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황민규기자] KT가 180억원 규모로 진행 중인 ONT(가입자단말) 광모뎀 도입사업에서 중소 제조업체들을 상대로 과도하게 낮은 납품단가를 책정해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사업권을 박탈하는 등 협력업체를 과도하게 옥죄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20일 통신업계 등에 따르면 이번 사업과 관련해 KT는 이미 4월 초에 7개 제조사별로 공급물량 배정까지 완료한 상태이지만, 지난 19일 입찰 방식을 변경해 KT측이 일방적으로 납품가격을 제시하고 이에 맞춰 물량을 공급하도록 강요했다.
당초 KT는 광모뎀 사업 입찰 방식을 일몰복수가방식(하나의 제품을 물량과 가격에 따라 차등계약하는 방식) 또는 TCO 방식(Total Cost of Ownership : 총소유비용, 통상제품의 기능과 가격을 복합적으로 평가해 적정가격을 평가하는 방식) 등으로 진행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막상 계약이 임박하자 '상생경영'을 명분으로 갑작스럽게 입찰방식을 변경해 아예 납품 단가를 제안서 상에 명시한 상태로 협력업체들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문제는 이같은 납품단가가 제조단가를 한참 밑도는 터무니 없이 낮은 가격이라는 점이다.
심지어 KT는 이번 사업과 관련해 7개 협력업체에게 기능보강을 요구해놓고 정작 개발비는 커녕 추가된 부품값 조차도 인정하지 않았다.
통신업계의 한 관계자는 "통상 한번 개발하면 3년 이상 판매해야 개발비가 나오는데 KT의 경우 평균 1.5년에 1번씩 기능 변경요구가 있으며, 개발비용은 무시되는 상황에서 가격은 해마다 3~10% 정도 인하요구가 있다"고 비판했다.
KT 관계자는 "이번에 도입한 협상가격제의 취지는 업체간의 상생을 위한 것이지만 사실상 프로세스가 초반이기 때문에 다소 결함이 있을 수 있다"며 "KT측 견적에 대해 일부 업체들이 불만을 가진 것 같다"고 해명했다.
중소 네트워크 장비업체들에 대한 KT의 횡포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방송통신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KT가 국내 네트워크장비 업체에 지급하는 연간 유지보수 대가(OPEX)가 턱없이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여기에는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와 원격과 현장 기술지원 업무가 포함돼 있으며 이를 제외하면 요율은 더 낮아진다.
반면 이들 통신사가 시스코·주니퍼와 같은 글로벌 업체에 지불하는 유지보수 비용은 국산업체보다 월등히 높아 사실상 불공정 거래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국산 네트워크 장비업계가 글로벌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갖추게 된 건, 국내 대기업들의 가격 후려치기가 그만큼 심했다는 증거"라며 "산업 경쟁력은 높은 반면 생존률이 극히 낮아지게 된 원인도 이같은 대기업 관행 때문"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