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헌철기자] 삼성가 장녀 이부진(사진) 호텔신라 사장이 추진하는 서울 장충동 호텔 내 비즈니스호텔 건립안이 또 다시 무산됐다. 호텔신라 측이 제출한 4층짜리 부지내 비즈니스호텔 건립계획안에 서울시가 재검토 의견을 내렸기 때문이다. 세번째 제동이다.
지난 17일 서울시는 '제12차 도시계획위원회'를 열어 신라호텔이 신청한 중구 장충동2가 202번지 일대 '남산자연경관지구 내 건축규제 완화 결정안'을 보류했다.
호텔신라(008770)가 수익 구조가 악화되고 면세점의 해외 사업이 지지부진하자 국내 면세점 확장으로 정책을 선회하고 서울, 제주에서 면세점 증축을 무리하게 추진하고 있지만 각계각층의 뭇매로 고배를 마시고 있다.
지역민들을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증축이라는 비난 여론도 거세다.
호텔신라는 현재 제주점을 확장 중이고, 장충점도 현재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에 건축완화요청서를 제출했지만 보류됐다.
장충점은 서울 시민의 허파인 남산 자연경관지구 내에서 증축을 추진한다는 점에서 시민단체와 여론의 지탄을 받고 있다. 더욱이 제주점은 확보하기로 한 주차공간을 확보하지 못해 증축이 무산되거나 불법주정차난을 더욱 심화시킬 것으로 예상돼 반발을 사고 있다.
◇관광호텔이 옆에 있는데 전통호텔 또 신축?..'꼼수' 논란
시 도시계획위원회가 호텔신라의 전통호텔 신축과 면세점 증축의 내용이 담긴 건축완화요청서를 보류한 이유는 요청의 초점이 몸통인 전통호텔보다 부대시설인 면세점 확장에 더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전통호텔 신축은 결국 면세점의 신축허가를 얻기 위한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가 없었던 것이다. 호텔신라는 2011년 8월과 2012년 7월에도 건축완화요청서를 제출했지만, 시는 이를 반려했었다.
실제로 다음달 리모델링을 완료해 첫 선을 보이는 관광호텔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통호텔을 짓기 위해 이렇게 무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해답은 호텔신라의 매출 구조를 보면 알 수 있다.
2012년도 호텔신라의 전체 매출액 2조1897억원 중 면세점 매출은 1조8985억원으로 무려 87%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면세점 매출 증가가 호텔의 매출 증가로 바로 이어지는 것이다.
특히 호텔신라는 지난 1월부터 신라호텔 장충점의 리모델링으로 객실 등 영업을 전면 중지해 사실상 전체 매출에서 면세점이 차지하는 비율이 더욱 커진 상태다. 반면 영업이익률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2012년도 1분기 영업이익률은 6.3%였지만, 올해는 1.8%로 급락했다.
게다가 지난해부터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해외 시장 진출도 지지부진함에 따라 새로운 성장 동력이 절실한 상황이다.
경쟁사가 해외 공항은 물론 시내면세점까지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있는 반면, 호텔신라는 싱가포르에 소규모 매장 2개만을 운영하고 있다.
◇신라면세점 제주점 증축 위한 주차장 부지 확보 못해
지난 5월에는 제주시 연동에 있는 신라면세점이 개점 25년 만에 교통영향평가 심의를 거쳐 증축이 허가됐다.
신라면세점 제주점은 면세점 증축을 추진 중이다. 제주시는 신라면세점이 주차장을 추가 확보하는 것을 조건으로 면세점 증축허가를 내줬다.
하지만 신라면세점은 주차장부지를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6월7일 착공에 앞서 면세점 근처 오피스텔 옆부지를 확보해 대형버스 14대 주차공간을 만들기로 하고 조건부 증축 허가를 받았으나, 부지매입에 실패한 것이다.
주차장 부지 매입 실패는 곳바로 제주시민들의 불편 민원으로 연결될 전망이다. 이 근처는 중국인 관광객 단체 버스 불법 주차로 시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는 곳이다.
◇남산 자연경관지구에 면세점 증축 강행..조례 '악용' 지적도
호텔신라가 중구청을 통해 시에 제출한 건축완화요청서는 현재 남산에 운영 중인 면세점을 지하 4층에서부터 지상 4층의 전통 호텔로 변경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특히, 현재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곳에 지하 6층에서 지상 4층 규모의 주차장과 면세점을 새로 짓겠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문제는 자연경관지구로 지정된 남산은 지난 30여 년간 원천적으로 상업숙박시설의 신축이나 증축을 불허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2010년 6월 조례가 개정돼 자연경관지구라도 너비 25m 너비 도로 변에 위치하고, 도시계획위원회의 심의를 득할 경우 숙박시설 건축이 가능해졌다.
개정 조례가 남산에 위치한 대기업 호텔들에게 특혜를 제공하는 재벌 조례라는 비판이 거세자 서울시의회는 지난해 7월 다시 한 번 조례를 개정했다.
개정안은 한국전통호텔을 건축하는 경우 가능하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남산에 상업시설들이 우후죽순 생기는 것을 경계하겠다는 의미다.
시는 지난 30여 년간 방치 온 남산을 시민에게 돌려주고 후손에게 제대로 된 환경으로 물려주기 위해 유네스코 등재도 추진하고 있다.
1994년 남산 외인 아파트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야외식물원을 만들었으며, 수도경비사령부 자리에는 남산골 한옥마을을 조성했다. 남산 제 모습 찾기 일환이다.
이 같은 조례 내용으로만 보면 호텔신라 측의 신축 요청은 문제 될 것이 없어 보이지만, 뜯어 보면 조례를 악용해 면세점을 증축하려 한다는 지적을 받기 충분하다.
호텔 지붕에 기와를 얹는 등 전통 호텔을 자기 식대로 규정하고 부대시설인 면세점 증축에 더욱 공을 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남산 보존을 위해 한 쪽에서는 철거하고, 한 쪽에서는 증축하는 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지난해, 객실 귀빈 층에 일본 전통 의상 '유카타'를 비치해서 논란을 일으키고, 2005년 한식당 '서라벌'을 수익성 악화 이유로 폐쇄한 것은 호텔신라의 영업방식을 대변한다.
특히, 세계적인 한복 디자이너 이혜순 씨의 뷔페 입장도 거부할 만큼 한국 전통 문화에 대한 배려심이 부족한 호텔신라가 '한국전통호텔업'이라는 조례를 이용해 관련 사업을 성실히 해 나갈 수 있을지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는 게 업계와 시민들의 시각이다.
한편 이에 대해 호텔신라측은 "서울시의회는 서울시에 숙박시설이 많이 부족한 상황을 고려해 숙박시설 규제를 완화하도록 조례를 개정했으며, 당사는 서울시의 조례 등 법률에 맞춰 전통호텔 신축을 추진하고 있다"며 "전통호텔은 기존의 면세점 자리에 신축되고, 부대시설은 면세점과 주차장은 기존의 주차장으로 이전할 계획"이라고 해명했다.
또 "제주면세점은 공사완료 전까지 주차장을 확보할 것을 전제로 공사가 진행중이며 현재 제주면세점은 주차장 부지 확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