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원정기자]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나오는 유명한 슬로건에 '세금'을 덧붙인다면 어떤 단어와 나란히 놓이게 될까?
소설 속 오세아니아는 전체주의 국가로 이 나라의 유일한 정당은 저 세가지 슬로건을 내걸고 사람들을 '매우 효과적으로' 지배한다.
불경스럽게 고전의 한 대목을 잡아서 상상의 나래를 펼쳐든 건 세금이란 단어 앞뒤에 억울하게 따라붙는 부정적 뉘앙스의 표현 때문이다.
소설처럼 누군가 특정한 생각을 주입하기 위해 의도한 것인지는 알길이 없지만, 세금은 으레 '피해야 할 그 무엇'이란 의미와 등치돼 버리곤 한다.
가까스로 `조세 피난처`가 `조세 회피처`로 정정된 게 몇달 전인데 최근 세법개정안을 둘러싼 논란 끝에 유력정당에서는 `세금 폭탄`이란 단어까지 등장시켰다.
불과 며칠사이 '증세 논란'에 힘입어 대통령까지 개정안에 대한 전면 재검토를 지시했다 하니 세금에 덧입혀진 부정적 뉘앙스의 위력은 실로 막강하다.
정부 역시 연소득 3450만원에서 7000만원 사이의 소득자가 1년에 16만원 정도 더 내는 수준이라고 해명하고 나섰지만 이미 대통령의 한 마디로 상황은 종료되고 경제컨트롤타워의 수장인 현오석 부총리는 "전면 재검토"를 복창하고 나섰다.
차분히 되돌아 보자. 과연 `세금폭탄`인가. `증세`는 맞지만 폭탄은 과잉이다. '증세'에 대한 국민적 반발도 순서의 어긋남에서 나타난 필연적 결과다.
한국의 조세부담율은 세계적으로 낮은 편에 속한다. 국회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지난 2010년 기준 한국은 19.3%, OECD 나라 가운데 뒤에서 세 번째다. 20% 중반을 찍는 OECD 평균에는 당연히 미치지 못한다.
미래의 한국 사회를 고민한다면 복지재정이 확대돼야 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증세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GDP 대비 사회복지 지출은 9.3%로 OECD 평균인 21.8%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결국 증세만이 마지막 해법일 수 있다. 그런데도 왜 이다지 커다란 반발에 직면했을까?
엉망이 된 순서에 그 원인이 있다. 다시 말해 대기업과 고소득층 증세부터 이야기 한 다음 (정부가 주장하는)중산층의 세부담을 꺼내들거나, 최소한 이명박정부가 추진한 부자감세부터 원위치 시킨 이후에 중산층의 지갑을 손대는 것이 순서였다.
결국 모든 얽힌 실타래를 풀어보면 `원죄`는 이 정권에 있다. "증세없이 복지국가를 이루겠다"고 공약한 현 정권의 탓이다. 현실을 모르는 무지한 자신감이 부른 화다.
국민은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현실에 대한 답답함은 각오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으로 많은 세금을 내도 생계에 지장이 없는 부자들은 고스란히 두고, 상대적으로 털기 쉬운 월급쟁이부터 시작하는 것이 기분 나쁘다. 지금 `증세`는 반감만 키울 뿐이다. 이 정부는 `티핑포인트`를 놓쳤다.
자료제공: 국회입법조사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