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상원기자] 정치권에서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등 확대재정 정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유럽위기가 생각보다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세계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커지면서 하반기 우리경제의 위기감도 고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김석동 금융위원장과 강만수 산은지주 회장까지 나서서 '대공황에 버금가는 위기'라는 평가를 내리면서 체감위기의 수위는 더욱 높아졌다.
이에 따라 정책당국의 2013년 균형재정 목표에 대한 수정압박도 커졌다. 현재 경제상황에서 추경과 균형재정은 공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급기야 그동안 정부의 입장에 서 있던 새누리당도 추경 가능성을 언급하고 나섰다.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가 하반기에 희망근로사업 등을 재조정 해서 기회를 대폭 늘리는 노력이라도 해야한다"며 "우선 급한대로 예비비를 많이 돌려쓰고, 혹시 추경이 되면 추경 때 본격적으로 노력을 곁들이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미 연초부터 추경편성 주장을 펼쳐 온 민주통합당은 구체적인 추경 규모까지 제시하며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민주통합당은 서민생계지원에 1조3000억원~2조3000억원, 일자리 창출과 고용안정에 1조원, 만0~2세 무상보육재원으로 7000억원 등을 배정하는 등 4조원 규모의 추경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용섭 민주통합당 정책위의장은 "민주당이 내수 진작과 서민경제 활성화를 위해 추경편성 등을 검토하도록 제안했지만, 정부는 지난 4년동안 적자예산편성한 것을 만회하기 위한 도그마에 빠져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 '대공황에 버금가는 위기'‥정부 대책있나
8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실질 구매력을 나타내는 실질 국민총소득(GNI)이 1년만에 최저 수준인 0.2% 증가에 그쳤다. GNI는 지난해 3분기에 0.6% 증가에서 4분기 1.0% 상승으로 회복됐다가 유럽위기가 본격화된 올해 들어 다시 급락했다.
대외경제 여건의 변화에 한국경제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주는 수치다.
정부는 올해 우리경제가 상저하고(上低下高)로 상반기에 바닥을 찍고, 하반기에는 회복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2분기가 마무리되는 지금까지 바닥의 끝이 확실히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가장 큰 문제는 대외여건의 불확실성이 조금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오는 17일 열리는 그리스 재총선 결과에 그리스의 채무불이행선언과 유로존 탈퇴여부가 달려 있으며, 그리스 문제의 봉합에 앞서 스페인 문제까지 고민해야 하는 등 유럽의 상황은 출구를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여기에 우리나라의 수출의존도가 높은 미국과 중국경제까지 요동치고 있다. 중국이 금리를 인하하면서 경기부양에 나섰지만 우리 경제에 얼마만큼의 효과를 가져다 줄지는 미지수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지난 4일 현재의 유럽위기를 "대공황 이후 가장 큰 경제적 충격"이라며 "대책을 즉각 작동해야 한다. 신속한 적전 수행이 승패를 좌우한다"고 경고했다. 정부 관료로는 파격적인 언어 선택이다.
여기에 이명박 대통령도 "비상한 각오로 긴장을 늦추지 않고 대외 불확실성에 비상점검체제로 대응하라"고 주문했다.
◇ 돈 줄 없는 정부..추경 선택시 균형재정 포기해야
정부가 추경 선택에 고심을 거듭하는 이유 중 하나는 올해 최대 정책과제 중 하나인 균형재정 목표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 4월 내년도 예산안 편성지침을 발표하면서 2013년에는 나라살림(관리재정수지)을 흑자로 만들겠다고 큰 소리를 쳤다.
당장의 위기대응보다 저출산 고령화와 양극화 흐름에 따른 재정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미래의 재원을 확충하고, 차기 정부에 균형재정을 선물하겠다는 것이 목표다.
그러나 여건이 좋지 않다.
정부는 올해 위기 대응을 위해 상반기에만 벌써 예산의 60% 이상을 집행하고 있고, 하반기에는 더 투입할 재정 여력이 없는 상황이다.
정부가 하반기에 각종 공공기금지출을 늘려 경기방어에 나서겠다는 계획을 밝힌 것도 추경 없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재원을 짜낸 고육책이라는 평가다.
세입·세출여건도 만만치 않다. 경기하방요인이 크고, 실물경제가 위축되면서 세수입 목표 달성을 장담할 수 없으며, 공기업 매각도 지연되어 세외수입도 기대이하에 머무를 가능성이 높다.
반면, 세출에서는 지방교부세와 4대연금 등 의무지출 소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데다 영유아 보육료지원, 저임금근로자 사회보험료 지출 확대 등이 총지출 증가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경제성장률이 1%포인트 하락하면 2조원의 세수입이 줄어든다는 게 재정학자들의 통설이다. 현재의 균형재정 목표는 4%대 중반의 성장을 전제로 마련된 것이다. 올해 우리나라가 3.5% 이하로 성장할 가능성을 점치는 국내외 기관들이 늘고 있다는 점은 세수입 공포로 이어진다.
지난달 국회 예산정책처는 "정부의 세수입 추계와 공기업 매각수익 자체가 부풀려져 있다"며 "2013년이 아니라 2016년에도 균형재정을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인 평가를 내렸다.
기획재정부 고위관계자는 "2008년 같은 위기상황이 온다면 정부는 재정건전성을 해치더라도 경제를 살리기 위해 추경을 편성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면서도 "현재상황에서 기존 거시정책 기조를 바꾸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