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송주연기자] 금융감독원은 올해를 '금융소비자보호 혁신의 해'로 삼아 소비자의 시각에서 다각적인 소비자보호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공헌했다.
하지만 올해 금감원이 추진하겠다고 밝힌 소비자보호 정책은 새로울 것이 없는데다 소비자들이 정책 시행 여부를 확인할 길이 없어 실효성 있는 정책 추진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 정책 재탕..새로운 개선 사항 발굴 필요
28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감원은 지난해 6월 금융소비자 피해 예방을 위해 이른바 '꺾기'(구속성예금 강요), 펀드 불완전판매 등을 중점 점검하겠다고 발표했다.
금감원은 "꺾기, 금융상품 불완전판매 등 금융회사의 고질적 부당영업 행위에 대한 점검을 지속적으로 실시해 왔으나 근절되지 않고 있다"며 "금융회사의 부당영업행위가 근절될 수 있도록 검사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지난 1월, 금감원은 업무설명회를 통해 올해 소비자보호를 위한 주요 추진과제로 '테마검사 강화'와 '미스터리쇼핑 확대' 계획을 내놨다.
테마검사 항목에는 꺾기 등 금융상품 구속행위와 퇴직연금 과당경쟁, 펀드 불완전판매 등이 들어있었지만 지난해 검사 항목과 큰 차이가 없다.
올해 새롭게 추가된 내용이 있다면 지난해 10% 가량 판매규모가 증가한 방카슈랑스의 부당영업에 대한 테마검사 정도에 불과했다.
정책의 연속성을 위해 지속적인 검사도 중요하지만 해마다 금융소비자 관련 민원과 상담이 늘고 있는 만큼 소비자들의 불편사항 해소를 위한 새로운 금융 정책 및 관행 개선 사항을 발굴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 정책 시행여부 확인하기 어려워
금감원의 정책 시행에 있어 가장 큰 문제는 시행 여부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감사원의 감사를 제외하고는 금감원의 업무를 감독하고 검사하는 기관이 사실상 없기 때문에 금감원이 스스로 공개하지 않는 한 대부분의 정책과 마찬가지로 금융소비자 정책 역시 제대로 실행되고 있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금감원은 지난해 5월 금융서비스개선국을 신설해 불합리한 금융제도와 관행에 대한 개선 실적을 공개하고 있다.
하지만 이 실적공개도 문제가 있는 제도나 관행을 바꾸도록 '지도한 실적'일 뿐 금융시장에서 지도내용이 실제로 적용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금감원이 얼마전 이례적으로 제도의 실제 이행여부를 파악한 현장점검 결과를 공개했다.
지난 26일 발표한 '금융소비자보호 및 민생관련 금융현장 점검결과'로, 금감원은 44개 개선과제 중 38개(86.4%)는 정상 이행, 4개 과제(9.1%)는 개선효과 미흡, 2개 과제(4.5%)는 사전작업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이번 이행여부 점검 결과는 권혁세 금감원장 취임 1주년을 맞아 실시한 것으로, 금감원은 지난 1999년 설립 이후 한 번도 이같은 수준의 대대적인 이행여부 점검 및 결과공개를 실시한 적이 없다.
금감원 관계자는 "감독 업무 자체는 상시적으로 하지만 서민·민생 관련해 종합적인 점검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이번 검사를 위해 조직된 현장점검 추진단은 비상설조직으로 이같은 검사를 정기적으로 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감독 및 검사 결과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다. 감독 업무의 특성상 결과 노출이 시장의 혼란을 일으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업무 관행이 굳어지면서 소비자보호 관련 업무에 대해서도 지금껏 이행 여부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다.
때문에 소비자들은 금융회사들의 금융당국의 정책을 얼마나 잘 이행하고 있으며 금감원이 이를 얼마나 제대로 관리감독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는 실정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융회사들에게 개선을 지도한 경우 대부분 이행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 소비자 피부에 와 닿는 정책 '갈길 멀어'
금감원이 소비자보호를 위한 정책을 꾸준히 추진하고 있음에도 소비자들의 피부에 와닿는 정책을 실현하기까지는 갈길이 멀어 보인다.
금감원은 금융상품이 다양해지고 복잡해짐에 따라 은행, 보험업권 등 각 금융협회와 금감원 금융소비자포털 사이트를 통해 상품 비교공시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비교공시가 개괄적인 비교에 그쳐 실질적인 비교평가가 취약하다는 지적이다.
은행권 금리의 경우 예금금리, 대출금리 등을 각각 따로 확인해야 하고 대출금리는 은행별 최저·최고금리만 나와 있어 구체적인 비교가 어렵기 때문이다.
조남희 금소연 사무총장은 "실질적인 비교 공시를 위해서는 보다 자세한 정보 공개가 이뤄져야 한다"며 "예컨대 최저금리와 최고금리를 적용받고 있는 사람들은 각각 몇 퍼센트인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적용받는 평균 금리는 어느 수준인지 등을 알려줘야 실제로 어떤 은행의 금리가 낮은지 높은지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은 "다음 달 중 은행권과 공동으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금리공시제도를 개선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실질적인 소비자보호를 위해서는 정책 보완 수준을 넘어선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거세다.
특히 불완전판매 등으로 민원이 끊이질 않는 보험업의 경우, 금감원은 소비자 권익 보호를 위해 보험약관 개선작업을 지속하고 있지만 약관 개선은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보험설계사 제도 개선 및 보험사 책임강화 등 근본적으로 제도를 개선하지 않으면 민원 유형만 달라질 뿐 민원 해소를 기대하긴 어렵단 얘기다.
금감원과 금융소비자단체에 따르면 보험상품 판매 시 설계사가 소비자에게 중요사항을 알리지 않거나 사실과 다르게 상품을 소개하는 설명의무 위반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보험설계사에게 고지내용수령권이 없음을 악용한 것이다.
고지수령권이란 보험 계약의 변경, 해지, 통고, 고지를 수령할 법적 권한으로, 보험계약 체결 때 설계사가 가입자의 질병 상태 등 보험 계약에 영향을 끼칠 만한 중대 사안을 보험사에 정확히 알려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설계사에게 고지의무가 없기 때문에 소비자의 질병 여부 등을 제대로 알리지 않고 무조건 가입을 시키고는 문제가 발생할 경우 계약자가 병력 등을 숨겼다고 발뺌하거나 계약 당시 상황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회피해 계약자가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다.
보험연구원 관계자는 "보험설계사 또는 대리점에 고지수령권을 부여하지 않을 경우 적어도 보험모집 때 설명 의무 실효성을 강화해야 한다"며 "보험사가 설계사의 부정행위를 억제하는데 적극 개입하도록 하는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기욱 금소연 팀장도 "보험설계사의 불완전판매가 입증됐을 경우 설계사에 대한 처벌만 강화할 것이 아니라 보험사가 공동 책임을 지도록 하는 등 보험사에 대한 책임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보험설계사 모집시 엄격한 기준을 마련하고 체계적인 육성과 관리도 필요하다"며 "특히 신규설계사는 일정 기간 동안은 교육만 받고 영업은 못하게 하는 대시 실적을 보존해주는 등의 방식을 통해 초보설계사들이 실적 압박에 따른 불완전 판매로 소비자피해를 유발시키는 일을 막아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