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황 민 규 기자] 앵커: 지난 3일이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애플의 스마트폰과 태블릿 제품 등에 대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 ITC의 수입금지 권고에 거부권을 행사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미국 대통령이 ITC의 권고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지난 1987년 이후 26년만에 처음있는 일로 매우 이례적인 일인데요, 전 세계적으로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 휴대폰 시장에서도 선두권에 진입한 삼성전자에 대한 집중 견제라는 분석도 제기되는데요, 취재 기자와 함께 현재까지 상황과 향후 전망에 대해 짚어보겠습니다. 산업부 황민규 기자 나와있습니다. 자세한 내용 전해주시죠.
기자: 네, 우선 이번 ITC의 권고안은 지난 6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ITC는 미국 최대 이동통신사인 AT&T를 통해 판매된 애플의 아이폰4와 아이폰3GS, 아이패드3G, 아이패드2 3G 등이 삼성전자의 통신특허를 침해한 사실이 인정하면서 중국에서 생산된 해당 제품들에 대한 미국 내 수입금지를 요청했었습니다.
물론 ITC 규정상 미국 대통령은 60일 이내에 권고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다만 지난 1987년 당시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삼성의 메모리칩 제품에 대한 ITC의 수입금지 판정에 거부권을 행사했던 사건 이후로 처음이라는 점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결정권을 위임한 무역대표부(USTR)는 "미국 경제와 소비자들에게 끼칠 영향을 고려해 내린 결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앵커: 그렇군요. 애플은 이번 정부 결정에 당연히 반색하고 있겠지만, 삼성전자측 충격이 크겠네요. 특히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애플을 감싸고 있다는 점이 큰 문젠데, 삼성측 입장은 어떤가요?
기자: 발표 직후 공식 입장을 통해 실망감을 드러냈던 삼성전자는 또다른 항소를 준비 중입니다. 이번 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거부권을 행사한 특허권이기 때문에 더 이상의 법적 대응을 하기 힘들지만 ITC가 지난 6월에 기각했던 상용특허 2건, 표준특허 1건에 대해 연방순회 항소법원을 통해 항고를 진행 중입니다. 관계자에 따르면 이미 지난 7월 항고 과정을 시작했기 때문에 사실상 이번 오바마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와는 무관하게 진행된 셈입니다. 만약 항소 법원이 삼성의 특허권을 인정할 경우 ITC는 기존 판결을 파기하고 다시 오바마 대통령에게 수입금지 권고안을 제출해야 합니다.
하지만 항소법원이 삼성전자의 특허권을 인정하고 ITC 판결을 파기할 가능성은 낮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입니다. 실제 최근 미국 법무부와 특허청은 표준 특허권과 관련해 "극히 예외적인 경우 외에는 판매금지 처분을 내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경 발언을 쏟아내는 등 특허전이 시장에 직접적으로 전이되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이고, 이는 법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에 삼성전자의 '정무적 판단'에도 이목이 집중됩니다. 미국 행정부와 직접적 대립각을 세워봐야 이로울 것이 없다는 얘긴데요. 게다가 ITC에서의 법정 공방이 삼성전자나 애플 매출에 심각한 타격을 줄 정도로 사안이 폭발적이진 않습니다. 삼성과 애플, 양쪽이 수입금지를 요청한 품목이 모두 출시한 지 2년 이상된 구형 제품들이기 때문입니다.
앵커: 하지만 삼성전자가 보유하고 있는 표준특허에 대해 미 행정부가 공식적으로 거부권을 행사한 이상 향후 소송 과정에서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볼 순 없지 않을까요?
기자: 우선 현재 진행 중인 소송 과정상 크게 달라지는 건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표준특허의 경우 삼성이 애플과의 특허전에서 일종의 '방어무기'로 활용해 온 성격이 짙은데요, 문제는 한국 법원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소송 과정에서 외면 받았다는 점입니다. 유럽연합(EU)은 오히려 삼성의 표준특허 공세를 반독점법으로 규정해 압박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 유럽 지역에서의 표준특허 관련 소송을 모두 취하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습니다.
또 문제는 표준특허 로열티 협상 과정에서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인 애플의 행태를 오바마 행정부가 그대로 인정했다는 점인데요. 이는 향후 특허전에도 변화가 예상되는 대목입니다. 삼성전자가 애플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특허를 보유하고 있는 롱텀에볼루션(LTE) 관련 사용료 협상에서 애플의 입지를 강화할 개연성이 높다는 얘기입니다.
앵커: 그렇군요. 이번 사안에 대해 전 세계 언론들의 관심도 매우 뜨거운 상황인데요, 주요 외신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기자: 네, 전 세계 언론은 기다렸다는 듯 오바마와 애플의 '유착'과 미국식 보호무역주의에 대한 쌓였던 불만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각국 주요 IT 전문 매체들은 이번 사안에 대해 ‘오바마가 애플의 최대 조력자로 등장했다’면서 비판적 견해를 나타내고 있는데요. 미국 내 여론도 삼성전자를 향해 돌아선 모양새입니다.
오바마 정부의 '애플 감싸기'는 미국 내 다른 기업들의 불만을 사기도 합니다. 특히 표준특허를 상당수 보유하고 있는 퀄컴, 마이크로소프트(MS), IBM 등은 애플에 대한 미국의 지원이 세계무대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해칠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다시 말해 오바마 대통령의 개입이 세계적인 기술선도 기업들로 하여금 특허 전략에 전면적으로 수정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월스트리트저널 등의 주요 외신은 이번 사안이 "스마트폰 시장에서 지적재산에 대한 오랜 투쟁들을 뒤집어 놓게 될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