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진아기자] 막바지 무더위가 전국에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올 여름은 연일 폭염이 이어지면서 유독 더웠는데요. 극심한 전력난 위기 속에 냉방기 공급도 원활하지 않아 몸도 마음도 지치는 나날이었습니다.
공공기관의 경우, 폭염 속 더욱 힘든 여름이었는데요. 정부의 고강도 절전 대책에 폭염 견디랴, 전기 아끼랴 진땀 나는 하루하루였습니다.
정부세종청사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청사 건물 구조상 창이 전면 유리라는 점, 주변 환경이 모래로 뒤덮여 있는 공사판이라는 점 등을 감안할 때 어느 정도 무더위는 예상했지만, 실제 겪어보니 그 '무더위'는 어마어마했습니다.
일주일 전인 지난 12~14일에는 무더위 속 여름나기의 '절정'을 보여줬는데요. 정부가 전력수급의 최대 위기를 맞자 공공기관의 냉방을 전면 중단할 것을 주문했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날 정부세종청사 뿐만 아니라 서울청사, 과천청사 각 부처에 고강도 절전대책 공문을 보내 낮 시간대 실내조명 소등과 냉방중단 협조 요청을 했는데요.
공문에는 이날부터 14일까지 3일 동안 근무시간에 에어컨 및 공조기 가동을 전면 금지하고, 사용하지 않는 냉온수기 등을 차단토록 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물론 사무실 조명도 가급적 소등토록 주문했고요.
이에 따라 정부세종청사는 3일 동안 냉방기가 전면 중단되고 실내 조명도 차단됐습니다.
◇지난 12일 불꺼진 정부세종청사의 계단 모습(사진=뉴스토마토)
평소에도 공무원들은 정부의 절전 시책에 따라 냉방기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상태에서 힘들게 일했지만, 이마저도 끊기니 그야말로 공무원들의 수난시대가 시작된 것입니다. 공포의 월·화·수요일이 된 셈이죠.
냉방기 전면 중단이 실시된 첫 날, 청사관리소가 중앙냉방을 모두 중단하자 세종청사 공무원들을 비롯한 출입기자들은 30도 중반을 오르내리는 무더위 속에 진이 빠졌습니다.
국토교통부의 한 부서는 견디다 못해 복사기 2대와 TV 모니터 3대를 다 껐고, 천장의 형광등도 여섯 줄 가운데 한 줄만 남기고 소등했습니다.
국토교통부 공무원은 "복사기가 열기를 엄청나게 뿜어내 덥다 보니 일단 껐고, TV, 형광등도 껐다. 컴퓨터 빼고 끌 수 있는 건 다 껐지만 그래도 덥다"면서 "앉아만 있어도 땀이 주르륵 흐른다"고 토로했습니다.
기획재정부 공무원도 "더운데다가 어두컴컴하니 서류도 읽기 힘들다"면서 "업무 집중도 떨어지고 일의 능률도 떨어진다"고 하소연했습니다.
오후 한 때는 화장실 세면대 수돗물마저 끊겨 세수도 못할 지경에 이렀는데요. 곳곳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들리는 건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부처를 출입하는 기자들 역시 '멘붕' 상태였습니다. 기자들도 바람 한 점 없는 기자실에서 노트북 열기와 맞서 싸우며 기사 쓰는 일이 곤욕, 그 자체였습니다.
어느 한 기자는 "차라리 차 안에서 에어컨 틀고 기사 쓰고 싶다"며 "더위에 일할 힘도, 말할 힘도 없다"며 겨우 버텼습니다.
아마 3일 동안 '열국(熱國)열차'를 탄 공무원 및 기자들은 이때처럼 '설국열차'를 타보고 싶다라는 간절한 소망이 드는 적도 없었을 겁니다.
냉방기 전면 중단 첫 날을 겪고 나자, 둘째 날인 13일에는 제법 곳곳에서 여름나기 풍경들이 발견됐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그들만의 더위 대처 방법이겠죠.
어떤 공무원은 아예 선풍기를 들고 출근하는가 하면, 어떤 공무원은 목에 아이스넥쿨러를 두르고 팔에는 쿨토시를 끼고 청사에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물론 모두들 손에는 부채가 필수품으로 들려 있고요.
이런저런 방법으로 힘겹게 무더위와 싸우며 3일이 무사히 지나갔습니다. 다행히 최악의 전력 고비도 일단 넘겼고요.
하지만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어느 한 공무원이 우스갯소리로 얘기한 "더워도 참고, 추워도 참는다. 혹서기, 혹한기마다 우리는 매번 이렇게 참아야 하는가?"라는 말이 계속 뇌리에 맵돕니다.
물론 지난 2011년 9.15 정전사태의 악몽이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가짜 원전 부품 비리와 잇따른 화력발전소 고장으로 사상 최악의 전력난이 우려된 것은 당국의 관리 잘못으로 빚어진 자업자득의 결과이겠지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서로가 힘들고 매년 이러한 땜질식 처방으로 여름 전력난을 이겨낼 순 없으니, 하루 빨리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겠다는 조바심이 들기도 합니다.
잘잘못을 따지며 과거 행적만 쫓는 것보다는 미래 다가올 위기에 대비해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현명한 판단이겠지요.
마침 오는 22일은 지난 2004년 이전 대비 역대 최대 전력 소비를 보여 에너지를 아끼자는 의미로 제정된 '에너지의 날'이 10년째를 맞는 날이라고 합니다.
10년이 지난 지금에야 우리는 너무도 뼈저리게 에너지의 소중함을 피부로 느끼고 있는데, 향후 10년 후에도 오늘과 같은 똑같은 일을 겪지 않으려면 어서 빨리 '방도'를 찾는게 현명한 선택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