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X그룹 계열사 중 가장 먼저 채권단과 자율협약을 체결하고 3조원대의 자금지원이 확정되는 등 안정적인 경영정상화를 추진 중인 STX조선해양이 '강덕수 회장 퇴진'이라는 큰 부담을 안게된 것이다.
◇강덕수 STX그룹 회장(사진제공=STX)
회사 측은 신규 수주를 통한 조속한 경영정상화를 위해서는 폭넓은 인맥을 보유하고 회사 내부 사정에 밝은 강 회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STX조선해양은 이달 초 아시아 선사로부터 3500만달러(약 400억원) 규모의 5만DWT급 MR탱커 1척을 수주했다.
MR탱커는 중형 석유화학제품운반선으로 최근 미국의 타이트 오일 개발이 속도를 내면서 세계적으로 발주 물량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선종이다.
이는 지난 7월 말 STX조선해양이 채권단과 자율협약을 체결한 이후 첫 번째 신규 수주다. 이번 수주 신조선가는 최근 시장가격 수준으로 저가수주가 아닌 제 값을 받았다는 데도 의미가 있다.
이와 함께 STX조선해양은 자율협약 체결 이후 신규 자금이 지원되면서 이전 수주물량에 대한 선박 건조작업도 활기를 띄고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STX조선해양 경영정상화의 신호탄으로 인식했다. STX조선해양은 약 2년치 수주잔량을 보유하고 있고, 선박 건조 속도가 국내 조선소 중에서 가장 빠른 편이어서 신규 수주만 원활하게 이뤄질 경우 예상보다 조기에 경영정상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지난 7월 자율협약 MOU 체결 당시 강덕수 회장은 "하반기부터는 신규 수주활동에 집중해 조기 정상화를 이루겠다"고 강조하며 신규 수주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기도 했다.
하지만 며칠 뒤인 지난 3일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이 강 회장의 퇴진을 요구하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막 시동이 걸린 STX조선해양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채권단은 이날 STX조선해양의 원활한 경영정상화 추진을 위해서는 새로운 경영 체제 구축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강 회장의 대표이사 및 이사회 의장 사임을 요청하는 한편 신규 경영진 선임 관련 주주총회 안건 상정에 대한 이사회 결의를 요청한다고 밝혔다.
채권단은 또 지난 4월 STX조선해양에 대한 자율협약 추진 시 강 회장이 향후 경영진 재편 등 경영권 행사와 관련해 채권단의 결정사항에 어떠한 이의도 제기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확약서를 제출한 점도 강조하고 있다.
이에 따라 채권단은 이번 주 내로 경영진추천위원회를 개최해 신임 대표이사 후보자를 선임하고 오는 27일로 예정된 임시주주총회 결의를 통해 신규 경영진을 구성할 예정이다.
이는 당초 채권단의 STX그룹 경영정상화 방침과도 어느 정도 일치하는 부분이다. 채권단은 STX조선해양을 비롯해
STX중공업(071970)과
STX엔진(077970) 등을 조선그룹으로 재편하고 나머지 계열사는 매각 등을 통해 자금을 확보한다는 큰 틀을 밝힌 바 있다.
이 과정에서 포스텍과
STX(011810)를 통해 그룹을 움직였던 강 회장의 지분정리가 진행되면서 지배구조 또한 무너질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다만 지난 5월 류희경 산업은행 부행장이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자율협약 과정에서 오너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받을 것"이라고 언급한 것을 근거로 강 회장의 경영권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 바 있다.
이에 STX그룹 측은 곧바로 보도자료를 통해 채권단의 STX조선해양 신임 대표이사 추진에 강하게 반발했다. 그동안 채권단의 행보에 반대의사를 밝힌 적이 없었던 만큼 업계에서는 STX그룹이 강 회장 퇴진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STX그룹은 입장 자료를 통해 "이번 대표이사 신규 선임 추진은 채권단 자율협약 취지에 어긋나는 채권단의 월권행위"라고 지적하고 "기업의 신속한 경영정상화를 위해 다시 한 번 깊이 고민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어 "STX조선해양의 성공적 회생을 위해서는 회사 사정과 세계 조선업 동향에 밝고 폭넓은 대외네트워크를 보유한 경영자가 반드시 필요하며 STX그룹은 부품-엔진-선박건조로 이어지는 수직계열화 구조를 갖고 있는 만큼 관계회사를 총괄 지휘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상 그룹의 컨트롤타워 기능을 해줄 사람으로 강 회장만한 인물이 없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이다.
업계 전문가는 "이제 막 정상화에 첫발을 내딛은 STX조선해양으로서는 채권단의 강 회장 사임 요구가 불편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며 "채권단 관리를 받는 과정에서 가뜩이나 내부 인력이 많이 빠져나가 힘든 상황에 컨트롤타워 부재까지 겹칠 경우 하반기 신규 선박 수주 활동에 제약이 따를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