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광범기자] 민주당이 끊임 없이 요구해왔던 박근혜 대통령과 민주당 대표와의 회담이 16일 성과 없이 끝이 났다. 정국 경색을 풀 수 있으리란 기대를 충족시키기는커녕 민주당은 회담 후 더욱 격앙됐다. 민주당은 국회를 외면하지 않을 것이라는 '원내외 병행투쟁' 전략에 대한 전면 재검토 의사를 밝힌 상태다.
김한길 대표는 3자회담 직후 열린 의원총회에서 "많은 얘기가 오갔지만 정답은 하나도 없었다"며 김 대표의 7가지 요구사항에 대해 박 대통령이 모두 거부했다고 전했다.
회담 결렬에 대해 민주당 측은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며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민주당의 이런 반응은 회담 제안 초부터 청와대와 박 대통령이 보인 태도에 기인한다.
지난 8월3일 김한길 대표가 처음 박 대통령에게 단독회담을 제안한 후 청와대는 "무반응"이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철저한 야당 무시 전략이었다.
이후 6일 청와대는 앞선 5일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가 내놓은 3자회담을 수정해 여야 원내대표까지 참여하는 5자회담을 제안했다. 이에 김한길 대표는 "대통령이 여야 지도부 회의를 주재하냐"며 단박에 회담 제의를 거절했다. 이후 김 대표가 '선 양자, 후 5자회담'을 역제안했을 때도 청와대는 무반응으로 일관하며 야당을 철저히 무시했다.
심지어 3자회담 성사 후에도 김 대표에게 특정한 '드레스코드'를 요구해 민주당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결국 이 문제에 대해서 청와대는 회담 직후 "청와대 내부인사들에 대한 지침이 민주당에 잘못 전달된 것"이라며 민주당측에 사과하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사진=청와대)
박 대통령의 이런 야당 무시 태도는 취임 이후 일관돼 왔다. 박 대통령은 취임 초반인 3월초, 여야가 정부조직법 협상 문제로 대립하던 와중에 대국민담화를 통해 당시 야당을 맹비난하며 실질적으로 야당에 100% 양보를 요구했다.
박 대통령은 당시 발표한 '대국민담화'에서 "국회에게 간곡하게 부탁드린다"고 얘기했지만, 내용은 야당에 대한 공세였다. '국민을 향한 담화'였지만 담화문을 읽는 대통령의 얼굴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새누리당 의원조차 "무섭고 싸늘했다"고 평가할 정도였다.
대국민 담화에서 박 대통령은 김종훈 당시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의 사퇴와 관련해 "조국을 위해 헌신하려고 들어온 인재들을 더 이상 좌절시키지 말라"고 야당을 압박했다. 그러나 당시 김 전 후보자에게 논란이 되던 국적·CIA 연루 의혹 등에 대해선 일언반구조차 하지 않았다.
새누리당 소속의 조해진 의원조차 박 대통령의 대국민담화에 대해 "지금은 통치의 시대는 가고 정치의 시대"라며 "매사를 이렇게 풀어갈 수는 없다. 대통령은 정치의 중심"이라고 목소리가 나오기까지 했다.
통과가 절실했던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후 박 대통령의 정국 운영 방식은 철저한 야당 무시로 관철됐다. 국정원의 대선개입 요구에 대한 입장을 밝히라는 야당의 요구를 박 대통령은 수개월간 철저히 외면했다. 또 국정원이 기습적으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했을 때도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 여부와 정상회담 실종 논란 등 야당이 수세에 몰린 정국 상황에서 박 대통령은 이와 관련된 발언들을 거침없이 내뱉으며 야당을 더욱 거세게 몰아붙였다.
박 대통령이 이번 3자회담에서 보여준 태도는 취임 후 보여줬던 자신만의 '원칙'의 연장선이다. 박 대통령은 해외 순방 후 12일 일방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정한 3자회담을 민주당에 제안했다.
회담 제의 형식도 사실상의 통보였기에 민주당은 발끈했다.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으로부터 전화로 일시·장소·의제가 일방적으로 정해진 3자회담 제의를 받은 전병헌 원내대표는 "양측이 최소한의 합의도 없이 일방 통보하고 발표한다면 상황이 더 꼬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김 실장은 "나는 윗분의 말씀을 전할 뿐, 다른 말은 할 수 없다"고 답했다. 박 대통령의 독단적 결정으로 진행된 회담 제의라는 반증이었다.
이런 박 대통령의 태도에 대해 일각에서는 '북한을 상대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은 개성공단 입주 업체들의 막대한 피해 예상에도 불구하고 긴 협상읕 통해 자신이 원하던 '개성공단 국제화' 등의 대부분 요구사항을 관철시킨 바 있다.
그러나 법률상 반국가단체 혹은 주적으로 간주되는 북한과 국정을 함께 이끌어가야할 야당에 대한 태도가 비슷하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박용진 민주당 대변인은 "야당을 대화의 상대로 삼지 않고 야당을 정쟁의 상대로 삼아 대립과 다툼의 정치를 펼쳐나가려는 적대적 정치인식이 국정혼란의 원인"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