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기업 "스펙보다는 열정"..채용문화 변화 바람

오디션 도입..실기와 블라인드 면접 도입도 증가

입력 : 2013-05-21 오후 3:51:49
[뉴스토마토 양지윤기자] #. “10만원의 비용으로 106일 동안 세계 14개국을 여행하며 유럽 각국의 근대 미술에 대해 직접 체험하면서 배울 수 있었습니다.” <최아무개(남/27세)>
 
#. “와플과 핫도그를 결합한 ‘왓 독(What Dog)'으로 길거리 장사에 나섰다가 실패했어요. 하지만 실패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메뉴를 개발 중입니다.” <이아무개(남/26세)>
 
지난 4월 한양대에서 열린 ‘SK 바이킹 챌린지’ 예선 현장. 이곳에선 천편 일률적인 전공, 어학, 자격증에 대한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면접관들은 ‘스펙’ 대신 지원자의 역량과 열정을 살필 수 있는 살아있는 경험에 귀를 기울였다.
 
이처럼 최근 대기업을 중심으로 정형화된 채용 기준에서 벗어나 다양한 분야에서 숨은 인재를 가려내기에 혈안이다.
 
21일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가 상반기 채용 시즌을 마무리하며 주요 기업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기업들은 이른바 ‘스펙’이라고 불리는 학점, 토익점수 등 기존 전형 요소보다 열정과 도전정신, 전문성, 창의성 등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많은 기업들이 사회의 다양한 계층을 위한 채용을 별도로 배려하는 것으로 조사되는 등 채용문화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채용에도 오디션 바람..SK·KT 도입
 
최근 각 방송을 통해 오디션 프로그램이 각광받고 있는 가운데 SK그룹과 KT는 오디션 형식을 도입해 눈길을 끌고 있다.
 
SK그룹은 ‘SK 바이킹 챌린지 예선 오디션’을 통해 채용에 나섰다. 이 프로그램은 면접관 앞에서 구직자들이 자신의 인생 스토리를 설명하는 오디션 형식을 통해 취업 기회를 잡는다.
 
올해 4월 열린 오디션에서는 10만원으로 세계 14개국을 106일 동안 무전여행한 지원자, 자신이 디자인한 시계로 1인 창업에 도전한 지원자 등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들이 대거 지원해 면접관들을 놀라게 했다는 후문이다.
 
KT 역시 올해 ‘올레 오디션’이라는 새로운 채용 방식을 도입해 ‘올레 잡페어’ 기간 중 실시했다. 지원자는 5분 동안 자유롭게 자기소개를 하고, 회사는 이를 통해 선발된 인원에게 서류전형을 면제해 주고 있다.
 
◇“스펙 대신 경험과 능력을 보여줘”..실기 및 블라인드 도입도 늘어
 
기존 서류전형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른바 스펙을 채우는 공간이 사라지고 있는 것도 달라진 채용문화의 단면을 보여준다.
 
현대자동차는 지원 서류에서 사진과 부모님 주소, 제2외국어 구사능력, 고교 전공 표시란 등을 삭제하고, 얼굴이 가려진 상태에서 모의 면접을 보는 ‘5분 자기 PR'을 온라인 화상 면접으로 확대했다.
 
또한 하계 인턴사원 채용 과정인 ’에이치 이노베이터(H innovator)'를 통해 전략지원과 연구개발(R&D), 디자인 부문별로 사전과제 평가 등 실기전형으로만 1차 합격자를 선발했다.
 
삼성그룹은 어학 점수나 학점 등 스펙 순서대로 지원자를 추려내는 일반적인 서류전형과 달리, 일정 요건을 갖춘 지원자 모두에게 삼성 직무적성검사인 SSAT에 응시할 기회를 부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올해 4월에는 120개 시험장에서 총 10만명 이상이 시험을 치른 것으로 전해진다.
 
