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황민규기자] 소프트웨어(S/W)와 하드웨어(H/W) 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애플의 생산기지였던 폭스콘이 스마트폰, 소프트웨어, 게임 등의 신사업 진출을 선언한 데 이어 삼성전자는 '타이젠 연합'에 노키아를 끌어들이며 플랫폼 부문에서의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소프트웨어 강자들의 제조업계 진출도 활발하다. 지난해 구글이 모토로라를 인수한 것을 시작으로 아마존과 HTC, 마이크로소프트와 노키아 등 서로 다른 영역의 기업들 간 합종연횡 소식이 잇달아 시장에 전해졌다.
퀄컴과 인텔 등 세계 최대의 PC 부품업체들마저 스마트기기 시장 진출에 나서면서 IT업계 전역에 걸쳐 '완전경쟁'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가히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한다.
◇성공의 준거로 떠오른 '삼성'..제조업계에 부는 '융합 신드롬'
무엇보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융합이 절실한 쪽은 제조사들이다. 소프트웨어의 성능이 제품 가치와 기업 성과를 좌우하는 핵심요소로 자리한 만큼 소프트웨어 없이는 생존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 됐다. IT업계의 흐름이 더 이상 하드웨어 하나만으로는 가치 차별화가 어려운 시대로 변모한 것이다.
가장 단적인 예는 삼성전자의 성공이다. 구글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가 탑재된 수많은 제품들 중 유독 갤럭시 시리즈가 세계시장 1위에 오를 수 있었던 배경은 마케팅 역량 이외에도 소비자경험(UX)적 측면에서 더 나은 가치를 제공한 소프트웨어와 강력한 스펙이라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평가다.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 ⓒNews1
삼성전자가 지속적으로 소프트웨어 역량 강화와 함께 M&A 의욕을 드러내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지난 6일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금까지 인수합병(M&A)에 소극적이었지만 앞으로는 빠르게 변하는 시장 상황에 따라 M&A를 추진함으로써 핵심사업을 성장시키고 신규사업을 개척해 나갈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퀄컴과 인텔 등 전통적 PC 부품업체들의 행보도 관건이다. 인텔은 삼성전자와 함께 타이젠 개발을 나서는 동시에 자체적인 스마트 손목시계 등 디바이스 판매를 본격화하고 있으며, 퀄컴도 독보적인 모바일 칩셋 기술을 기반으로 스마트 디바이스 시장 진출을 앞두고 있다.
다만 아직까지는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제조사를 거느리는 형세다. 구글의 경우 에이수스, LG전자 등과 파트너십을 강화하며 삼성전자를 견제하는 동시에 해당 제조사들의 제조 역량을 흡수해 나가고 있다. 모토로라가 스마트폰 시장에서 일정 부분 완성도 있는 제품을 만들게 될 경우 레퍼런스 제품 생산을 내재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구글, MS '아직 갈 길이 멀다'..삼성은?
다만 기업 간 '이종교배'가 늘 성공적이란 보장 또한 없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우 노키아 휴대폰 사업본부를 72억달러(약 7조9000억원)에 인수하면서 하드웨어 기업으로의 변신에 나섰지만 아직까지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구글과 모토로라가 합작한 야심작 '모토X'도 예상과 달리 처참한 성적표를 내놨다.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모토X는 구글이 막대한 마케팅 자본을 쏟아 부었음에도 지난 3분기 고작 50만대 판매에 그쳤다. 이는 사실상 스마트폰 시장의 성장성을 도모할 수 없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영화 '아이언맨2'를 활용한 오라클의 사업 홍보 자료.(사진=오라클)
반대로 성공적으로 평가받는 예도 있다. IT업계에 부는 합종연횡 바람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이는 오라클이다. 오라클은 하드웨어 기업인 썬을 인수한 이후 지난 2009년 썬 하드웨어에 자사의 소프트웨어를 결합한 2세대 엑사데이터 DB서버를 출시하며 시장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구가해왔다.
이어 기업용 애플리케이션 강자인 SAP를 겨냥해 전사적자원관리(ERP) 솔루션과 각종 애플리케이션 기업들을 인수했고, 하드웨어 및 미들웨어, OS 등 각종 사업영업에 진출해 지금은 DB뿐만 아니라 애플리케이션부터 가상머신, 서버, 스토리지 등을 모두 지원 가능한 유일한 벤더로 자리매김했다.
IT업계 관계자는 "오라클처럼 전략적인 M&A를 통해 대체 불가능한 제품,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바로 삼성전자가 표방하는 모델"이라며 "특히 삼성이 추진하고 있는 타이젠의 경우 빅데이터, 클라우드, 사물통신 등의 차세대 IT 생태계 형성을 정조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