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사진=뉴스토마토 DB)
[뉴스토마토 김미애기자] 횡령 혐의로 기소된 최태원
SK(003600)그룹 회장의 항소심이 '핵심 인물'로 지목된 김원홍 전 SK해운 고문에 대한 증인신문 없이 종결될 것으로 보인다.
또 법원은 최 회장의 범죄 동기·경위에 대한 공소사실을 변경하라고 검찰에 요청했다. 다음 기일인 29일에 공소사실 변경 여부가 결정되면 재판부는 선고기일을 잡을 방침이다.
27일 서울고법 형사합의4부(재판장 문용선)는 최 회장 등에 대한 항소심 재판의 변론을 재개하고 "변호인 측이 재신청했던 김씨에 대한 증인신청을 기각한다"고 결정했다.
김씨는 SK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해외로 출국해 검찰 수사와 법원의 재판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지난달 31일 대만에서 전격 체포돼 국내 송환절차가 진행 중이다.
◇'마지막 변수' 녹취록, 이번엔 최 회장 발목 잡나
재판부는 "당장 내일 김씨가 입국하더라도 증인으로 채택할 의사가 없다"며 김씨의 송환 여부가 불투명해서 증인신문을 하지 않겠다는건 아니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김씨를 증인으로 신청한다는건 탄핵증거와 양형자료라고 볼 수 있는데, 공소사실에 대한 김씨의 입장은 변호인이 제출한 '녹취록'에 충분히 나와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그 녹취록이 탄핵증거로서 가치를 지니는지 여부에 대해 재판부가 검토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며 "별개로 김씨가 법정에서 증언할 필요는 전혀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결국 녹취록이 존재해 최 회장은 김씨를 재판에 증인으로 세워볼 기회조차 잃은 셈이다.
결심공판 직전 최 회장측 변호인은 최 회장의 무죄를 입증할 증거라며 '김씨와 최 회장, 최재원 부회장, 김준홍 전 베넥스 대표'의 통화내용이 녹음된 녹취록을 증거로 제출했지만 재판부는 "어떤 목적으로, 어떤 시기에 녹음됐는지 신빙성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었다.
김씨의 증인채택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최 회장 측에게 남은 시간은 단 이틀 뿐이다.
재판부는 검찰에게 다음날 까지 '공소장 변경' 요청에 대한 의견을 제출하라고 했고, 이에 대한 변호인 측 의견을 검토한 다음 오는 29일 바로 선고기일을 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한 번 재판을 종결하고 선고기일을 연기했던 재판부가 이날 변론을 재개한 이후 재차 재판을 종결하는 것이기 때문에, 또 변론이 재되될기는 힘들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최 회장의 항소심 선고기일은 늦어도 9월 중에 열릴 것으로 보인다.
◇"등록금 마련하려고 도둑질 했어도 본질은 달라지지 않아"
재판부가 검찰에게 공소사실을 변경해 달라고 요청한 핵심은 '범죄의 동기'다.
그동안 1심 재판과정에서부터 최 회장은 '선친이 돌아가신 이후 경영권 승계 문제로 동생인 최 부회장이 상속지분을 포기했다. 이 때문에 항상 '마음의 빚'을 지고 있었고, 그 때문에 SK C&C 주식을 담보로 대출하게 해달라는 동생의 부탁을 들어줬다'고 주장했다.
그는 검찰이 공소사실에 적었던 '경제적 어려움' 탓은 아니라는 입장을 재차 강조했었다.
이날 재판에서도 재판부는 최 회장에 대한 피고인 신문을 통해 "SK C&C 주식을 담보로 대출하게 해달라는 동생의 부탁을 들어준 경위'에 대해 집중적으로 질문했고, 이에 대해 최 회장은 "투자 이익이 난다면 동생에게 이익이 갈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최 회장의 주장을 재판부가 어느정도 받아 들인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재판부는 범죄 동기 부분의 공소사실을 변경한다해도 유무죄는 달라지지 않는다고 명확히 선을 그었다.
