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오래 남는 것을 춤으로 다루고파"

데뷔 40주년 기념 무대 서는 전위예술가 홍신자씨

입력 : 2013-06-20 오후 6:25:15
[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40년 동안 열심히 한 우물만 팠어요. 그래서 오늘날까지 자신 있게 무대에 설 수 있는 것 같아요. 감회가 새롭네요. 보람 있는 40년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안무가이자 무용가, 작가 등 다양한 수식어가 붙는 전위예술가 홍신자(73·사진)가 무대에 데뷔한 지 어느덧 올해로 40년이 됐다. 영원한 보헤미안이라 불리며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홍씨는 20일부터 23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아리아드네의 실 & 네 개의 벽> 공연으로 다시 한 번 관객 앞에 선다.
 
서울을 시작으로 대구, 창원으로 이어지는 이번 공연은 데뷔 40주년 기념 무대이기도 하다. 지난 19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공연 막바지 연습에 한창인 홍신자와 잠시 만나 공연과 춤 인생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김나볏 기자)
 
춤판에 비교적 뒤늦게 뛰어들었지만 누구보다도 화려한 춤 인생을 펼쳤다. 숙명여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후 1966년 뉴욕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돌연 춤에 매료됐고, 춤에 본격 입문한 지 불과 7년만인 1973년에 뉴욕과 서울에서 <제례>라는 공연으로 본격 데뷔했다. 사회적으로 억눌린 여성의 내면을 제례라는 형식에 쏟아낸 이 공연은 국내에 처음으로 '전위(avant-garde)'라는 개념을 알린 작품으로 평가 받는다.
 
요즘 예술계에서 많이들 언급하는 다원예술, 공동작업의 개념도 홍씨는 이미 40년 전부터 자연스럽게 시도해왔다. 그것도 주로 거장 예술가와 함께 했다. 젊은 시절 뉴욕에서 20년 넘게 활동하는 동안 홍씨와 공동작업한 예술가로는 백남준, 존 케이지 등이 있다.
 
"예술에는 항상 아방가르드다, 포스트모던이다 하는 시기가 있어요. 시대적으로 볼 때 나는 예술가로서 굉장히 행운아였다고 생각합니다. 60~80년대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며 주목을 받던 분들과 작업을 많이 했어요. 그 경험이 젊었을 때 한 번 추고 마는 춤이 아닌, 나이가 먹어도 계속 출 수 있는 춤을 모색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어요."
 
이번 공연은 <아리아드네의 실>과 <네 개의 벽>이라는 두 작품을 묶어 한 무대에 올린다. 두 작품의 공통된 키워드는 바로 미국의 전위작곡가 존 케이지다. 각각 존 케이지의 음악 '위험한 밤', '네 개의 벽'을 토대로 일본인 피아니스트 마사미 타다, 조명디자이너 마사루 소가, 무대디자이너 오르손 비스트롬 등 유명 예술가들과 협업한다.
 
"'위험한 밤'은 프리페어드 피아노(prepared piano)를 위한 음악이에요. 피아노에 어떤 이물질을 장착해서 피아노답지 않은 소리가 나게 하는 것인데 국내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죠. 국내에 이런 류의 작업을 소개한다는 의미, 또 70~80년대에 성행했던 프리페어드 피아노 작업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네 개의 벽'의 경우 이미 아는 사람은 아는 공연이지만 60분이 넘는 시간 동안 저 혼자 춤으로 끌고 나간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봐요."
 
초연작품인 <아리아드네의 실>의 경우 실험적인 성향이 두드러지는 <네 개의 벽>과는 달리 다소 고전적인 분위기를 풍길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스 신화 중 아리아드네 이야기를 빌어 '사랑의 힘에서 지혜를 짜낸다'는 주제를 춤으로 풀어내기 때문이다. 홍씨는 예전에는 좀 더 파격적이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 했다면, 점차 나이가 들고 성숙해 가면서 자극적인 것보다는 내용 위주로 가게 된다고 털어놨다. 한 시대에서 끝나버리는 게 아닌, 좀더 오래 남는 것들을 춤으로 다루고 싶다는 얘기다.
 
"요즘은 모든 게 빠르게 지나가는 시대 아닌가요. 이런 시대에 각자 여러 가지 것들을 추구하며 살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잊어버리면 안 되는, 중요하고 근원적인 것들도 분명히 존재해요. 그런 영원한 가치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습니다." 무용과 예술, 관객에 대한 홍씨의 생각도 어느 정도 반영되어 있다. "관객이 적어지는 시대예요. 그래도 아리아드네의 가느다란 실을 빌어 예술을 보존하고 실행할 수 있는 희망을 담아보려 해요."
 
문득 4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전위예술가로 활동해온 홍신자에게 국내의 '예술하는 환경'이 버겁지는 않은지 궁금해졌다. 홍씨는 "환경적으로 문제되는 것은 없어요. 다만 더 열심히 하지 않으면 이런 장르의 공연이 영영 사라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한 계속 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이런 공연을 알아 보고, 찾아 와서 좋아해주는 관객이 있으니까 할 수 있는 데까지 하려고 해요."라고 답했다.
 
올해로 어느덧 일흔 셋의 나이다. 관객들은 홍신자의 춤을 언제까지 보게 될까. 언제까지 춤을 출 계획이냐고 향후 활동 계획에 대해 묻자 우문현답이 돌아왔다. "언제까지라고 정해놓은 것은 없고 할 수 있을 때까지 출 거예요. 우리가 언제 죽을 지 어떻게 아나요? 죽는 시기 정해두지 않고 살아 있을 때까지 살듯이, 춤도 출 수 있을 때까지 추는 거죠." 해외 무대를 향한 새로운 도전을 계획 중이라고 하니, 아무래도 국내에서 홍신자의 춤을 만나볼 기회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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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볏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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