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관이다. 본질은 온데간데없고 껍데기만 남았다.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NLL 문제를 꺼낼 때만 해도 논란의 핵심은 과연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했냐는 거였다. 이윽고 노무현-김정일 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이 수면 위로 부상하더니 이제는 사초 실종이 본질을 뒤엎었다.
급기야 이와 관련해 문재인 의원이 6일 참고인 신분으로 검찰에 소환 조사됐다. 그는 친노의 정점에 있는 인물로, 18대 대선에서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맞붙은 야권 단일주자였다. 박정희 대 노무현으로 치러진 전쟁에서 패배한 야권의 수장이자 정적이다.
그로서는 검찰 포토라인에 선 것만으로도 치욕이다. 변호인으로 대동했던 2009년 4월30일을 떠올렸을 법 하다. 그날은 전직 대통령으로서는 세 번째로 노 전 대통령이 검찰에 소환된 날이다. 김해 봉하 사저 현관에서부터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정문 앞까지 헬기가 노 전 대통령을 따라다니며 모욕을 안겼다. 이는 곧 투신이라는 사상 초유의 비극으로 이어졌다.
현 청와대의 국가안보를 책임지는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이 NLL과 관련해 노 전 대통령과 이견이 없었다며, 남북 국방장관회담에 임할 때도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소신껏 하고 오라”는 지시를 받아 “그 결과 국방장관으로써 소신껏 NLL을 지킬 수 있었다”고 증언했음에도 논란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목적을 이루지 않았기에 논란은 수단으로써 지속돼야 했다.
오히려 이 과정에서 18대 대선을 진두지휘하던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과 권영세 주중대사가 불법으로 대화록을 입수, 정략적으로 대선에 이용할 목적을 분명히 내비쳤음에도 검찰은 서면조사에 그쳤다. 공정한 법의 잣대는 또 다시 권력 시녀를 자처한 검찰에 의해 철저히 무너져 내렸다. 애시당초 형평성은 기준에도 없었다.
뿐만 아니다. 지난 대선 TV토론에서 ‘다카키 마사오’(한국명 박정희)를 언급했던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는 정당이 해산될 위기에 처했다. 당시 심하게 일그러졌던 박근혜 후보의 얼굴은 집권 이후 있을 가혹한 정치보복을 짐작케 하기에 충분했다. 이념자유의 시장에 떠맡길 사안이 정부에 의해 재단됐다.
당시 TV토론에서 박 후보로부터 “이념교육과 시국선언 등으로 학교 현장을 혼란에 빠뜨린 세력”으로 규정된 전교조도 철퇴를 피하지 못했다. ‘법외노조’에 ‘법외정당’에, 이제 김관진 국방장관의 “국민 오염” 발언으로 ‘법외국민’까지 탄생하게 됐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를 찍었던 48%의 국민은 어느새 정부로부터 오염된, 계도 대상으로 전락했다.
이외에도 숱한 희극이 있어왔다. 2월25일 대통령 취임 이후 불과 8개월 만에 벌어진 일들이다. 어찌 보면 이는 예상된 바이기도 했다. 오직 아버지의 명예 회복을 위한 딸의 집념이 대한민국을 이 상태로 밀어 넣었다. ‘아버지가 어떻게 일으켜 세운 나라인데 감히 너희들 따위가…’는 분노는 국회 출입 시절 친박계 의원들로부터 수도 없이 들어왔던 박 대통령의 철학이었다. 이는 실제 공안정국과 새마을운동의 부활을 낳고 말았다.
더도 덜도 없이 “짐이 곧 국가”라는 태양왕 루이 14세를 연상케 하는 박 대통령이다. 이는 곧 ‘애국’으로 포장되지만, 본질은 절대왕정을 지향하는 전체주의 사고와 같다. 측근들조차 믿지 못하는 그의 용인술은 반대 목소리를 일절 배제케 할뿐만 아니라 정치적 혼란을 가중시킨다. 그러면서도 대중에게는 부모를 흉탄에 잃은 비운의 여성으로 각인케 한다.
그런 그가 휘두르는 칼에는 인정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렵다. 정권의 정통성을 겨냥한 죄로 채동욱 전 검찰총장은 검찰 역사상 가장 치욕스럽게 옷을 벗었으며, 생계비로 6억원을 줬던 전두환 전 대통령은 진보의 제물로 바쳐졌다. 4대강 사업에 대한 책임을 물어 이명박 전 대통령마저 쳐낼 태세다. 현 정권이 처한 위기 수위에 따라 그의 운명도 달리 하게 됐다.
문득 영화 '친구'의 대사 하나가 떠오른다. “고마 해라. 마이 묵었다 아이가!” 정말로 이젠 보복의 칼을 거두고 손속의 정을 다시 살펴봐야 할 때다.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왔다. 적을 베기 위해 주어진 게 아니다. 반대편을 껴안는, 그래서 진실로 국민통합을 실현하는 성공한 대통령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피의 역사는 보복으로부터 시작된다.
김기성 산업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