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더미'에 숨죽이는 재계..다음은 어디?

조선·해운·철강업계 ‘돌려막기’ 급급

입력 : 2013-10-07 오후 1:20:50
[뉴스토마토 김영택·이한승기자] 지난해 웅진그룹에 이어 올 들어 STX그룹, 동양그룹까지 유동성 악화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면서 재계는 그야말로 쑥대밭이다. 벌써부터 '다음은 어디냐'는 말이 오갈 정도.
 
실제 지난해 말 기준 국내 30대 그룹의 부채가 600조원에 달하는 등 재무구조가 극도로 악화됐다.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을 제외하면 10대 그룹조차 상황이 좋지 않다. 전차군단의 착시현상에 가려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힘을 얻는 이유다.
 
대내외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부채가 자본을 잠식한 부실 기업들도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이자비용조차 감당하지 못해 '돌려막기'로 막는 파산 직전의 시한폭탄들도 도처에 자리하고 있다. 생존 경쟁 시대에 돌입한 우리나라 경제계의 현주소다. 
 
◇한진, 현대, 금호, 동부 등 재무건전성 '적신호'
 
최근 재벌닷컴은 국내 30대 대기업의 지난해 말 기준 총 부채가 574조9000억원에 육박한다고 밝혔다. 이는 올해 국가 부채 예상치인 480조원을 훌쩍 뛰어넘는 규모로, 지난 2007년 313조8000억원과 비교하면 무려 261조1000억원이 증가했다.
 
재계 1, 2위인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을 제외한 대부분 기업들이 재무건전성이 악화됐다. 특히 지난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장기 침체에 빠진 항공과 해운, 건설 등을 주력 계열사로 두고 있는 기업들의 재무구조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사실상 고사 직전인 셈.
 
지난해 감사보고서 기준 한진그룹의 부채총액은 30조8000억원으로, 부채비율은 무려 437%에 달한다. 현대그룹(404%), 금호그룹(265%), 동부그룹(259%), STX그룹(256%), 두산그룹(189%), 효성그룹(188%) 등도 높은 부채비율을 나타내는 등 재무구조가 급속히 악화됐다.
 
특히 한진그룹과 현대그룹의 부채비율은 지난 2007년과 비교하면 두 배 이상 급증했다. 이들은 항공과 해운을 주력으로 하면서 업황 침체의 직격탄을 맞았다는 분석이다. 사업 다각화와 유동성 확보에 미진한 것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또 지난해 30대 그룹 중 8곳은 영업이익으로 차입금에 대한 이자조자 갚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CEO스코어에 따르면 STX, 동국제강, 현대, 한라, 한진중공업, 한진, 두산, 동양 등 8곳은 지난해 말 기준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으로 금융이자가 영업이익보다 많았다.
 
채무상환 능력에 적신호가 켜지면서 유동성 위기는 한층 심화됐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늪'이라는 자조와 한숨이 잦아지지 않고 있다.  
 
◇조선·해운·철강사들 ‘빚 돌려막기’ 급급
 
특히 STX과 동국제강, 현대 등 3곳은 이자보상배율이 마이너스를 기록해 빚을 내서 금융이자를 갚아야 하는 이른바 '돌려막기'에 급급한 상황이다. 이들 모두 장기 침체에 빠져 있는 조선, 철강, 해운 등을 주력사업으로 두고 있다.  
 
최근 해운, 조선, 철강 업황에 대한 기대감이 무르익고 있지만 여파가 이들에까지 미칠지는 미지수다. 글로벌 경쟁사들과 비교해 자본력은 물론 네트워크, 정부 지원 등 인프라 요소가 지극히 미약해 경쟁력을 회복하기가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 중론이다.
 
실적 차별화는 구조적 원가경쟁력 차이에 기인하며, 중장기적으로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경우 과중한 재무부담 탓에 선박 대형화와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 등은 엄두도 못내는 실정이다. 이는 여타 대형 선사들과의 경쟁력 격차를 더욱 벌어지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이외에도 대성산업(70.4%), KT렌탈(69.6%), 대한전선(68.2%), 무림페이퍼(61.6%), 포스코플랜텍(61.5%), 한국가스공사(61.4%), 삼선로직스(60.0%) 등도 차입금의존도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30대 그룹 차입금의존도 현황.(자료제공=CEO스코어)
 
◇'문어발식' 확장..유동성 위기 촉발
 
'문어발식' 확장도 이들 대기업의 재무 건전성을 악화시키는 주요인이 됐다는 분석이다. IMF 등 수차례 위기를 겪고도 몸집을 불리기 위한 무리한 확장은 계속됐다. 이는 결국 해당기업에 부메랑이 됨은 물론 국가경제 차원에서도 큰 부담이 됐다.
 
실제 국내 30대 그룹 계열사는 지난 2007년 말 843개에서 지난해 말 1246개로 무려 47.8% 급증했다. 이 기간 금호아시아나 그룹을 제외한 29곳의 상위 그룹이 계열사 수가 늘었다.
 
전문가들은 대기업의 인수합병(M&A) 등을 통한 외형 확장은 신성장 동력 확보 및 사업 다각화(포트폴리오) 면에서 일부 긍정적이지만 역량을 넘어서 무리한 확장은 '승자의 저주'를 불러올 수 있다고 꼬집었다.
 
과도한 욕심으로 대형 M&A를 진행, 무리한 차입을 이기지 못하고 유동성 위기에 빠지거나 좌초한 사례 또한 허다하다. 금호그룹은 지난 2006년 12월 대우건설을 인수한 뒤 2008년 1월 대한통운까지 인수합병하면서 13개월 만에 무려 10조원 가까운 자금을 쏟아부었다. 
 
결과는 비참했다. 2008년 말 기업어음이 5000억원대에 달하는 등 부채가 늘면서 위험 신호가 발생했고, 2009년 6월 대우건설 풋백옵션이 돌아오면서 좌초 위기에 빠졌다. 결국 금호그룹은 2010년 워크아웃을 선언, 사실상 계열사 해체 수순의 아픔을 맛봐야 했다.
 
전문가들은 무리한 확장과 함께 순환출자를 통한 취약한 지배구조가 부실기업을 낳았다고 지적했다. 순환출자는 적은 지분으로도 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으나, 특정 계열사가 부실에 빠질 경우 다른 계열사까지 위험에 빠지게 돼 연쇄 부도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단점을 안고 있다. 특히 총수의 경영력에 그룹의 사활을 의존해야 할 정도로 위험성 또한 크다.
 
증권가 관계자는 "웅진, STX, 동양그룹까지 이들의 몰락은 이미 시장에서는 예고됐던 일이었다"면서 "최근 금융권에선 '3D-4S'라는 말이 공공연히 돌고 있다. 재무불안을 겪고 있는 기업 리스트"라고 설명했다.
 
재벌닷컴 관계자는 "부실기업들이 리스크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을 경우 국내 경제 전반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생존을 위해서라도 리스크 관리에 집중해야 할 때라는 설명이다. 삼성전자와 현대차의 이면에 자리한 경제의 그늘이 너무도 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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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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