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황민규기자] 최근 대형 유해화학물질 사고가 잇달아 터져 나오며 한국 산업계에 만연한 '안전불감증' 문제가 다시금 부각되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에서의 두 차례 사고는 유독물질 관리에 대한 전반적인 시스템 현황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글로벌 기업이자 '관리의 삼성'으로 명성을 떨쳐온 삼성전자조차 안전에서는 '초보자'와 다름없었던 것이다. 삼성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규모의 제조 기업들과 전국 각지의 산업단지 등에서는 세간이 알려진 것보다 훨씬 많은 사고가 일어나고 있다. 뉴스토마토는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심상정 진보정의당 의원실과 함께 총 3회에 걸쳐 그동안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삼성, 구미, 여수 등에서의 사고와 아직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각종 사건사례 등을 분석해 국내 산업계의 유독물질관리현황 및 체계, 문제점과 대안을 짚어본다. [편집자]
지난 1월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에서의 불산 누출 사고를 전후로 잇따르고 있는 사건사고는 첨단 IT 산업의 부흥과 초고속 네트워크 시대의 휘황찬란한 외관 뒤에 숨은 불편한 진실을 드러낸다.
지금도 해마다 1000명이 넘는 노동자가 철판에 깔려죽고, 철탑에서 떨어져 죽고, 햇빛 한 점 없는 밀폐구역 유독가스에 방치돼 질식사하고 있다. 물론 과거부터 한국이 '산재공화국'의 오명을 쓰고 있는 이유는 단순히 OECD 가입국 중 산업재해 사망률 1위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OECD 전체 평균치인 0.48명(근로자 1만명당 사망자수)과 비교하면 최소 3배에서 6배 이상 산업재해가 빈발하는 '안전의 불모지' 속에서도 정부 및 각 지자체가 기업에게 유리한 경영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미온적인 대책을 답습해온 것이 산재공화국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배경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같은 통계조차도 상당 부분 제도적으로 은폐·축소됐다는 데 있다. 정부와 지자체, 각 기업이 제시하는 산업재해 통계치는 현실을 명증하게 드러내 문제와 해법을 밝히는 목적으로 활용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감추는 데에만 사용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 "산업환경 안전해지고 있다"..사실은 급증하는 '산재'
정부가 제공하는 통계 숫자로 보면 우리나라 산업 환경은 해가 갈수록 안전해지고 있으며 산업 현장에서 불구가 되거나 목숨을 잃는 사람들의 숫자는 매년 크게 줄고 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거리가 먼 얘기다. 심지어 유독성 화학물질을 다루는 여수 등 일부 산업단지에서는 지난해 누출 사고 건수가 큰 폭으로 늘었다.
뉴스토마토와 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고용노동부, 각 지자체 통계를 비교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노동자뿐만 아니라 인근 사업장 및 민간 거주 지역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사건사고가 기업 내부적으로 '공상처리'(노동자가 작업 중 입은 부상을 일반 진료로 치료받은 뒤 추후 회사에 병원비를 청구하는 방식)되거나 아예 은폐되는 사례가 만연해 있다.
가장 단적인 예로 고용노동부는 지난 2010년부터 2012년 사이 여수산단에서 단 한건의 폭발사고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전남도청통계 자료를 살펴보면 총 46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 취합 과정에서 고의적인 누락마저 발생하고 있다는 근거다.
산업재해 통계가 허울뿐인 이유는 또 있다. 우선 사업주가 의료비를 배상해야 하는 산재 적용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근로자 입장에서는 '실직'을 각오한 모험이라는 점이다. 이에 대해 노동환경건강연구소는 "다치거나 병들어도 산업재해로 인정받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집단도 있는데 그 규모가 무려 산업재해로 인정되는 숫자의 12배"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불산과 함께 찾아온 ‘불안의 시대’..유해화학물질 피해 급증
심상정 의원실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업무상 사고의 경우 지난 2009년부터 2012년 6월까지 누적 집계된 것 중 전도사고가 22.97%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감김, 끼임 등 사고가 18.48%로 그 뒤를 이었으며 추락사고가 15.69%, 낙하사고 등이 9.24%, 충돌사고가 8.88%, 절단사고가 8.62%, 사업장 외 교통사고가 4.89% 순으로 나타났다.
