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 양보다 질)③지주사 전환의 함정.."더 세진 총수 입김"

입력 : 2013-09-27 오전 10:00:00
[뉴스토마토 김원정기자]현행 공정거래법은 지주회사에 대해 "주식의 소유를 통해 국내회사의 사업내용을 지배하는 것을 주된 사업으로 하는 회사로서 자산총액이 대통령령이 정하는 금액이상인 회사"로 규정하고 있다.
 
단순화해서 표현하면 "다른 회사 주식을 소유해서 그 회사를 지배하는 회사"가 지주회사다. 아직도 어렵다면 피라미드를 떠올려 볼 수 있다.
 
복잡한 순환출자 고리로 총수 일가가 지배력을 행사하는 재벌그룹을 거미줄에 비유한다면, 지주회사체제는 출자 구조가 일자(지주회사 → 자회사 → 손자회사 → 증손회사)로 떨어지는 피라미드에 빗댈 수 있다. 그리고 '원칙상'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에 위치한 회사가 지주회사다.
 
관리자 입장에선 거미줄 모양 보다 피라미드 모양이 감독하기 편하다. 정부가 기업집단에 지주회사 전환을 권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부가 지주회사 전환을 권장하는 이유
 
지주회사 제도는 순환출자 고리로 기업집단을 형성하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나은 시스템'이라는 판단 아래 도입됐다.
 
구체적으로 기업 지배구조가 단순화 되면 계열사간 출자관계가 명확해지고 투명하게 보인다는 장점 등이 거론됐다. 그러면서 총수 일가의 무분별한 지배력 확장이나 불투명한 지배구조가 개선될 수 있다는 논리다.
 
지난 1999년 관련제도가 공정거래법에 들어온 뒤로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에 따르면 지난해 9월말 기준, 지주회사는 115개에 달한다. 또 같은 기간, 대기업집단으로 불리는 '재벌'은 15개가 지주회사로 존재한다.
 
공정위에 따르면 2012년 9월 말 기준, 지주회사는 115개 수준이다. 2008년 지주회사 증가율이 폭증한 게 눈에 띈다. 이후로는 매년 내리막길 추세다.(자료제공: 공정위)
 
◇"무늬만 개선..순환출자와 뭐가 달라?"
 
주목되는 건 정부 바램과 달리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다는 점. 경제개혁연구소가 2010년 8월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은 과연 기업집단의 소유·지배구조 개선을 가져오는가'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보고서에는 두산, 한진중공업, CJ, LG, LS, SK그룹 등 6개 지주회사 기업집단을 분석한 결과 전환 이후 총수 일가 지배권이 전반적으로 올랐다는 사실이 담겨 있다.
 
구체적으로 지주회사 직전 연도 평균 49%를 기록했던 '총지배권'이 2009년 말 기준 52%로 올랐다고 보고서는 쓰고 있다. 특히 두산, LS, 한진중공업 등 3곳은 지배권과 소유권이 벌어지는 '총괴리' 비중이 지주회사 전환 이후 되레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연구소는 "정부와 재계 주장대로라면 지주회사체제로 전환 이후 총괴리 비중이 낮아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결과는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이 곧바로 소유지배구조의 개선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덧붙였다.
 
총지배권은 계열사별 지배권을 구한 뒤 각 계열사별로 조정된 자기자본을 곱하고 이를 모두 합산해 산출한 값이다. 또 계열사별 지배권은 지배주주와 지배주주 친인척, 임원, 다른 계열사, 그룹소속 공익법인 등 특수관계인의 직접지분을 모두 합산한 값.
 
'소유권'은 총현금흐름권을 가리키는 것으로 계열사별 현금흐름권에 자기자본을 곱한 다음 이를 모두 합산해 계산하고, 계열사별 현금흐름권은 지배주주와 그 친친척의 직접지분과 간접지분을 합산해 계산했다는 것이 연구소의 설명이다.
 
