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양지윤기자] 유럽연합(EU)이 4일(현지시간) 중국산 태양광 패널에 대해 당초 예상보다 낮은 평균 11.8%의 관세율을 부과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국내 태양광 업체에 미칠 파장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관련 업계와 전문가들은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긴장감을 풀기엔 아직 이르다는 평가다. 태양광 산업을 둘러싼 EU와 중국의 입장차가 좁혀질지 여부는 여전히 미지수인 상황이기 때문이다.
국내 1위인 OCI의 경우 중국과 EU의 무역분쟁에 직간접적 영향권에 들어가 있어 양측의 분쟁이 종지부를 찍기 전까지 불확실성이 지속될 전망이다.
한화케미칼 역시 자회사인 한화솔라원이 중국에서 셀과 모듈을 생산하고 있어 EU의 사정권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처지다.
5일 관련업계와 전문가들은 일단 EU와 중국이 정면충돌은 피한 것으로 보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태양광 업계는 이달 초만 하더라도 초긴장 상태였다. 중국산 태양광 패널에 대해 품목별로 최고 67.9%, 평균 부과율은 47% 정도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EU 집행위원회 안팎에서 흘러나오면서 기정사실화하는 기류가 강했다.
그러나 이날 실제 발표된 평균 관세율은 11.8%에 그치며 예상을 뒤집었다. 비록 협상기간 두달동안 한시적으로 적용된다는 단서가 붙긴했지만, 폴리실리콘 판덤핑 판정을 앞둔 중국에 여지를 남겼다는 점에서 최악의 시나리오는 면했다는 게 업계 안팎의 평가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정부의 반발을 의식해 EU의 반덤핑 판정이 다소 누그러진 것으로 보인다. 중국 입장에선 반덤핑 판정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EU를 상대로 치열한 로비를 하거나 협상을 해야 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으며 이번 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한 것은 EU라고 진단했다.
문제는 앞으로다. 유럽과 중국은 애초에 태양광 제품에 대한 반덤핑 조사에 나서는 목적부터가 달랐다.
유럽은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방편으로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에 대한 제재에 나선 반면, 중국은 반덤핑 조사로 수세에 몰리게 되자 방어 차원에서 맞불을 놓은 경우다. 양측의 무역 분쟁이 백지화 될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는 얘기다.
다만 중국이 협상의 여지를 남긴 EU의 메시지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관세율은 조정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전망이다.
국내에선 OCI와 한화케미칼이 양측의 무역분쟁에 직간접적으로 노출돼 있는 가운데 두 기업에 대한 전망이 다소 엇갈리고 있다.
OCI는 중국과 EU의 반덤핑 판정에 모두 촉각을 기울여야 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당장 코앞에 닥친 문제는 중국 상무부의 폴리실리콘 반덤핑 판정이 임박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EU의 반덤핑 판정도 복병이 될 가능성도 크다. 대중국 수출 비중이 무려 50%를 차지하고 있어, 시장 판도에 변화가 생길 경우 고스란히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업계 고위 관계자는 "폴리실리콘 업계는 여전히 공급과잉에 발목이 잡혀 있다"면서 "OCI의 경우 매출 구성이 중국에 편중돼 있는데다 판가도 바닥권을 맴돌고 있어 EU와 중국의 무역분쟁은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일각에서는 EU가 중국과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하고, 47.6%의 관세를 부과하게 될 경우 폴리실리콘 업체에 가격 인하 압박이 들어올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현재 폴리실리콘 가격이 생산원가를 밑도는 수준임을 감안하면 추가적인 부담이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박기용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날 발표된 관세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관세가 부과된다면 웨이퍼, 셀 생산업체들이 폴리실리콘 업체에 가격 인하 요구를 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가뜩이나 폴리실리콘 거래 가격이 낮은 상황에서 이런 압력을 받게 되면 실적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최근 이수영 회장의 조세피난처 페이퍼컴퍼니 설립이 사실로 확인돼, 역외 탈세 논란에 휩싸이면서 국세청의 세무조사 등에도 대비해야 하는 등 사업 위기관리 역량이 분산되고 있는 점도 OCI의 전망을 불투명하게 하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제조기반이 중국에 위치한 한화솔라원 역시 EU의 반덤핑 판정의 직접적 영향권에 들어가 있다. 다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유럽 시장이 축소할 것으로 예상하고, 유럽 편중을 줄인 상태다.
한화솔라원의 실적발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분기 한화솔라원의 국가별 모듈 수출실적은 독일 43%, 이탈리아 5%, 불가리아 4%로 유럽국가의 비중이 52%에 달했다.
유럽 수출이 절반을 차지하는 추세는 지난해 2분기까지 이어지다 지난해 4분기부터는 다시 그 절반으로 줄었다. 지난해 4분기에는 그리스 16%, 독일 8%로 유럽에서 발생하는 수출이 총 24%를 차지했고, 올해 1분기엔 유럽 비중을 22%로 낮췄다. 대신 일본(33%)과 남아공화국(21%) 등 유럽 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한화솔라원 관계자는 "한화솔라원은 미국과 유럽에서 관세가 부과됨에 따라 수출 전선에서 다소 타격이 예상된다"면서 "다만 유럽 시장에서 확고한 지배력을 갖고 있는 한화큐셀의 경우 그동안 중국 업체들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었던 만큼 이번 EU의 반덤핑 판정으로 실적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다솔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EU가 이날 내린 판정은 예상보다 낮은 수준이라 다행이지만, 2달 뒤 다시 관세율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에 방심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라면서 "양측간의 무역분쟁은 계속해서 예의주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중국 상무부는 한국과 미국, EU산 폴리실리콘에 대한 반덤핑 조사를 마무리 짓고, 관세율에 대해 내부적으로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태양광산업협회의 법률 대리인 관계자는 "중국 정부가 폴리실리콘 반덤핑 조사에 대해 결론을 내리고, 발표 시기를 저울질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면서 "중국 현지에서는 유럽이 유화적인 태도를 취한 만큼 중국 정부도 여기에 호응할 가능성도 높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