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진아기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된 지 1년이 지났지만,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FTA 효과는 여전히 크지 않다.
관세 철폐의 혜택을 수입·유통 업체가 고스란히 독점하는 유통 구조 탓에 수입품 가격 하락 효과가 소비자들에게 제대로 도달하지 않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체리·오렌지 등 일부 수입산 과일 품목에만 FTA 발효 효과를 느낄 뿐, 여전히 FTA 효과는 미미하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여기에 수입산 과일을 찾는 소비자들의 발길이 늘어나면서 국내 과수 농가들의 피해도 만만치 않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유통구조와 가격경쟁정책 등 국내 개선 대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복잡한 유통구조로 가격거품 '多'..소비자 체감은 '無'
14일 기획재정부 등 정부와 관련연구기관 등에 따르면 지난해 말 전국 10개 지역 백화점·대형마트·기업형수퍼마켓(SSM)에서 판매하는 미국산 소비재 10개 품목을 조사한 결과, FTA 발효 이전보다 가격이 10% 이상 떨어진 품목은 건포도(-13.2%) 1개 품목에 불과했다.
맥주는 0.6% 하락하는데 그쳤고 비타민과 화장품, 의류 등의 가격은 발효 이전과 차이가 없었다.
오히려 가격이 오른 품목이 많았다. 건체리는 관세가 즉시 철폐됐음에도 36.5%나 상승했고, 냉동 삼겹살은 12.8% 올랐다.
가격이 하락한 품목도 보면 관세인하폭 대비 가격인하율이 적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2월말 기준 자몽은 관세인하가 기존 30%에서 18%로 떨어졌지만, 가격은 발효 이전 1880원에서 1800원(4.3%)으로 80원 하락하는데 그쳤다.
또 레몬은 관세가 기존 30%에서 0%로 인하폭이 30%포인트나 됐지만 가격은 7.8%(900원→830원) 떨어지는데 불과했다.
호두 역시 관세가 기존 30%에서 20%로 인하했지만 가격은 발효 이전과(6000원→6000원) 다름이 없었다.
서울 창동에 거주하는 주부 이모씨(50대)는 "예전보다 오렌지나 체리 등은 자주 사먹을 수 있게 되서 좋긴 한데 다른 품목들에서는 관세철폐 혹은 인하에 따른 가격 하락 효과를 느끼지 못한다"면서 "FTA 발효 효과를 실생활에서는 크게 체감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경희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미FTA 발효로 소비자물가 인하 효과를 기대했지만 실제 소비자들이 느끼는 체감도는 크지 않다"며 "이는 복잡하고 독과점 등의 국내 유통구조 및 가격경쟁 등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권혁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FTA의 가장 큰 목적은 소비자후생효과 증대인데 국내의 복잡한 유통구조 때문에 가격거품이 많아 소비자들이 FTA 효과를 체감하지 못한다"며 "유통구조개선 등 정부의 개선대책이 시급하다"고 꼬집었다.
◇수입산 과일 식탁 점령..국내 과수 농가 '울상'
소비자들은 FTA 효과를 체감하지 못하지만 국내 과수 농가들은 FTA 때문에 울상이다.
FTA로 수입산 과일이 싼 값에 들어오면서 소비자들이 비싼 국산 과일보다는 수입산 과일을 많이 찾고 있기 때문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산 과일 수입액은 6억3600만달러로 전년의 4억6700만달러 보다 36% 증가했다. 지난 2010년(3억6200만달러)과 비교하면 두 배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주요 품목을 보면 지난해 FTA 발효일부터 지난해말까지 오렌지의 수입액은 전년동기대비 33.4% 증가했고, 2009~2010년 평균보다는 67.1%나 늘었다. 체리도 전년보다 78%나 증가했다.
실제 롯데마트가 한·미 FTA 체결 이후 1년과 그 전 1년을 비교한 분석에 따르면 수입과일 매출은 8.1% 증가한 반면 국산 과일은 6.9% 감소했다.
농촌경제연구원이 소비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더라도 응답자의 4분의 1이 미국산 오렌지나 체리 구매를 늘리는 대신 국산 과일의 소비를 줄였다고 응답했다.
문한필 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산 오렌지와 체리의 수입은 국내산 과일의 출하 시기와 맞물리며 '대체 효과'가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문 연구위원은 "관세 감축으로 가격경쟁력이 높아진 수입산들로 인해 출하 농가들은 피해를 입을 수 있는 구조"라며 "국내 농가들이 가격경쟁력을 높이는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품질제고와 안전성, 차별화 전략 등 식품안전성 측면에서 소비자에게 만족감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