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게이츠-이재용 회동, '굳건한 협력'의 이면

입력 : 2013-04-22 오전 10:54:24
[뉴스토마토 김기성기자] 빌 게이츠(사진)가 삼성전자를 찾았다. 회동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초청에 의해 전격 이뤄졌다.
 
지난해 부회장 승진 이후 보폭을 넓히며 대외행보 중심에 선 그다. 삼성 측에서는 이 부회장을 필두로 최지성 삼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 신종균 삼성전자 무선사업부(IM) 사장 등 최고경영진이 함께 했다.
 
21일 오후 6시30분부터 2시간30분가량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에서 진행된 만찬 회동의 구체적 내용은 전해지지 않았다. 다만 빌 게이츠는 회동 직후 국내 취재진과 만나 "삼성과 MS의 협업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고 밝혔다.
 
특히 "윈도8을 한 차원 더 발전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도 주고받았다"고 전한 그는 "(윈도8이) 아직 완벽하진 않지만 삼성이 도와주고 있는 만큼 잘 될 것"이라는 기대도 숨기지 않았다. 그러면서 "윈도8과 삼성전자 기기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얘기했다"고 부연했다.
 
앞서 빌 게이츠는 서울대 근대법학 백주년기념관을 찾아 학생 300여명을 상대로 50여분간 특별강연을 열었다. 그는 이 자리에서 "한국은 이미 톱클래스에 도달해 있다"면서 "애플 같은 기업을 따라하거나 모방하지 말고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은 그간 일본과 미국 모델을 많이 따라 했지만 창조경제를 하려면 그래서는 안 된다"며 "세계 선두를 차지하는 기술도 많은 만큼 위험을 감수하고 혁신을 추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애플, 모방, 창조, 혁신, 윈도8…. 빌 게이츠 입을 통해 전달된 이날의 주요 키워드였다. 삼성과의 협력관계는 이날 2시간 넘게 진행된 만찬회동에서 알 수 있듯이 여전히 두터워 보인다.
 
반면 일각에서는 정반대의 해석을 내놓으며 MS의 불편한 속내가 빌 게이츠를 통해 우회적으로 표명된 것으로 받아들였다. 파트너에 대한 협력을 강조함과 동시에 경고도 잊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최근 일련의 삼성 행보를 보면 MS에 대한 도발이 적지 않았다. 전동수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장(사장)이 최근 PC산업 위축의 원인을 윈도8에서 찾은 게 대표적이다.
 
그는 지난달 8일 한국반도체산업협회장에 선출된 직후 기자들과 만나 "윈도8이 (이전 버전인) 비스타만도 못하다. 그러니 PC수요를 진작시킬 모멘텀이 전혀 없는 셈"이라며 "MS도 답답한지 서페이스를 내놨는데 수요 자체가 불분명하다. 무엇보다 경쟁력이 부족한 윈도 플랫폼 자체의 문제"라고 규정했다.
 
신종균 사장도 거들었다. 신 사장은 지난달 14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윈도 기반의 스마트폰과 태블릿이 잘 팔리지 않는다고 들었다"며 "시장에서는 안드로이드에 대한 선호도가 여전히 높다. 유럽에서도 윈도 수요는 높지 않다"고 말했다.
 
반도체에 이어 휴대폰 사업부마저 총괄 책임자가 직접 나서 비판한 것으로, 업계에서는 이례적으로 받아들였다. 전통적 파트너였던 MS와의 관계를 고려할 때 발언 수위는 물론 공개석상에서 이뤄진 점은 충격이었다.
 
무엇보다 MS가 애플과 구글이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모바일 운영체제(OS) 진출을 위해 윈도8을 야심차게 준비해 왔다는 점에서 삼성의 이 같은 발언은 MS 의지에 찬물을 끼얹는 것과도 같았다.
 
더욱이 윈도8을 MS 역사상 최악의 OS로 평가받는 윈도 비스타보다 못하다며 한마디로 평가 절하함으로써 구글과의 연대를 의식했다는 해석도 잇달았다. 냉정한 시장논리에 비춰볼 때 시장상황에 맞는 적절한 선택이었다는 의미도 부연됐다.
 
뿐만 아니다. 삼성은 지난해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IFA에서 윈도8을 탑재한 스마트폰(아티브S)을 공개했음에도 한국을 비롯해 삼성의 브랜드가 지배하는 주요시장에서 출시하지 않았다.
 
또 유럽 최대시장인 독일에서 윈도 기반의 태블릿PC, 아티브 탭 RT의 판매도 중단했다. 아티브 탭 RT는 지난 1월 미국에서 판매가 예정돼 있었지만 기대만큼 수요가 크지 않다는 판단에서 출시가 좌초된 바 있다.
 
때문에 빌 게이츠의 이날 발언은 윈도8에 대한 삼성의 적극적인 협력을 당부함과 동시에 삼성이 제일 뼈아파 하는 '모방'을 최대 경쟁사인 애플에 빗대 지적했다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모방이 아닌 혁신을 통해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발언이 실은 MS의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었단 얘기다.
 
한편 빌 게이츠는 22일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만나 새 정부 핵심 국정기조인 '창조경제'에 관해 의견을 교환할 계획이다. 그는 산업통상자원부 초청으로 지난 20일 방한했으며, 2001년과 2008년에 이어 세번째로 한국을 찾았다.
 
마이크로소프트(MS) 공동창업자로, 현 MS 이사회 의장과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빌 게이츠는 미국 IT의 상징과도 같다. 최근 애플과 구글, 페이스북 등에 밀려 의미가 퇴색됐다고는 하나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 IT시장을 향한 그의 영향력은 여전하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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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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