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헌철·김기성기자]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다. 유산 상속을 놓고 법정다툼을 벌이고 있는 삼성과 CJ가 또 다시 격돌했다. 이번에는 선대 회장의 추모식을 놓고 절차 싸움에 돌입했다. 한껏 감정이 배인 발언들이 오가면서 “가족이 아니라 원수”라는 말까지 나온다.
CJ는 14일 ‘선대회장 추모식 관련 CJ 입장’이라는 공식자료를 내놨다. CJ는 “지난 6일 이병철 선대회장 25주기 추모식과 관련해 행사 주관자인 삼성 호암재단으로부터 ▲가족 행사는 없음 ▲오전 10시30분~오후 1시 삼성그룹 참배 ▲타 그룹은 오후 1시 이후 자유롭게 방문 ▲정문 출입 불가, 선영 내 한옥 사용 불가 등을 통보 받았다”고 밝혔다.
이어 “지금까지 선대회장 추모식은 매년 기일인 11월19일은 전후해 가족행사로 치러왔다”며 “지난 24년간 단 한차례의 예외도 없이 가족들이 함께 모여 선영을 참배하고, 이어 범삼성가 그룹 주요 CEO들이 참배를 하는 순으로 진행돼 왔다”고 말했다. 또 “참석한 가족들은 선영 참배 후 한옥에 모여 식사를 함께 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CJ는 그러면서 “가족 간 사전조율 없이 이뤄진 삼성의 통보는 가족 행사를 통해 선대회장의 업적과 뜻을 기리는 추모식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것으로 심히 유감스럽고 안타깝다”며 “특히 삼성 측이 정문 출입을 막고 제수 준비에 필수적인 한옥을 사용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혔다.
CJ는 “‘뒷문으로 왔다가라’는 삼성의 통보는 사실상 다른 형제 및 그 자손들의 정상적인 선영 참배를 막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면서 “이에 ‘예년처럼 정문 및 한옥을 사용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호암재단을 통해 수차례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선대회장의 장손인 CJ그룹 이재현 회장은 용인 선영에서 부사장급 이상 50여명과 함게 별도의 추모식을 가질 계획인 바 정문 및 한옥 사용을 거듭 요청한다”고 말했다.
논란이 가열되자 같은 날 오후 삼성이 반박자료를 냈다. 삼성은 “호암재단이 선영 참배를 막은 적이 없음에도 CJ가 사실과 다른 주장을 일방적으로 하고 있어 이에 대한 설명을 드린다”며 “올해 선대회장 추모식은 그룹별로 진행하기로 하고, 호암재단이 각 그룹에 설명 및 참배 안내를 했다”고 말했다.
삼성은 “한옥은 선영 참배와 전혀 관련이 없다”며 “한옥(이병철 회장의 생전 가옥)은 영빈관으로 사용하는 주거시설로 제수를 준비하는 곳이 아니다”고 말했다. 또 “제수와 제기는 삼성이 준비한다고 사전에 알려줬기 때문에 한옥을 사용할 이유가 없다”고 못박았다.
삼성은 정문 출입 관련해서도 “선영에 정문은 없으며 선영에서 가장 가까운 진입로를 안내해 준 것”이라며 “삼성 사장단도 매년 이 진입로로 출입해 왔다”고 반박했다.
양측 관계자들이 전한 발언은 수위가 더 높았다. 한마디 한마디에 가시가 돋쳐 있었다. CJ 관계자는 “24년간 맏며느리(손복남 고문)가 제수를 준비해왔다”며 “갑자기 제수를 준비하던 한옥을 사용하지 말라고 하면 납득이 되겠느냐”고 따졌다. 출입로 관련해서도 “뒷구멍으로 들락날락하라는데, 이는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 아니냐”며 “이건희 회장도 그길로 가냐”고 반문했다.
그는 “추모식도 장손이 먼저 하는 게 맞으나 삼성이 정하는 대로 하겠다고 했다”며 “정문 출입과 한옥 사용, 이 두 가지만이라도 들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추모식 관련해 어떻게 할 지 결정된 게 전혀 없다”며 “삼성의 진중한 답변을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삼성 관계자는 “올 한식 때 손복남 고문은 호암미술관에서 제수를 준비했다”며 “문제 삼으려면 그때 하지, 왜 지금에 와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맞받아쳤다. 그는 “추모식 때는 (제수 준비 장소로) 한옥을 사용한 게 맞으나 과거는 과거고 지금은 지금”이라며 “따로 따로 하는 마당에 남의 집에서 제수 준비 하겠다고 하면 누가 허용하겠느냐”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상속소속의 여파가 추모식까지 이어지면서 양측의 대립을 바라보는 여론의 시선은 한층 싸늘해졌다. "제삿상 앞에서마저 싸운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양측 사정을 잘 아는 재계 관계자는 “여론을 자극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는 CJ나, 이를 포용하지 못하고 맞대응하는 삼성이나 매한가지”라며 “재계를 대표하는 양측 싸움이 가열되면서 기업을 바라보는 국민 시선이 차가워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선친인 선대회장이 남긴 유산을 놓고 형제(이맹희-이건희) 간 공방이 법정으로까지 이어지면서 한때 범삼성가로 불렸던 삼성과 CJ의 관계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됐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의 장남으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조카다. 이맹희 전 회장은 고 이병철 회장의 장남으로 재계에서는 그를 가리켜 '비운의 장남'으로 일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