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양지윤기자] LG화학이 다음달부터 고기능 합성고무인 솔루션스타이렌부타디엔고무(SSBR) 양산에 나서는 가운데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을지가 업계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밖으로는 독일 랑세스와 중국 시노펙 등 쟁쟁한 글로벌 기업들이 버티고 있고, 안에서는 금호석유화학이 이미 시장을 선점한 터라 LG화학의 행보가 녹록치만은 않은 게 현실. 후발주자의 한계와 함께 국내외 경기 개선이 더딘 점도 시장 확대에 적지 않은 걸림돌로 지적된다.
LG화학은 내달 초 충청남도 대산 차세대 합성고무 공장에서 SSBR 양산에 돌입한다. 약 1만평(3만3058m²) 부지에 조성된 대산공장은 연산 6만톤(t) 규모로 투자금액만 1000억원에 달한다.
SSBR은 현존하는 합성고무 가운데 천연고무와 가장 유사한 제품으로 꼽힌다. 저온에서도 탄성을 유지하기 때문에 제동력과 핸들링이 우수하고, 특히 젖은 노면에서 성능과 안전성이 뛰어나다.
또 SSBR을 적용한 타이어는 회전 저항이 낮아 기존 일반 타이어 대비 2~3% 정도 연비절감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때문에 SSBR은 현재 전 세계 생산량의 70%가 친환경 타이어에 사용되고, 나머지 30%가 신발 밑창과 본드 등에 쓰이고 있다.
SSBR은 그간 독일 랑세스와 중국의 시노펙 등 해외 기업들을 비롯해 국내에선 유일하게 금호석유화학이 연산 8만4000t 규모로 생산해 왔다. 국내외 석유화학 업체들이 향후 급격한 수요 증가에 대비해 시장 선점에 나섰다.
실제 세계합성고무생산자협회의 지난 2011년 시장전망조사에 따르면, 2014년 시장 규모가 139만톤에서 오는 2016년에는 186만톤으로 연평균 약 12%의 성장이 예상된다. LG화학이 SSBR 시장에 출사표를 던진 이유도 바로 이러한 성장 가능성에 염두에 뒀다는 게 일반적 분석이다.
다만 SSBR 양산이 시황이 극도로 부진한 시점에 이뤄진 점은 극복해야 할 난제다. 시장 급성장의 배경으로 지목됐던 '타이어 라벨링' 제도가 예상보다 더디게 도입된 탓이 크다.
친환경 타이어의 기준인 타이어 라벨링은 연비에 영향을 미치는 회전저항력과 노면 접지력 등의 등급을 타이어에 표시하는 제도로, 지난 2011년 유럽과 일본, 우리나라는 지난해 연말 도입됐다.
올해 미국에서도 도입될 예정이었으나 내년으로 미뤄졌다. 관련 업계에서는 타이어 시장의 가장 큰 손인 미국이 도입을 연기함에 따라 오는 2015년이나 2016년쯤 타이어 라벨링제 시행이 유력했던 중국도 일정을 늦출 것으로 보고 있다.
경기 상황과 밀접한 관계를 지닌 자동차 경기가 살아나야 수요가 증가하는데, 올해와 마찬가지로 내년 역시 경기전망이 불투명한 탓이다. 전방산업의 위축은 후방산업인 SSBR 산업의 정체를 가져올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대내외 경기가 침체되면서 예상했던 것보다 시장이 빨리 무르익지 않고 있다"면서 "주요 시장인 미국에서 타이어 라벨링제를 채택해야 힘이 실리는데, 도입이 미뤄지면서 시장 규모도 더디게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존 선점 업체들의 틈바구니를 뚫고 시장에 진입해야 하는 점도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다. 다우케미칼의 전(前) 사업 부문인 스타이론을 비롯해 독일 랑세스, 중국 페트로차이나 등 쟁쟁한 기업들이 버티고 있어 공간을 뚫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국내에서는 그간 유일하게 SSBR을 생산해 온 금호석유화학이 버티고 있다. 특히 금호석유화학의 경우 금호타이어 등 기존 타이어 업체들에게 공급을 지속해 왔기 때문에 거래관계가 없는 LG화학으로선 인지도 제고는 물론 새로운 영업망 구축에 나서야 한다. 다만 금호가의 난투극이 전개되면서 금호타이어가 LG화학으로 거래선을 돌릴 수도, 또는 LG화학의 진입을 무기로 양사 간 가격경쟁을 부추길 수도 있다.
회의론만 있는 것은 아니다.
LG화학(051910)이 기존 합성고무 분야에서 사업 기반이 있기 때문에 공급망을 확보하기 수월할 것이라는 긍정적 시각도 존재한다. 또 전기차 배터리 생산을 통해 완성차 제조사는 물론 유관 업체들 사이에서 인지도를 확보해 나가고 있는 만큼 SSBR 시장에서 무난히 안착할 것이라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LG화학 관계자는 "대부분의 타이어 업체들이 석유화학 계열사로부터 SSBR를 공급받는다"며 "석유화학 자회사가 없는 타이어 업체나, 있더라도 자체 충당이 힘든 글로벌 기업을 공략하는 데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또 넥센과 굿이어 타이어 등에 합성고무를 공급해 온 경험을 살려 SSBR 공급망 확대에도 나선다는 계획이다. LG화학이 첨단고무 시장에서 고무줄처럼 점유율을 늘리면서 한껏 고무될 지, 아니면 고무 신세로 전락할 지는 시장만이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