재판부는 "최 회장은 펀드 선지급 결정은 인정하면서도 범죄의 동기가 없다며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며 "얼마든지 투자금 조달하는데 문제가 없었다는건데, 만약 공소사실에 적힌 것과는 다른 동기가 있다면 최 회장 주장의 전제 내지 기초가 없어지는 공허한 주장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검찰에게 변경을 요청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또 "등록금 마련을 위해서건 여행하려고 도둑질을 했던 간에 도둑질을 한게 달라지진 않는다. '사적인 이익'을 위해 회사 자금을 선지급 해 횡령했다는 본질이 달라지지 않으므로 공소사실을 변경해 유무죄가 달라지진 않고, 이것이 바로 핵심 양형사유"라고 말했다.
이에 재판부는 최 회장이 '자금 조달' 어려움과 기존 채무 비용을 유지하려고 '펀드 선지급 결정·송금'을 했다는 공소사실에서 범죄의 동기·경위 부분을 검찰에 변경하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검찰은 "공판 재판과정에서 현출된 증거 관계, 수사기록 및 공판기록의 내용, 공소장 변경의 타당성 여부 등을 다각도로 면밀히 분석해 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재판부가 검찰에 요청한 ' 최 회장의 공소사실은?
재판부의 설명에 따르면 '김씨의 투자 권유에 따라 최 부회장이 SK C&C주식을 활용해 투자금을 조달하기로 마음 먹고, 최 회장이 소유중인 주식에 대해 대출 승인을 받은 이후, 김준홍 전 베넥스인베스트먼트 대표가 투자금을 마련하려고 저축은행을 알아보다가 '보호예수' 등으로 대출이 실패하자 다시 다른 조달방법을 강구하게 된다.
김 전 대표는 베넥스 펀드 '투자금 선지급'을 활용한 투자금 마련 방안을 찾게 되는데, 이에 김씨는 최 회장에게 SK계열사가 펀드 자금을 선지급하게 해 최 부회장이 자신에게 송금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고, 이를 승낙한 최 회장의 지시에 따라 김씨에게 450억원의 펀드 선지급금이 송급됐다'는 것이다.
따라서 재판부는 당초의 공소사실 가운데 범죄동기·경위 부분에 김씨의 역할을 명확히 해달라고 주문했다. 재판부는 "김씨가 공소사실에 공범으로 표현되거나 범죄 동기·경위에 등장할 수 있으므로, 공소사실을 변경하는게 타당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한편, 최 회장이 송금지시를 했다는 검찰의 공소사실을 뒷받침할 증거가 될 수도 있는 김 전 대표 진술의 증거채택 방법을 두고도 이날 재판부와 변호인간의 공방이 오갔다.
이날 최 회장측 변호인은 "김 전 대표의 증언에 의하면 '최 회장이 알고 있으리라…'는 정도라서 간접증거에 불과하다. 직접증거는 핵심 인물인 김씨의 진술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며 김씨에 대한 증인신청 결정 여부를 송환절차를 지켜본 다음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김씨가 아는 사실 중에서 김 전 대표가 모르는게 있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핵심적인 부분에 대해 김 전 대표의 진술은 직접 증거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앞서 최 회장은 2008년 10월 말 SK텔레콤, SK C&C 등 2개 계열사에서 선지급 명목으로 수백억원을 빼돌린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또 계열사 임원들에게 매년 성과급(IB)을 과다 지급해 돌려받는 방식으로 2005~2010년 비자금 139억5000만원을 조성해 개인 용도로 사용한 혐의도 포함됐다.
최 부회장은 이 자금을 선물옵션 투자를 위해 김 전 대표를 통해 국외 체류 중인 김 씨에게 송금하도록 지시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최 회장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한 반면, "최 회장은 전혀 몰랐고, 내가 베넥스 펀드 자금 송금에 관여했다"고 주장해온 최 부회장에게는 무죄를 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