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T 독임부처 설립? 이해당사자의 선동적 주장”

박상인 서울대 교수 “방통위,독립규제 원칙 지키고, 공적 방송은 별도 기구로 분리해야”

입력 : 2012-11-01 오후 12:32:19
[뉴스토마토 김원정기자] 산업화시기 영국에선 고용 불안과 임금 하락에 허덕이던 노동자가 직물기계를 조직적으로 파괴하는 행동을 벌이곤 했다.
 
이른바 러다이트 운동이다.
 
비참한 생활고가 불러온 노동운동 일환이었지만 벌어지는 계급 차의 원인을 기계 탓으로 돌려버린 몰이해가 낳은 풍경이기도 했다.
 
적확한 비유는 아니지만 차기정부의 기구 개편 대상으로 손안에 꼽히는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를 둘러싼 논쟁 역시 러다이트 운동을 연상케 하는 대목이 없지 않다.
 
‘방통위 5년 평가’만 놓고 보면 ‘명백히 실패했다’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방통위를 해체해 ICT 기능을 한 데 모은 독임부처 설립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해법에는 조용히 고개를 가로젓는 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박상인 서울대 교수(행정학)가 그 하나로, 박 교수는 꼭 1년 전 ‘바람직한 방송통신 정책 주관 정부조직에 관한 연구’라는 제목으로 보고서를 내고 “방통위를 스마트 미디어 시대에 적합한 전문성과 독립성을 가진 독립규제위원회로 전환시키는 것이 방송통신 및 IT 산업의 지속적 성장을 위한 필요조건”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 보고서는 이용경 전 창조한국당 의원이 지난해 국정감사기간 인용, 발표하며 공론화하기도 했다.
 
KTF, KT 등 통신사 사장을 역임한 이 전 의원 역시 ‘ICT 독임부처 설립론’에 대해 ‘사실상 과거 정보통신부(이하 정통부)로 돌아가자는 것’이라며 ‘이 경우 좋은 것은 통신사밖에 없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박 교수와 이 전 의원 모두 독임부처 설립을 능사로 알고 있는 지금의 대세론을 경계하는 데 힘을 싣고 있는 중이다.
 
실제 전직 정통부 장·차관이 주축이 된 ‘ICT 대연합’의 최근 행보는 의미심장하다는 평이 많다.
 
이 단체가 대선후보 초청 간담회를 하루 앞둔 29일 저녁 박 교수에게 ‘ICT 컨트롤타워 복원 움직임’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인터뷰는 전화로 30분 넘게 이어졌다.
 
 
 
 
◇방통위 문제 있다, 독임부처 돌아가자?
 
- 1년 전 보고서에서 “정보통신부와 같은 IT 산업 육성을 총괄하는 부처의 부활을 주장하는 것은 오늘날 한국 경제가 당면하는 도전들을 해결하기 위해 개발도상기의 정책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착오”라고 지적했다. 그런데 현재 논의는 ICT 독임부처를 설립하자는 주장이 일방적인 상황이 됐다.
 
▲지금 논의 흐름은 조직 개편 논의에서 반복되는 움직임으로 보인다. 일종의 형식논리에 얽매이는 문제인데 이를테면 ‘A가 문제 있다, B를 하자’는 것이다. 정통부를 부활하자는 기본적 논리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방통위 체제에 문제가 있다, 독임제로 가자’는 것이다.
 
하지만 A가 문제 있다 해서 B로 해결 가능한지, B는 문제가 없는지 비교해서 봐야 하는데 냉정하고 전문적 판단 없이 A가 잘못 됐다고 무조건 B로 가자는 건 잘못이다. 이는 A체제와 B체제가 있을 때 주로 B체제에 이해관계가 걸러 있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이기도 하다.
 
정치권에서 이 주장이 받아들여지는 게, 야당 쪽에선 현 여당이 잘못 됐으니 문제 있다, 그러니 조직 개편 하자 이런 논리로 가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이해당사자의 선동적 주장이라 할 만하다.
 
현 정권의 실패를 너무 쉽게 조직 문제에서 찾으려는 한계가 있다. 민주통합당에서 정통부 부활을 얘기한 것도 아마 이런 분위기 때문 아닐까?
 
- ICT 독임부처 설립론, ICT 컨트롤타워 복원론이 지닌 한계는 뭔가?
 
▲한국은 시장이 어떻네 하면서 정부가 해줘야 한다고 하는데 이는 개발도상국 때 이야기다. 국가 산업정책을 통해서 ICT 발전을 이루고 경제가 발전할 수 있다는 믿음은 잘못된 인식이다. ICT 생태계를 이야기하면서 정부가 모든 것을 기획하고 다 해야 한다? 컨트롤타워라는 말 자체가 개발도상국 시대 말 같다.
 