'총괴리도'를 통해 지배주주가 실제 보유한 지분보다 얼마나 더 많은 의결권을 행사하는지 살필 수 있다.(자료제공: 경제개혁연구소)
 
◇실제 '터널링' 나타난 지주사체제의 SBS
 
공정위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2012년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 현황 분석결과'도 주목된다. 이 자료에 따르면 공정위가 지주회사로 전환한 15개 '재벌그룹'만 한정해 살핀 결과 자회사, 손자회사 등의 지주회사 편입율이 2010년 이후 낮아지는 경향이 나타났다.
 
세부적으로 2010년 73.3%로 정점을 찍은 뒤 2011년 70.8%, 2012년 69.4%로 지주회사 편입율이 줄었다.
 
총수 일가가 지주회사 체제 밖에서 자회사 등을 지배하는 경향이 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단 얘기다. 심지어 지주회사 체제 밖 계열사의 총수일가 지분율이 높을수록 내부거래 비중이 높은 점도 확인됐다.
 
공정위는 이에 대해 현행법이 정한 지분율 요건을 웃도는 수준으로 자회사 등을 지배하고 있는 만큼 당장은 문제가 크지 않은 것으로 본다면서도 "총수일가가 계열회사의 약 30%를 지주회사 체제 밖에서 지배하고 있어 체제 밖 계열회사로의 '부의 이전' 우려는 존재한다"고 밝혔다.
 
총수일가 지분율이 높을수록 내부거래 비중이 높다는 건 일감 몰아주기 등을 통한 터널링(tunneling. 지배주주가 자기지분이 적은 회사에서 자기지분이 많은 계열사로 '부'를 이전시키는 것)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을 시사한다.(자료제공: 공정위)
 
실제 현장의 평가가 이와 다르지 않다. 지난 2008년 지주회사체제 아래 재편된 SBS(034120)가 그런 경우다.
 
SBS 노조(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가 지난 2010년 11월 조합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지주회사 전환 이후 SBS의 독립경영이 보장되고 있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89.5%가 '아니'라고 답했다.
 
SBS는 당초 태영건설(009410)이 최대주주로 지배하고 있었지만 '언론'이란 특수성을 감안, '소유와 경영을 분리'시킬 필요성이 제기돼 지주회사체제로 전환이 이뤄졌다.
 
태영건설이 2008년 3월 'SBS미디어홀딩스(101060)'라는 지주회사를 설립하고 SBS미디어홀딩스가 SBS의 최대주주가 되면서 형식적으로 건설사가 언론사를 직접 지배하는 구조는 피하게 됐지만 지주회사체제의 장점은 찾아볼 수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SBS 노조가 지난 2010년 11월 조합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지주회사 전환 이후 SBS의 부가가치가 다른 계열사로 이전되고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응답자 95.6%가 "그렇다"고 답했다.(사진=뉴스토마토 김원정 기자)
 
SBS 내부에선 특히 '터널링'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다. SBS의 이윤이 SBS미디어홀딩스의 또 다른 자회사로 '이전' 되면서 결과적으로 오너만 배불리고 있다는 불만이다.
 
SBS 노조의 2010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바람직한 개선책으로 응답자의 24%가 "지주회사 이전의 체제로 돌아가는 것"을 꼽기도 했다. 3위에 오른 답변이긴 하지만 구성원 상당수는 지주회사체제가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고 본 셈이다.
 
◇"지주회사제도를 '넝마' 만든 정치권도 책임"
 
채이배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은 이런 현상에 대해 "지주회사제도를 처음 도입한 시점의 원칙대로 했으면 모를까, 지금은 규제가 완화됐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실제 지주회사제도는 도입 이래 줄곧 규제가 완화되는 방향으로 흘렀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지주회사에 대해 "자본총액의 2배를 초과하는 부채액을 보유하는 행위"를 금하고 있지만, 초기에는 부채비율 한도가 100% 이하로 제한됐었다.
 
