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서지명기자] 최근 국민연금공단이 삼성전자 1대 주주로 올라섰다. 뿐만 아니다. 유가증권시장 상위 20개사 중 국민연금 지분율이 5% 이상인 상장사는 18개에 이른다.
국민연금이 기업경영과 자본시장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 만큼 힘이 세다는 의미다.
수퍼갑(甲). 자본시장에서 국민연금의 위상은 수퍼갑 그 이상이다.
대통령이 가는 모임에도 참석하지 않는다는 콧대 높은 글로벌 금융기관 수장들이 국민연금 이사장을 만나기 위해 줄을 서 있는 것은 국민연금의 높아진 위상을 잘 말해준다.
◇공룡연금..2043년 적립금 무려 2561조
국민연금 곳간엔 400조원이 넘는 돈이 쌓여 있다. 올해 6월 기준 기금 403조4000억원을 운용하며 일본(GPIF)과 노르웨이(GPF)에 이어 세계 3위 자리를 넘보고 있다.
지금 추세라면 국민연금 적립기금은 30년 후인 2043년까지 계속 증가해 최대 2561조원까지 불어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적립기금 비율은 증가세를 유지하며 오는 2035년 49.4%까지 도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해 말 기준 주식 투자규모는 104조8378억원(26.7%)이다. 이 중 국내 주식시장에 투자되는 규모는 73조5233억원. 전체 상장주식의 5.8%를 보유하고 있다.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가 지난 5월 국민연금 기금의 주식투자 비율을 오는 2018년에는 30% 이상 높이겠다고 밝혔다. 이럴 경우 국민연금의 기업 지배력은 더욱 공고해질 전망이다.
국민연금공단은 지난 6월 기준 삼성전자의 지분 7.45%를 보유하며 삼성전자의 1대주주가 됐다. 이 밖에 웬만한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지분을 10% 가까이 보유 중이다. 오너 없는 기업 중에 최대주주의 자리에 오른 곳도 있다. 국민연금의 행보는 기업입장에서 초미의 관심사다.
국민연금에게는 자주 '구원투수'라는 별명이 붙는다. 자본시장이 침체기를 걷고 있을 때 대규모 연금자산이 투입돼 '돈맥경화'를 뚫어주는 역할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연금 의결권 논란..연금 사회주의등 부작용 우려
최근 국민연금 기금운용발전위원회는 국민연금의 의결권과 주주권 행사 강화를 위해 다양한 방안을 제시했다.
우선 100% 의결권 행사라는 원칙을 세우고 위탁운용사 등 다른 기관과 연계해 의결권 행사, 사외이사의 자격요건에 대한 적극 제시, 심각한 주주권 훼손 시 주주소송 관련 제안, 감시대상기업목록 제안 등이 그것이다.
예컨대 위탁운용사에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지침 기준을 따르도록 요구하고 그 결과를 국민연금에 제시하는 한편 운용사 평가에도 반영토록 한다는 방침이다.
김경수 기금운용발전위원장은 "기업의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것도 국민연금이 해야 할 중요한 역할"이라며 "국민연금이 100% 의결권 행사를 원칙으로 설정하고 다른 기관투자자 또는 국민연금의 운용을 맡은 운용사와 연계해 의결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국민연금 의결권 강화는 자칫 연금 사회주의로 흐를 가능성이 높아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부가 의결권 강화를 명분으로 사회적, 정치적 목적으로 연금을 동원할 수 있다는 것.
국민연금 기금이 2500조원대까지 확대되는 만큼 투자가 늘고 기업에 대한 지배규모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은 국민들의 노후소득보장을 위해 조성된 사회보장 성격의 기금이다. 의결권 행사 역시 자산운용 행위의 한 부분이지만 노후소득보장이라는 궁극적 목적을 잃은 투자활동이나 의결권 행사는 명분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용하 순천향대 금융보험학과 교수는 "국민연금이 100여개의 회사에 투자를 하고 있는데 모든 기업을 다 분석하고 주주총회에 참석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국민연금 의결권 강화 방안은 기업을 통제하는데 있어 부작용이 심각할 수 있고 실효성도 없다"고 지적했다.
◇착한 투자 부탁해!
기업의 경영능력 등 재무적인 정보뿐만 아니라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 등 비재무적 정보를 고려해 장기적 관점에서 하는 투자를 사회책임투자라고 한다.
기업의 ESG를 고려함에 따라 투자 리스크를 최소화해 투자수익을 제고하고, 공익적 가치도 실현할 수 있는 투자방법이다.
국민연금공단 사회책임투자(SRI) 펀드 운용금액은 지난 7월 말 기준 5조5000억원이다. 지난 2010년 2조3000억원에서 2011년 3조4000억원, 2012년 5조2000억원 등으로 꾸준히 그 규모가 늘고 있는 추세다.
국민연금공단 관계자는 "책임투자 규모를 늘리고 싶어도 투자처가 마땅치 않고 한계가 있지만 꾸준히 규모를 늘려가는 상태"라며 "ESG 분석 통해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위탁투자 방식으로 투자가 이뤄진다"고 말했다.
곽관훈 선문대 법대 교수는 "국민연금이 적극적인 투자자로 의결권 행사에 나서기보다 일반적 재정 투자자로 소극적인 의결권 행사만으로도 충분하다"며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책임투자를 통해 기업의 사회적책임(CSR) 경영을 유도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