이 중 유해화학 물질에 중독되거나 질식된 경우는 0.47%로 나타났다. 사망자수로 보면 추락사고가 32.30%로 가장 많았고, 사업장 외 교통사고가16.65%, 감김, 끼임 사고가 9.54%, 전도사고가 7.04%로 나타났다. 유해화학 물질에 중독, 질식된 경우는 2.33%로 나타났다. 다시 말해 유해 화학물질로 인한 사고는 전체의 0.47% 수준에 불과하지만 사망자수는 다른 종류의 사고보다 4배 이상 많은 셈이다.
환경부 환경통계포털에서 화학물질로 인한 사건사고 자료를 분석해보면 부상·사망자는 대부분 규모가 작은 사업장에서 발생했다. 100인 미만 사업장에서 지난 4년간 다친 사람은 1224명, 숨진 사람은 56명으로 각각 전체 부상자의 88.9%, 사망자의 75.7%를 차지하고 있다.
이 또한 상당수 사고가 누락된 수치라는 분석도 있다. 은수미 의원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국내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전체 사업장 수가 PSM(공정안전관리제도) 대상 사업장보다 1000배 이상 많지만 사고피해현황은 100배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상당수의 사고가 공상처리 되거나 은폐되고 있다는 중요한 정황 중 하나다.
◇지난 2010년 기준 전국 화재폭발누출 사고 피해현황(자료제공=은수미 의원실)
게다가 화학물질 특성상 장기간에 걸쳐 피해가 쌓이는 사고들도 있지만 공식 통계에는 잡히지 않는 종류의 사례도 상당수다. 이윤근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박사는 "불산, 염산 등 화학물질 누출로 인한 사고는 대부분이 급성으로 발병되지만 만성적으로 징후가 나타나는 사례도 적지 않다"며 "장기적으로 암을 유발하거나 불임, 호흡기 장애 등을 유발하는 물질들은 쉽게 통계가 포착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정부·대기업·중기 가릴 것 없이 만연한 '은폐지상주의'
주무 부처인 환경부는 산업 환경 조사에 필수적 통계 자료인 화학물질 유통량 조사에서부터 미온적이다. 환경부가 환경통계포털을 통해 제공하는 전국 화학물질 유통량 자료는 4년에 한 번씩 자료가 업데이트 되며 주요 제조 화학물질, 주요 수입 화학물질 등의 항목은 2002년 이후로 아예 통계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생산라인을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조차도 지난 1월 주민설명회에서 사상 최초로 불산을 포함한 각종 화학물질의 연간 유통량을 공개했다. 그 전까지 수십년에 걸쳐서 단 한 번도 공개된 사례가 없으며 삼성측은 앞으로도 공개할 의사가 없음을 확실히 했다.
미국의 경우 연간 불산 취급량이 불과 45㎏ 이상인 사업장부터 정보공개 의무가 부여되며 지역주민에 대한 알 권리 보장에 대한 조항도 상당히 구체화돼 있다.
당시 삼성전자는 화성사업장에서 연간 사용되는 불산의 양이 12만톤, 기흥사업장은 10만톤 수준이라고 답변했다. 불산을 포함해 총 13종의 유독 물질을 모두 합할 경우 총 40만톤(유통량 기준)에 달한다. 물론 삼성전자측이 일방적으로 제시한 자료이기 때문에 이보다 더 큰 규모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계속)
◇화성시 반월동에 위치한 삼성전자 화성 반도체 사업장(사진제공=삼성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