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일본 희곡을 무대에 올리는 한국연극이 많아졌다.
히라타 오리자, 하타자와 세이고 등 일본 극작가의 이름은 극장을 즐겨찾는 한국관객에게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번역극은 언어와 관습의 벽에 부딪히기 십상이다. 하지만 일본 현대희곡을 토대로 한 요즘 공연에는 대체로 어색함이 없다. 양국의 공통적인 사회병리적 징후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진실을 숨기고 있는 가해학생의 부모들. 신시컴퍼니 제공.
하타자와 세이고가 쓰고, 김광보가 연출한 연극 <니 부모 얼굴이 보고싶다>의 경우 학교폭력과 집단 이지메를 다룬다. 연출을 맡은 김광보는 무대 인사 중 "이지매와 왕따가 너무나 똑같아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국가를 넘나드는 동시대성이 이럴 땐 씁쓸하다.
공연은 학교에서 일어난 왕따 및 자살 사건을 집중조명한다. 그러나 무대에 학생은 등장하지 않는다. 관객이 마주하는 것은 상담실에 소집된 가해학생의 부모들, 교장과 학생주임, 담임 선생님뿐이다.
피해 여학생은 가해학생들의 이름이 적힌 편지를 보낸 후 세상을 스스로 등진다. 하지만 가해학생의 부모들은 잇달아 밝혀지는 진실을 외면하고 만다. 극이 진행될수록 관객의 마음은 복잡다단해진다. "우린 살아야 하니까."라는 어느 부모의 말은 심지어 설득적이기까지 하다.
막과 장의 구분이나 암전 없이 극적 긴장감은 공연 내내 팽팽하게 유지된다. 일상적이면서도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는 조명 아래 어른다운 어른이 없는 사회를 눈 감지 않고 직시하는 것, 그것만으로 긴장이 충만하다. 공연은 비단 가해자와 피해자의 문제를 다루는 데 그치지 않고 구조조정 문제, 학교이사장의 횡포 등 여러가지 사회 현실을 실타래처럼 얽어 놓는다.
어른은 아이의 미래이다. 무대 위 미래는 가히 절망적이다. 절망의 끝에서 우리는 희망을 찾을까. 그것은 오롯이 관객의 몫으로 남겨진다.
작 하타자와 세이고, 연출 김광보, 출연 손숙, 김재건, 박용수, 박지일, 이대연, 길해연, 서이숙, 손종학, 신덕호, 이선주, 김난희, 백지원, 우미화, 서은경, 안준형, 최승미. 7월 29일까지 세종M씨어터. 티켓가격은 R석 6만원, S석 5만원, A석 4만원. 문의 1544-1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