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볼라벤' 폭우·정전피해 속출..배상은 가능할까?

입력 : 2012-08-28 오후 3:18:25
[뉴스토마토 김미애기자] 28일 강한 비바람을 동반한 태풍 '볼라벤'(BOLAVEN)의 영향으로 아파트 유리창이 깨지거나 가로수가 뽑히고 건물이 붕괴되는 등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특히 낙뢰(또는 벼락, 번개와 천둥을 동반하는 방전현상) 등으로 정전사태가 빈번하게 일어나는데, 이에 따른 재산상 손해배상 책임을 시설관리자나 지방자치단체에게 물을 수 있을까.
 
그동안 법원은 '기습폭우' 등과 같이 통상적인 예측을 벗어난 자연재해에 대해서는 배상책임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불가항력적인 천재지변이라고 하더라도 인재(人災)가 동반되었음을 입증할 경우에는 시설관리자나 지자체의 일부 배상책임을 인정하고 있다.
 
◇"낙뢰 정전이라도 관리자 과실 인정되면 배상"
 
지난 4월 서울중앙지법은 양계장을 운영하는 김모씨가 한국전력공사(한전)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천재지변으로 인한 정전사고에 해당한다"며 원고패소 판결했다.
 
강원도 화천군의 양계장에서 닭 8만수 정도를 사육해온 김씨는 양계장 내부의 온도가 지나치게 높아져 닭이 폐사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환풍시설을 가동시켜왔다.
 
전기공급이 필수적인 사정을 감안한 한전은 김씨를 '정전민감고객'으로 분류했다.
 
그런데 2010년 8월 폭우와 강풍으로 4시간 가량 김씨의 양계장에 전력 공급이 중단되는 사고가 발생했고, 이로 인해 김씨가 사육하던 닭 1만4000여마리가 폐사했다.
 
이에 김씨는 "정전이 발생했을 경우 신속히 정전 원인을 제거하여 다시 전력을 공급할 의무가 있는데, 오랜 시간동안 전기공급이 끊겼다"며 한전을 상대로 1억원대 소송을 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폭우와 강풍으로 인해 도로변의 나무가 전신주 위로 넘어지면서 발생한 정전사고는 불가항력에 의한 사고"라며 "사고현장에 접근하는 도로에는 폭우와 낙뢰로 인한 감전 위험이 있어서 전력공급을 복구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정전민감고객으로 분류돼 있는 사용자에게 정전사고 발생 전후에 정전사실을 통지할 의무가 있다'는 김씨 측 주장에 대해서도 "낙뢰나 자연재해 등과 같은 우발적 요인에 의하여 발생하는 우발정전은 순간적으로 발생하므로, 한전으로서도 정전의 원인과 발생시점을 예측할 수 없다는 점에서 '사전통지의무'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법원은 낙뢰로 인해 정전이 발생했어도 한전의 과실이 인정된 경우에는 책임을 인정했다.
 
서울지법은 지난달 피해를 입은 공장건물 소유자 송모씨가 한전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7400여만원의 배상판결을 했다.
 
이 사건은 지난 2010년 7월 낙뢰로 송씨가 운영하는 공장에 정전이 발생하고 한전 직원이 현장에 출동했으나, 이 직원의 부적절한 조치로 피해가 발생한 경우다.
 
당시 한전 직원은 변압기 자체에 전기적 장애가 없음을 확인한 이후 퓨즈를 교체해 송전했고, 그 직후 계량기의 접속단자 부위에 불꽃이 발생하면서 화재로 이어져 공장건물 및 공장 내부 가공설비 등이 손상됐다.
  
재판부는 "한전 직원이 전기적 장애를 확인하거나 부하분리 등의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퓨즈를 교체해 전기를 재공급했기 때문에 불꽃이 발생, 화제가 났다"고 판단했다.
 
◇"정전으로 배수펌프 고장..시설관리 미흡했다면 배상책임"
 
법원은 국지성 폭우 탓에 배수관 펌프가 정전되어 건물이 침수되었을 경우 시설관리자의 부주의에 따른 '인재'임이 인정되면 관리자에게 배상책임을 묻기도 한다.
 
이모씨는 지난해 7월 서울 W빌딩 지하주차장에 자동차를 주자시켰는데 그날 내린 폭우로 빌딩이 침수됐고, 이씨는 W사를 상대로 "물에 잠긴 자동차 수리비를 배상하라"며 소송을 냈다.
 
그리고 서울지법은 "피고는 빌딩 내 침수방지시설의 하자로 인한 피해를 보상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매년 집중호우를 동반하는 여름철을 겪는 우리나라와 같은 기후 여건에서 사건 당일 서울에 301.5㎜ 가량 내린 폭우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천재지변이 아니다"며 "빌딩 내 침수방지시설 및 지하주차장의 설치·보존상의 하자가 침수사고의 원인"이라고 판시했다.
 
이어 "빌딩에는 배수펌프가 설치되어 있으나 침수사고 당시 정전으로 인해 배수펌프를 가동하기 어려웠고, W사는 지하주하장에 주차된 차량을 신속히 이동시키는 등 침수사고의 예방 및 손해의 확대방지를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다만 "폭우로 인한 자연력이 침수사고의 일부 원인이므로 W사의 책임을 손해액의 30%로 제한한다"고 밝혔다.
   
◇ '건물침수' 현장 출동 안한 경비업체 배상책임은?
 
서울 마포구에서 '사진관'을 운영해온 정모씨는 지난 2010년 3월부터 경비업체 A사와 '기계경비서비스 이용계약'을 맺었다. 정씨는 같은 해 9월 추석연휴를 맞아 경비시스템을 무장시킨 뒤 귀향했는데, 이날 집중호우가 내려 사진촬영장비와 각종 집기가 침수됐다.
 
이웃 주민의 연락을 받은 정씨가 뒤늦게 현장출동요원에게 연락했으나, 이미 내부 천정에서 물이 흘러내리고, 기계경비시스템도 전원이 꺼진 상태였다.
 
이에 정씨는 "열감지기로부터 이상신호가 여러번 접수됐는데도 현장에 출동하지 않았고, 가입자에 아무런 연락을 하지 않았다"며 A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이에 대해 법원은 "정씨에게 430만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정씨 사진관의 경비감시업무를 맡은 A사가 배상하는 사고의 범위는, '제3자'의 행위뿐만 아니라 대상물에 가해지는 위해도 포함된다"며 "A사의 업무를 정하는 기본약관에서 '도난사고' 이외의 사고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을 면한다는 명시적 규정을 두고 있지 않는 한 A사는 계약불이행으로 인해 고객에게 발생한 책임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어 "당시 천재지변에 해당하는 집중폭우로 인해 현장출동이 지연된 점은 인정되지만, 정씨에게 '이상신호'가 접수됐음을 통보하지 않은 귀책사유가 면제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다만 "A사가 현장에 즉시 출동하기 힘들 정도의 집중호우와 그에 따른 교통통제로 인해 손해가 확대된 점, 열감지기를 통해 이상신호가 접수될 당시에 이미 점포 내에는 물이 스며들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며 "A사가 경비계약상의 임무를 이행했더라도 정씨의 손해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을 것이므로 A사의 책임을 20%로 제한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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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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