 이상"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런 행태를 규제할 마땅한 방법이 없는 실정이다. 부동산 중개법상 '권리금'에 대한 명시적 규정이 없는데다, 임대료 상한규정도 없기 때문이다.
 
◇편법 '권리금 장사'도 성행
 
업계에서 성행하는 또 하나의 대표적인 편법은 이른바 ‘권리금 장사’다.
 
권리금 장사란 점포 임차권을 매매하는 과정에서 장사가 잘되는 입지에 위치한 점포에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까지 붙어 있는 권리금을 부풀려 이 때 발생된 차익을 가져가는 행태다.
 
예를 들면, 점주가 요구하는 권리금이 7000만원인 점포를 1억원이라고 소개하고 나머지 3000만원을 수수료로 챙기거나 건물주 혹은 프랜차이즈 본사 직원과 나눠가지는 방식이다.
 
대체로 점포의 임차권을 내놓는 개인점주들은 매출 하락과 높은 임대료라는 이중고에 못이겨 권리금을 일정 부분 포기하더라도 가급적 빠른 기간 내에 정리하고 싶어 한다.
 
컨설팅 업체들은 이런 점을 이용해 지역 사정에 어둡고 창업시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초보 창업자들에게 점포를 소개해 주면서 권리금을 부풀려 그 차액을 수익으로 취득하고 있다.
 
안 연구원은 "지나치게 높은 권리금은 창업 시장에 진입장벽을 형성하고 창업 실패 확률을 높이는 주된 요인"이라며 "상권의 임대료 수준이 매년 큰 폭으로 상승할 경우 결국 개인 창업자들은 점차 밀려나면서 대기업이 운영하는 직영점들만 살아남는 구조가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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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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