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대란 고질병)③국민만 고통..전력대란 주범은 `정부`

"공급도 부족한데 수요관리 한다고?"..정권 입맛대로 바뀌는 전력정책

입력 : 2013-08-26 오후 4:27:32
[뉴스토마토 양지윤·최병호기자]우리나라에 대규모 정전(블랙아웃) 공포가 닥쳤던 2011년 이후 연례행사처럼 일어나는 전력난의 주범은 무엇일까. 뉴스토마토가 그동안 취재한 결과, 정부 측 주장인 '국민의 전력낭비'는 전력위기의 진짜 원인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오히려 정부의 전력 수요예측 실패와 왜곡된 전기요금 체계 등 정책적 모순, 민간발전사에만 이득인 전력판매제와 그에 따른 전력당국의 적자가 더욱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그럼에도 정부는 지금껏 국내 전력체계의 고질병은 숨긴 채 국민에 고통분담만 강요한 것.
 
이에 업계 전문가들은 정부가 쥐어짜기식 절전운동을 전개하고 발전소를 과부하 직전까지 가동하는 땜질 처방보다는 근본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삐뚤어진 전기요금 체계 개편과 전력시장 개선, 전력공급 확충이 필수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전력 낭비가 원인?..전기먹는 하마 `산업계`와 왜곡된 요금체계 때문
 
정부는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싼 전기요금과 높은 전기사용량을 근거로 국민의 전력낭비가 전력난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이것은 과연 진실일까. 물론 정부가 제시하는 각종 통계와 자료들을 보면 정부 주장이 아주 틀린 건 아니다.
 
26일 산업통상자원부와 에너지관리공단 등의 자료를 보면 2011년 기준 국내 전기요금은 가정용과 산업용이 각각 ㎾h당 0.083달러, 0.058달러였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0.157달러와 0.110달러보다 싸고,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서도 낮다.
 
전기값이 싸면 전기사용량도 높은 게 당연해 우리나라의 GDP 대비 전기사용량은 0.61%로 미국(0.34%)이나 일본(0.23%) 보다 훨씬 높다. 1인당 연간 전기소비량 역시 9197㎾h로 일본(7868㎾h)은 물론 OECD 평균(7617㎾h)에 비해 많다.
 
이렇게 보면 국민의 전력 과소비가 블랙아웃의 원인처럼 보일만 하다. 그러나 여기에는 맹점이 있다. 전력사용 '인구'가 아니라 '용도별'로 계산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용도별 전력사용량을 분석하면 전기 먹는 하마는 따로 있다. 바로 산업계다. 실제로 산업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용도별 전력소비량은 산업용(197억7000만㎾), 상업용(87억4760만㎾), 가정용(47억9394만㎾) 순이었다.
 
◇용도별 전력사용량(2012년 10월 기준)(자료제공=산업통상자원부)
 
산업용 전기요금은 가정용보다 1.43배 싸지만 사용량은 4배나 더 많은 셈. 이는 국내 1인당 가정용 전력사용량은 1088㎾로 미국(4508㎾)과 일본(2189㎾)에 비해 낮지만, 산업용은 3762㎾로 미국(2640㎾)과 일본(2070㎾)보다 높은 기이한 결과를 가져왔다.
 
이에 대해 기후변화행동연구소 관계자는 "전력난은 전기요금 왜곡이 부른 부메랑"이라며 "가정에서는 비싼 전기요금 내기 싫어서라도 절전이 일상생활화 됐지만 산업계에서는 싼 전기요금이 곧 비용감소의 요인이기 때문에 전기를 펑펑 쓰게 된다"고 지적했다.
 
◇산업계 요금인상 대폭 인상하고, 민간발전사 요금 현실화해야
 
그렇다면 정부는 왜 산업용에 싼 전기요금을 매겼을까. 산업부 관계자는 "1960년대부터 산업 활성화 정책을 추진하며 전기요금을 싸게 제공했다"며 "정부는 산업용 전기사용량을 줄이려고 전력다소비업체 의무절전, 자가발전기 가동 등 실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가정은 전기요금 누진제로 요금폭탄을 받지만 산업계는 수십 년 넘게 특혜성 요금을 받는 불공평한 상황에서 이는 근본적 해결이 아니라는 의견이다. 결국 관건은 산업계의 전기요금 대폭 인상을 핵심으로 한 전반적인 요금 현실화라는 주장이다.
 
소비자시민모임 관계자는 "결국 전기요금을 전반적으로 올리는 요금 현실화가 답"이라며 "그러나 가정용에만 적용되는 누진제는 산업계에 대한 특혜이자 전기라는 공공재의 형평성을 해치기 때문에 요금을 개편한다면 산업계부터 손을 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력시장도 개선이 필요하다. 정부는 지난 2001년 한국전력의 전력시장 독과점 구조를 깨고 값 싼 전기를 제공한다며 민간발전사의 전력판매를 허용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전력시장은 민간발전사의 배만 불리는 형국이 됐다.
 
올해 상반기 기준 SK E&S, 포스코 에너지, GS EPS 등 3개 민간발전사의 영업이익율은 각각 38.91%(2086억원), 8.9%(1276억원), 8.84%(489억원)로 집계돼 한국남동발전 등 5개 발전자회사의 총 평균 영업이익률(6.58%)보다 훨씬 높았다.
 