C(콘텐츠)-P(플랫폼)-N(네트워크)-D(디바이스)로 ICT 생태계를 이해하는 건 나쁘지 않은데 ICT 사슬 형성을 부처 통합으로 이룬다? 그렇게 모든 걸 다 하는 부처를 만든다고 전부 다 잘 할 수 있느냐? 현실성 없는 이야기다. C-P-N-D, 여기서 P가 소프트웨어플랫폼, OS에 해당하는데 정부가 이걸 국제적 사업으로 키우려고 했지만 잘 안되지 않았나.
 
콘텐츠를 독임부처에 합치자는 이야기를 보자. 문화부(문화체육관광부)에서 콘텐츠를 떼어 온다고 하면 디지털 콘텐츠와 아날로그콘텐츠의 일관성이나 연계성 문제는? 각각이 어느 고리에 함께 있는 게 좋은가 먼저 비교하고 따져봐야 한다는 거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인데 지금은 어느 한 면만 보고 조직개편을 이야기하는 측면이 있다. 비교하고 따져볼 수 있는 경험이 이젠 누적된 것 같은데 매번 문제가 반복되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
 
◇“‘컨트롤타워’라는 말 자체가 개발도상국시대 말 같아”
 
- 방통위, 지경부, 행자부, 문화부 등으로 기능이 흩어져 있다 보니 비생산적이라는 지적이 나오는데 이를 일원화 하는 것은 답이 될 수 없는 건가?
 
▲ICT가 산업마다 기반 기술로 이미 많이 쓰이고 있는데 부처간 갈등이 없어질 순 없을 것이다. 소프트웨어 쪽에서 부딪치고 콘텐츠 놓고도 계속 갈등한다. IT 기반 기술화, 디지털 융합, 이 두 환경 아래서 특정 정부 부처를 둔다고 ICT 컨트롤타워가 세워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갈등이 완전히 사라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실 이 정부 들어 갈등은 줄어든 편이다. 과거 ‘IT 839’ 놓고 산자부와 정통부가 싸운 것만 생각해도 그렇다. 차라리 대통령실에 IT 기반 기술과 디지털 융합으로 나타나는 현상에 대해 부처간 갈등을 조정하는, 그걸 전담하는 ICT 수석을 만드는 것이 현실적이다.
 
현재는 조정 기능이 약화된 상태인데 조정은 분명 필요하고 그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다만 컨트롤타워로는 가능하지 않다. 그보다는 대통령실에 ICT 조정을 총괄하는 권한을 준 수석을 두는 것, 그게 해법이지 달리 방법이 없다.
 
- 지난 5년 ICT 경쟁력 하락은 과거 정통부의 내재적 한계가 이 시점에 곪아 터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또 일각에서는 ICT 독임부처 설립이 사실상 정통부 부활을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주장도 펴고 있는데.
 
▲정통부에 공과가 있긴 하다. 초고속망을 까는 것도 그렇고 기술추격형 산업으로 개발도상국에서 잘 했던 것을 IT 산업 초기엔 잘 해냈다.
 
하지만 개도국 때 IT 정책을 지금에 적용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지금은 추격형에서 혁신형으로 바뀌어야 하는데 정부도 기업도 ‘How to do'만 알 뿐 ’what to do'를 몰랐다.
 
와이브로가 한 사례다. 정부가 기술 발전을 잘못 선도해 산업전체를 위기로 몰아넣은 예다. 와이브로 넘어간다고 정통부가 드라이브 걸어서 사업자도 많이 따라갔는데 결과적으로 LTE 기반으로 한 기술 혁신이 늦었다. 산업정책을 독임제 부처가 맡았을 때 일어날 수 있는 부작용의 한 예다.
 
정통부로 돌아가자는 것은 사실 아이러니한 것인데 개발독재 시대가 이미 지났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를 그때로 돌아가 해결하자는 것이다.
 
방송통신 기술 환경 변화로 개발독재 시대의 정책 실효성은 이미 사라졌다. 그런데 새 시대 흐름에 적응하지 못한다고 그때로 돌아가자? MB정부를 비판하면서 정통부 부활을 이야기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
 
◇방통위는 위원회 유지하고 지상파정책만 따로 떼 내 관리해야
 
- ‘행정규제위원회 성격의 방통위를 FCC와 동일한 지위의 독립규제위원회로 전환’해야 한다는 입장인데 지금도 유효한가?
 
▲위원회 자체는 찬성한다. 하지만 방통위가 난맥상을 보인 건 맞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방통위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서 권한이 많았고 그게 독이 됐다.
 
정당마다 방통위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 전문성 보다는 각 당 입장을 반영하기 쉬운 사람을 위원으로 추천했다.
 
방통위가 전문규제위원회의 역할을 못한 가장 큰 원인은 위원 구성 문제에 있는 것이다. 단순히 독임부처가 아니어서 생긴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방통위가 정치적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권한이 많았는데 지상파 문제와 관련해 특히 그렇다. 지상파 이사를 임명하고, 지상파 재허가를 승인하는 것들이 그것인데, 그런 정치적 부분을 따로 떼어내는 게 방통위가 독립성과 전문성을 가지는 길이다.
 
