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준호기자] 최근 불거지고 있는 정부와 정치권의 게임산업 규제공세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업계의 대응 방식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23일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2013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따르면 올해 우리나라 게임시장 규모는 10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같은 산업규모는 30조원 규모로 추산되는 국내 이동통신시장 규모의 33%에 이르고, 국내 전체 광고 시장 규모와 맞먹는 규모의 큰 시장으로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정치권의 규제 움직임에 대한 업계의 대응은 아직 산업규모에 어울리지 않게 미숙하다는 평가다.
◇'문화콘텐츠' 인정받으려면 더 강력한 자정활동 필요하다
지난 10일 한국인터넷디지털엔터테인먼트협회는 문화콘텐츠산업의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는 게임을 중독산업으로 지정하려는 정치권의 움직임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게임이용 결정 권한을 국가가 아닌 가정으로 넘기는 자율규제안을 발표했다.
여기에 문화연대가 ‘정부와 새누리당은 게임에 대한 마녀사냥식 규제를 중단하라’는 성명서를 발표했으며, 한국게임산업의 메카로 자리잡은 성남시는 지난 23일 ‘국가 경쟁력을 위해 첨단게임산업에 대한 인식 전환과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보탰다.
이는 최근 이어지고 있는 게임산업 규제 움직임에 대한 반발이다. 정부·여당은 게임이 술과 마약과 같은 중독물질과 동일한 수준의 중독유발효과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10일 남경필 K-IDEA 회장은 "게임은 중독산업은 아니지만, 게임 규제 필요성에 대한 국민 여론이 우세한 가운데 정치인들은 규제안을 만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진제공=K-IDEA)
게임업계에서는 정부의 산업규제 움직임에 대해 '게임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는 규제는 의미가 없어 자율적으로 규제에 나서겠다'는 입장이지만, 여론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
남경필 K-IDEA 회장도 “학부모들에게 게임은 아이들을 망치는 주범으로 인식돼 있으며, 정치권에서는 여론을 반영한 규제안을 만들 수 밖에 없다”고 한계를 지적했다.
게임업계가 부정적인 여론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더 강도높은 자율규제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게임에 대한 마녀사냥식 규제를 중단하라’라는 성명서를 발표한 문화연대에서도 이 같은 점을 지적한다.
이원재 문화연대 사무처장은 “과거 영화나 만화 등 동시대에 가장 많은 인기를 끈 콘텐츠산업은 늘 정부 규제와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었으며, 이는 (정권의) 이데올로기적 공세였다”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영화인들이 오랜 시간 스스로 영화산업에 대한 건설적인 비판을 해오며 사회적 인식을 개선시킨 것처럼, 게임업계 스스로도 이 같은 노력(자율규제)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 사무처장은 “게임업계에서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며 사회적 의무를 다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게임산업 인식개선적 측면에서는 부차적인 문제에 불과하다”며 “업계 스스로도 정말 불건전한 게임이라면 비판할 것은 비판하고, 사회적으로는 게임이 수험생의 스트레스 해소, 직장인들의 건전한 여가생활 등 국민 생활에 꼭 필요한 문화 콘텐츠로 자리잡았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업계, 서로에 대한 신뢰 회복도 중요
더불어 게임업계가 규제 정국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갈수록 대결구도가 심해지고 있는 정부와의 관계개선에 대한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미국에서 대형 총기난사 연이어 사건이 터지고 게임업계에 비난 여론이 쏟아지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질병통제센터(Centers for Diseases Control)에 게임과 폭력성의 연관 관계에 대해 연구할 것을 지시하고, 의회에 관련예산을 추가로 배정해줄 것을 요청했다.
정부기관이 책임지고 게임의 사회적 현상에 대해 종합적인 연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고, 미국 게임협회인 엔터테인먼트 소프트웨어협회(Entertainment Software Association, ESA)는 연구 결과의 신빙성을 지지하겠다고 선언했다.
반면 국내에서는 정부의 통계조사 결과를 업계가 신뢰하지 못하고, 정부와 정치권은 업계의 목소리에 귀를 막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특히 최근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가 게임을 4대 중독물질로 규제하자며, 근거로 제시한 보건복지부의 조사결과는 이 같은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황우여 대표는 복지부 자료를 바탕으로 인터넷 게임 중독 인구가 47만명에 이른다고 주장했지만, 게임업계에서는 ‘게임’과 ‘인터넷’을 구별하지 못한 잘못된 자료라고 반박했다.
두루뭉술한 자료를 가지고 게임을 중독물질로 치부한 여당대표의 무책임한 발언도 문제지만, 스마트폰의 확산·온라인 게임의 대중화에 따라 지나치게 게임 이용시간이 많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게임업계가 들을 필요가 있다.
2013년 대한민국게임백서 따르면 만 9~49세의 게임 이용자 1000명을 대상 조사결과 게임 이용자들은 주중에는 하루 평균 129.9분을 게임 이용에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2년 조사에서 하루평균 60.6분을 사용한 것과 비교하면 1년 사이에 두배 이상 늘었다.
조사방법이나 표본의 차이가 있어 정확한 비교 자료는 아닐지라도, 국내 이용자들의 게임 이용시간이 갈수록 늘어가면서 이를 우려하는 여론도 커져가고 있는 현실도 인정해야 한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지난 2009년 한국게임산업진흥원이 한국콘텐츠진흥원으로 합쳐지면서 게임산업과 관련한 정부의 연구용역의뢰가 줄어들어 객관적인 자료가 부족해지고 있다”며 “각자의 이해관계가 반영된 자료만 가지고 서로를 비난하지 말고, 정부와 업계가 공동으로 연구를 진행해 게임관련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