◇각 민간발전사 및 발전사회사별 영업이익율(2013년 상반기 기준)(자료제공=뉴스토마토)
 
민간발전사의 영업이익이 높은 것은 전기를 싸게 생산해 비싸게 팔기 때문이다. 올해 상반기 기준 이들의 평균 전력생산단가는 ㎾h당 96.40원, 판매단가는 152.32원으로 발전자회사가 ㎾h당 99.02원에 전력을 파는 데 비하면 53.3원이나 많이 받는다.
 
여기에 전기의 원가회수율(지난해 기준 가정용 92.8%, 산업용 89.4%)까지 낮아 한전은 지난해 2조6929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민간발전사 과도한 이익추구, 한전 발전자회사 발전소 고장 빌미 제공
 
이에 산업부 관계자는 "전력시장의 판매단가는 수요와 공급의 결과"라고 손을 놨다가 "발전자회사와 민간발전사의 가격 차이가 계속 커지면 시장질서 유지가 제한될 수 있다"며  올해 초에야 민간의 이윤 폭을 제한하는 정산가격 상한제를 겨우 도입했다.
 
민간발전사의 과도한 이익추구는 발전자회사의 무리한 발전소 운영을 불러와 발전소 고장의 원인으로도 지목된다. 정부는 값싼 발전소를 더 많이 가동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8월10일부터 12일까지 한국동서발전이 관리하는 일산열병합발전소(10만㎾)를 비롯 서천화력발전소(20만㎾)와 당진발전소(50만㎾)가 잇따라 운전을 멈췄다. 무더운 날씨에 치솟은 전력수요를 감당하려고 발전소를 계속 가동해 장비에 이상이 생긴 것이다.
 
에너지정의행동 관계자는 "전력당국의 적자가 커지면 전력시설 유지관리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는데 시설고장 등으로 발전소가 가동을 멈추면 전력난이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관계자는 또 "기업 특성상 산업용 전기를 아끼는 데는 한계가 있어서 정부는 전력당국의 적자를 메우기 위해 국민에 절전을 종용하는 것"이라며 "정부가 민간발전사의 이득과 산업계의 전력사용을 챙겨주는 대신 국민에게는 절전 고통을 강요한다"고 주장했다.
 
최상봉 한국전기연구원 연구원도 "에너지가격 구조는 자원배분 효율성과 관련해 매우 중요하다"며 "발전사의 투자 보수율을 보장 못 하면 전력서비스 수준이 떨어지고 경영난 악화 등의 부작용이 생기기 때문에 전력시장 개선을 위한 정책마련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전력공급 확충도 전력대란 고질병을 없애기 위한 관건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정부의 가장 큰 에너지정책 모순 중 하나로 전력수요 예측 실패에 따른 전력공백을 지적한다.
 
산업부가 지난 2002년부터 마련한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보면, 정부는 전력수요를 연평균 2.5%~5%대로 예측했지만 2000년부터 2011년까지 연평균 전기 소비증가율은 7%대를 기록해 정부 예측과 실제 수요에 많은 차이를 보였다.
 
◇연도별 수요예측과 최대 전력수요 추이(자료제공=산업통상자원부, 전력거래소)
 
◇"정권 입맛따라 바뀌는 정책"..전력부터 충분히 공급하고 수요관리하라 
 
수요예측 실패는 곧 전력시설 부족으로 이어졌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8월 둘째 주 최대 전력수요는 8050만㎾로 올해 8월1일 기준 국내 발전설비용량 8563만㎾과 500만㎾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발전소 한두기가 고장나면 바로 전력난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그렇다면 왜 정부는 전력수요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하는 것일까. 산업부 관계자는 "전력수요 예측의 기본이 되는 전력수급기본계획은 미래 15년을 내다보고 작성하는데 사실상 10년 이후의 경제상과 미래를 예단하는 게 쉽지 않다"며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들은 미래 예측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의 전력정책에 원칙이 없다고 강조했다. 원자력발전소 건설은 물론 신재생에너지 사업도 정권이 바뀌면 정책 역시 일관성을 잃는 바람에 실무부처는 장기적 안목으로 전력정책을 세우지 못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역대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보면 2008년에는 원전을 안정적 전력공급의 핵심수단으로 강조했지만 올해 세워진 6차 기본계획에서는 판단을 유보했다. 신재생에너지 예산 역시 이명박 정부는 9982억원 배정했으나 박근혜 정부는 14.7% 준 8512억원을 편성했다.
 
대한전기학회 관계자는 "우리나라 전력체계는 저효율, 과소비 구조라 국민 삶의 질을 높이는 안정적 전력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며 "정부가 단기 성과나 사업활성화에만 집중할 게 아니라 국민에 에너지 복지를 제공한다는 측면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또 "앞으로는 '값 싸게 전기를 제공한다'는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풍부하게 제공한다'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전력수요 관리도 중요하지만 일단 적당하게 배분할 전력공급 기반 자체가 있어야 배분을 하든 절전을 하든 할 것"이라고 말했다.
 
더이상 한정된 전력공급량을 가지고 전력 배분과 절전을 고민하기보다 충분한 전력공급량을 확보한 다음에 수요관리에 노력하는 게 더 현명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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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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