무엇보다 일반지주회사의 자회사에 대한 주식보유 기준이 처음보다 낮아졌고 애초 금지됐던 손자회사 설립은 물론 증손회사 설립도 조건부로 허용되면서 순환출자 못지 않은 다단계 확장이 가능해졌다.
 
예컨대 제도 도입 초기에는 자회사 지분율 한도가 50%(상장사 30%), 손자회사의 경우 주식 보유 자체를 원칙적으로 금하고 조건부로 일부 허용하는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자회사 지분율 한도가 40%(상장사 20%)로 낮아진 상황이다.
 
이는 수차례 법 개정에 따른 결과로, 2007년 규제 완화 당시 총수일가의 지배력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이때 이미 나온 바 있다. 법 개정 이듬해인 2008년 지주회사 증가율이 50.0%로 나타나는 등 전년도 29.0%에서 폭증한 사실도 흥미롭다.
 
자료제공: 경제개혁연구소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심하게 표현하면 지주회사제도를 넝마로 만들어놓은 문제가 크다"고 지적했다.
 
전 교수는 "지금은 20% 간신히 넘는 지분으로 자회사를 지배하는 형편이고 거기다 이상한 회사를 지주회사 꼭대기 올려넣고 총수가 이걸 지배하기도 한다"며 "그 때문에 지주회사체제가 피라미드 모양 아닌 중간에 뿔이 달린 모양으로 나타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정상적으로는 지주회사가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에 위치해야 하는데 규제 미비로 지주회사가 계열사 밑에 있는 이상한 구조를 띠기도 한다는 설명. 이 경우 지주회사를 지배하는 '옥상옥 회사'를 통해 전체 그룹을 좌지우지 하는 구조가 나타나기도 한다.
 
실제 SK가 그렇게 하고 있다. 2007년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한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이 개인회사 SK C&C를 통해 지주회사 SK를 지배한다.
 
공정위가 지난 5월 발표한 ‘2013년 대기업집단 주식보유현황’에 따르면 SK그룹은 총수일가 지분율이 0.69%, 총수 단독 지분율은 0.04%에 그쳤다. 하지만 내부지분율은 50% 가까이 육박했다.
  
자료제공: 공정위
 
◇"출자단계 줄이고..자회사 지분율 요건 강화해야"
 
사실 지주회사체제는 그 자체로 한계가 명백하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지주회사 → 자회사 → 손자회사'로 이어지는 출자단계를 적절한 선에서 끊어내지 않으면 피라미드의 정점에 서 있는 총수일가로 경제력 집중이 심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1999년 지주회사체제를 도입할 당시엔 참여연대와 경실련 등 시민단체가 앞장서 도입을 반대하기도 했다.
 
정부가 권장하고 있는 지주회사체제는 지배구조의 진짜 대안일까, 아닐까? 전문가들은 지주회사체제가 그자체로 선도 악도 아닌 중립적 시스템이라는 시각을 보이고 있다.
 
지주회사체제 역시 다양한 지배구조 선택지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면 악용 가능성을 막고 도입 취지를 살릴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게 현실적이는 설명.
 
구체적으로 출자단계를 가능한 줄이도록 하고 자회사 등에 대한 지분율 요건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 방식을 놓고 '직접적 강제'와 '간접적 유도'로 견해가 갈릴뿐, 최소한 제도 도입 초기나 2007년 법 개정 이전으로 되돌릴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전성인 교수는 "다른 나라의 경우 소액주주가 있으면 자꾸 주주대표소송 걸고 하니까 소액주주가 없도록 아예 100% 보유하는 게 일반적"이라며 "우리는 20%만 가져도 지주회사의 자회사라고 우길 수 있는데 이걸 강화하는 게 필요하고 최소한 노무현정부 때 완화된 이전으로 지분율 한도를 올리는 게 필요하다"고 밝혔다.
  