LG그룹은 지난 1995년 처음 시작된 대학생 해외탐방 프로그램인 ‘LG 글로벌 챌린저’를 통해 스펙과 상관없이 학생들의 해외 탐방보고서 심사와 프레젠테이션을 거쳐 최우수상과 우수상 수상팀에 한해 졸업예정자는 신입사원, 재학생은 인턴사원으로 선발한다.
 
◇융합형 인재 채용 확대..인적성 검사도 폐지
 
이밖에 전공에 따른 채용부문간 벽을 허문 융합형 인재채용 확대, 인적성 검사 폐지 등 새로운 시도들도 나타나고 있다.
 
삼성그룹은 올 상반기 공채부터 인문계 전공자를 소프트웨어 직무로 특별 채용하는 ‘삼성 컨버전스 소프트웨어 아카데미(SCSA)’ 전형을 실시한다. 삼성은 당초 공학 배경 중심의 선발에서 벗어나, 인문학적 소양과 기술력을 갖춘 ‘통섭형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이 제도를 도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따라 인문계 전공자를 선발, 6개월 동안 심화된 소프트웨어 교육을 받게 한 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채용한다. 올해 상·하반기 100명씩 총 200명을 선발하는 등 향후 규모를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롯데그룹은 그룹공채에서 ‘대졸 공채’라는 명칭을 '에이 그레이드(A-Grade) 신입사원 공채‘로 변경하면서 대졸 학력 제한을 폐지했다. 이를 통해 고졸 이상 학력자는 신입사원 공채에 지원이 가능하며, 입사 이후에도 대졸자와 동등한 대우를 받게 된다.
 
한화그룹은 ‘변화 3.0’이라는 슬로건 하에 국내 대기업 중 최초로 인적성 검사를 폐지했다. 그 결과 채용 전형기간이 기존 2.5개월에서 1.5개월로 감소했고, 지원자의 부담도 줄였다.
 
GS그룹은 각 계열사별로 특화된 채용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지원자의 역사의식을 확인하고자 국사시험을 도입하는 계열사가 있는가 하면, 또 다른 계열사는 자격증, 어학점수 등 이른바 스펙성 요소에 대한 가산점을 부여하지 않고 있다.
 
두산그룹은 신입사원 채용 서류전형에서 두산이 원하는 인재상과 역량을 확인하기 위해 DBS(Doosan Bio data Survey)를 진행한다. DBS는 지원서 작성 시 온라인으로 체크하는 간단한 설문형태로 구성돼, 입사지원서에는 별도의 학점기입란 자체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포스코는 인턴 채용에 ‘탈스펙 전형’을 신설하고, 지원 서류에 학력, 출신교, 학점, 사진 기재란을 삭제했다. 또한 도전정신, 창의성, 글로벌 경험 등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스토리를 자유롭게 기술한 에세이를 제출하도록 해 열정과 잠재역량을 갖춘 인재를 선발하기 위한 자료로 활용한다.
 
CJ그룹은 서류전형 지원 시 학력 및 사진 등을 제외하고 있으며, 효성그룹도 수험표와 이름을 제외한 학력·출신 지역·전공 등의 정보를 배제한 ‘블라인드 면접'을 시행하고 있다.
 
이용우 전경련 사회본부 본부장은 “이번 조사 결과는 열정과 잠재력을 가진 능력중심의 인재를 선발하기 위해 기업들의 채용 문화에 변화가 있음을 잘 보여준다”면서 “앞으로 기업들은 다양한 계층을 배려한 채용과정을 통해 새로운 채용문화 정착을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구직자들도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에 관심을 기울이고, 천편일률적 스펙 쌓기보다 자신만의 장점과 열정을 이야기로 만들어 부각시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지난 1월 국내 대학 석박사급 500여명의 인재들을 초청해 ‘LG 테크노 콘퍼런스’에서 학생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는 모습(사진제공=LG그룹)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양지윤 기자
양지윤기자의 다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