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원정기자] 대형마트 규제를 둘러싼 실효성 논란은 경제민주화란 패러다임에 개선점이 필요함을 방증한다.
정책당국은 대기업의 영역을 제한하는 방향에 주력하고 있지만 풀뿌리 상권을 육성하는 내용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대기업과 영세업자의 형평을 맞추는 데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경제민주화 동의하는데 소비자 권리도 중요"
이와 관련해 최근 참여연대가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참여연대가 지난 4월11일부터 이틀 동안 전국 20세 이상 남녀 1001명을 대상으로 유·무선전화 임의번호 무작위추출방식(RDD)을 이용, 조사한 결과(95% 신뢰수준에서 최대허용오차 ± 3.1%P) 응답자들은 지역경제 활성화와 중소상공인들을 살리기 위해 재래시장, 동네 상점가를 더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견해에 절반 이상이 '공감(공감하며 실천하려고 노력 할 것, 56.6%)'한다고 밝혔다.
'공감하지만 현실적으로 실천하기 어렵다'는 응답이 33.3%, '공감하기 어렵고 실천하기도 어렵다'는 6.0%로 조사됐다. 경제민주화에 심정적으로 공감한다는 여론만큼은 90%에 육박하는 것으로 풀이되는 내용이다.
대형마트에 대한 영업제한과 의무휴업제도에 대해서도 '완화하라'는 목소리는 9.1%에 그쳤다. 전체 응답자의 46.3%는 현재 규제가 '적당하다'고 봤고 39.5%는 '규제를 더 강화해야 한다'는 주문을 내놨다.
전체적으로 유통대기업의 도매업 진출에 대해 '적극 규제하라'는 목소리(67.1%)가 별 문제 되지 않는다는 목소리(22.0%) 보다 세 배 가까이 많았고, 중소상공인적합업종제도에 대해서도 '꼭 도입해야 한다(68.1%)'는 응답이 '과도한 규제이므로 반대한다' (17.1%)는 응답 보다 네 배 가까이 많았다.
흥미로운 건 서울시의 대형마트 품목 제한 정책에 대해선 찬성한다(37.0%) 보다 반대한다(54.5%)는 목소리가 다소 많았다는 사실이다.반대한다고 밝힌 응답자들은 이 정책의 '취지를 이해해도 지나친 규제'라고 봤다.
문구점의 식품 판매 제한 조치에 대해선 '단속하는 게 적절치 않다(51.8%)'는 응답이 '단속하는 게 맞다(42.3%)'는 응답 보다 다소 많았지만 차이가 크지 않았다. 일반 시민은 경제민주화만큼이나 소비자 권리도 중요하게 본 셈이다.
◇경제민주화 논의에 '빠진 것'은 `조화`
참여연대의 조사결과는 대형마트 규제를 위시한 경제민주화 정책의 성공여부에 시사점을 던질 것으로 보인다. 정책당국의 개선책이 대기업에 대한 규제 일변도로 흐르면 자칫 '취지는 좋으나' 여론의 외면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좀더 세밀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정부가 당초 대형마트에 대한 규제 카드를 꺼내든 건 영세한 시장상권, 골목상권에 직접 피해가 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실제 대형마트 매출액이 1999년 7조6000억원에서 10여년 뒤 2010년 33조7000억원으로 4~5배 규모를 불리는 동안 같은 기간 전통시장 매출액은 46조2000억원에서 24조원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단순히 매출액만 역전된 게 아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지난 1월 발표에 따르면 2011년 한해 동안 대형유통업체 19개에 납품한 중소업체 4807개의 절반 이상(56.5%)이 대형마트의 백지계약, 판촉행사비 부담 등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등 해당분야의 불평등 문제도 심각했다.
시민사회에서 여전히 대기업의 독과점 해소와 불공정행위 시정을 1순위로 꼽고 있는 이유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풀뿌리상권 육성책은 여전히 부족하다. 현재 정치권을 중심으로 연발하는 각종 입법안 역시 헌법이 정한 '경제민주화' 가운데 '경제력 남용 방지'에만 초점이 있고 '경제주체간의 조화'는 빠져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제민주화 패러다임 보완해야 성공한다
정경섭 '합정동 홈플러스 입점저지 대책위원회' 대표는 22일 '대형마트·SSM(대규모점포) 무엇이 문제인가'를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 "시민사회진영이 그동안 대형마트 입점을 저지하는 투쟁에 나선 적은 있지만, 이미 존재하는 대형마트 인근 상권을 지키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했는지 묻고 싶다"고 지적했다.
정 대표는 "오늘처럼 국회에서 토론회를 개최하고 중소영세상인들을 위한 법안을 상정하기 위한 공청회는 적지 않았지만, 지역 상권을 살리기 위해 상인들과 지역 단체가 실질적인 연대활동을 했던 사례는 찾아보기가 어렵다"고 밝혔다.
정 대표는 대안으로 지역과 영세상인을 연결하는 '조직화'를 제시했다.
재계의 반발이 거세지는 속에서 현재의 논의를 바로 잡지 않으면 또 한번 경제민주화가 후퇴 혹은 좌초될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제윤경 희망살림 상임이사는 "소비자의 다양한 선택권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대형마트 규제 이슈를 바라봐야 한다고 제안했다.
제 상임이사는 "대형마트로 인해 골목 상권이 무너져 소비자는 다양한 소비 공간을 잃었다"면서 "유통 시장의 자연스런 경쟁을 통한 가격 안정이 소비자의 편익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사진: 민병두 의원실 제공. 가맹사업법 처리를 촉구하는 영세업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