◇지주회사 규제 강화되면 SK 등 지배구조 변화 불가피
 
이 경우 주목되는 게 SK다. 자회사와 손자회사 주식보유 기준을 2007년 공정거래법 개정 이전 수준으로 강화할 때 당장 SK가 영향권에 놓이기 때문이다.
 
실제 김상조 한성대 교수(무역학)는 지난 4월 '공정거래법상 일반지주회사 및 금산분리 제도의 개선 방안'에서 경제개혁연구소의 자료를 토대로 이렇게 지적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자회사와 손자회사 주식보유 기준이 상장사 30%, 비상장사 50%로 강화될 경우 103개 일반지주회사 산하 1092개 자회사와 손자회사 가운데 118개 회사의 지분을 추가 매입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특히 대기업집단 소속 37개 회사의 지분율 요건 충족을 위한 소요금액 합계는 2.6조원~2.8조원 정도가 예상되는데 그 대부분이 SK그룹에서 발생한다.
 
구체적으로 2.4~2.5조원 비용을 져야 할 것으로 김 교수는 예상했다. 뒤집어보면 SK그룹은 2007년 지주회사 규제 완화로 그만큼 혜택을 많이 봤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김 교수는 "단적으로 자회사, 손자회사 주식보유 기준 상향조정 이슈는 극소수 그룹에만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며 "특히 최태원 SK회장은 개인회사인 SK C&C를 통해 지주회사인 SK를 간접 지배, 사실상 자금 부담없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뉴스토마토 자료사진
 
현재 SK C&C는 SK그룹의 실질적 지주회사 행세를 하면서도 규제 대상에서 비껴 있던 만큼 SK C&C를 지주회사 규제 적용을 받도록 하는 방법은 지주회사 이슈의 핵심내용 가운데 하나다.
 
만일 SK C&C가 지주회사 규제의 적용대상으로 들어오면 연쇄적으로 지주회사는 자회사, 자회사는 손자회사, 손자회자는 증손회사가 되며 현행법이 손자회사의 증손회사 지분율을 100%로 정하고 있는 만큼 SK는 증손회사의 부족한 지분을 추가 매입하거나 반대로 지분 전체를 내놔야 하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
 
SK 계열사처럼 덩치 큰 기업은 지분 매입 비용도 만만치 않을 뿐더러 증손회사 지분을 내놓는 방법 역시 그룹 지배구조의 변화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
 
전성인 교수는 "규제가 강화되면 SK는 하이닉스를 살 건지 내다 팔 건지 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정작 정부는 '지주회사 전환을 촉진' 한다는 기조만 강조할뿐 별도의 규제 강화 방안을 갖고 있지 않다. 공정위가 '지주회사 전환을 촉진하기 위해 중간금융지주회사 설치'를 허용한다는 내용 정도만 밝혔을 뿐이다.
 
이 틈을 비집고 증손회사 지분율 한도를 낮춰달라는 재계 요구가 슬금슬금 나오고 있다. 이마저 허용되면 지주회사는 '무늬만 재벌체제 개선책'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전성인 교수는 지배구조 개선책의 큰 그림부터 다시 짜라고 조언했다.
 
전 교수는 "재벌 입장에선 지금 현재가 따듯하고 편하니까 움직이지 않는다"면서 "지금 정부 전략은 따뜻한 곳은 건드리지 않고 지주회사제도만 사실상 넝마로 만들어서 재벌 보고 그리로 가라는 것인데 당연히 잘 될 수 없는 전략"이라고 지적했다.
 
전 교수는 또 "현대차는 순환출자 없애도록,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 내놓도록, SK도 하이닉스를 지금같은 방식으로 지배하지 못하도록 기업을 움직이게 해야 한다"며 "왜 돈도 안 들이고 지배하느냐, 왜 고객 돈 갖고서 지배하느냐, 그렇게 못하도록 법제도를 짜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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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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