방통위의 규제 전문성이 사라진 것에 대해선 방통위가 왜 제대로 역할을 못했는지 살피는 게 먼저다. 단순히 방통위를 독임제 안에 넣자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 방송분야는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 지금 분위기는 독임부처 안에 위원회를 둬 방송을 담당케 하자는 안이 유력한 상황이고 일각에선 방송영역(공영방송+보도채널 등)만 빼서 별도 위원회를 두자는 안도 있는데.
 
▲독임부처 안의 위원회는 아마 정통부 출신이 주로 하는 얘기일 것이다. 과거 정통부 시절의 통신위원회처럼 두자는 것인데 문제가 많다고 본다.
 
독임부처는 기본적으로 산업정책을 쓰는데 그 안의 위원회가 규제정책을 쓰면 상충하는 문제도 있고 무엇보다 방송부분의 독립성이 약화될 가능성이 크다.
 
사실 행정위원회에 대해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 해외도 물론 문화부의 외청 형태로 위원회를 두고 있는 곳이 있긴 하다. 미국의 FCC가 법적으로 독립성을 보장 받은 특이한 경우이고 영국이나 캐나다도 별도 행정위원회를 둬서 방송을 담당한다.
 
하지만 이는 행정부와 연결돼 있어야 법안을 발의할 때 손쉽기 때문에 형식적으로 문화부 밑에 둔 것이고 엄밀히 말해 산하기관과 의미가 다르다. 입법 경로 때문에 그렇게 조직돼 있을 뿐 철저히 독립적이다.
 
사실 방통위 자체가 방송통신 융합 때문에 만든 것이고 방통융합은 그 뒤로 더 진전됐기 때문에 따로 떼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다만 지상파방송처럼 민감하고 정치적 영향력이 미치는 부분은 따로 떼어낼 필요가 있다.
 
공공방송 등에 의무를 부과하는 사안들만 별도 위원회에서 관리하고 그 외 방송과 통신, 방통융합에 대한 사전·사후 규제는 위원회 형태의 방통위에서 다뤄져야 한다는 의미다.
 
- 방통위도 어쨌든 위원회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인데 현재의 위원 선임 방식은 정치적 독립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지적이 많다. 대안이 있을까?
 
▲일단 정치적 선임 방식은 문제다. 공정거래위원회처럼 위원을 늘리는 게 대안이 될 것이라 본다. 인사 적체로 내부 불만도 많으니까. 후임 위원회는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
 
이게 사실 기술적 문제인데 위원회가 9인으로 간다면 대안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물론 정치적 이슈를 놓고 결정해야 하는 문제라면 단순히 숫자가 늘어난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누구를 위한 독임부처 설립인가
 
- 방통위에 대해선 몇 점 정도 줄 수 있나? 실패했다면 원인은 무엇일까?
 
▲당연히 좋은 점수 못 준다. 출범 뒤 기대했던 일을 못했다. 대통령이 전문규제위원회라는 인식을 못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위원장부터 전문성 있고 독립성 있는 사람을 임명하지 못했다. 그러니 주로 종편 문제만 미션처럼 다룬 거 아닌가.
 
처음부터 꼬였으니 의도한 결과를 못 냈다. 문제는 이런 결과를 두고서 원인을 잘못 찾고 있다는 점이다.
 
- 대선주자들 역시 큰 틀에서 ICT 독임부처 설립에 공감을 표하고 있다. 어느 후보가 대권을 잡든 큰 틀에서 묶일 것은 기정사실로 보인다. 방통위 출범을 앞두고 ‘방송·통신 융합’이 화두였듯이 이번에는 ‘컨트롤타워 복원’이 대세로 굳어가는 분위기인데 독임부처 설립을 지적하거나 반대하는 목소리가 보이지 않는 이유는 뭘까?
 
▲직접적인 이해당사자가 많다. 공무원은 기본적으로 규제정책이 아니라 산업정책을 하고 싶어 한다. 규제보다 진흥을 해야 기업들도 보조금을 더 받으니 기업도 산업정책이 좋다.
 
관련해 프로젝트를 딸 수 있는 교수들도 산업정책이 좋은 것이다. 학계도 마찬가지인 셈이다. 규제정책을 해서는 그런 보조금이 안 나온다.
 
규제전문위원회로 갔을 때 손해를 보거나 박탈감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이 현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보다 이해관계에 얽매여 그 같은 주장을 편다고 본다. 
 
규제위원회는 잘 운영되지 않았을 때 그 폐해에 대해서 책임 질 사람이 없다. 일단 독임부처로 바뀌어서 유리해질 사람은 목소리를 높이지만 규제정책 위주로 가면 혜택 자체가 불특정하니까 목소리를 낼 사람이 없다.
 
산업정책에선 혜택 볼 사람 정해져 있기 때문에 목소리를 크게 내는 사람 나오는데 규제위원회의 경우 당장의 이해관계자가 별로 없기 때문에 목소리가 안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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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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