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석진기자] 금값이 1200달러선 밑으로 곤두박질 치면서 12년간 이어져 온 금값 랠리가 종료됐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양적완화 규모를 축소하면서 인플레 회피 수단인 금의 매력이 반감된 탓이다.
금과 더불어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미 달러화가 강세를 나타낸 점도 금 매도세를 부추겼다.
전문가들은 한동안 금 매도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 수요가 살아나면 금값이 반등할 것으로 전망했다.
◇금값, 3년 4개월來 최저치로 ‘폭락’..양적완화 축소 탓
19일(현지시간)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서 거래되는 내년 2월 인도분 금 선물가격은 전날보다 41.4달러(3.35%) 내린 온스당 1193.60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 2010년 8월 3일 이후 최저치다.
장중 거래에서 심리적 기준선인 1200달러가 붕괴된 것은 지난 6월 이후 처음이다. 하루 기준으로 보면 지난 6월 이후 가장 큰 낙폭이다.
연준의 양적완화 축소 결정에 금 매도세가 증가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18일 연준은 올해 마지막 연방시장공개위원회(FOMC) 회의를 통해 자산매입 규모를 줄이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연준은 내년 1월부터 주택담보 채권과 장기 국채 매입 규모를 각각 50억달러씩 축소할 계획이다.
연준의 자산매입이 줄어들면 그만큼 시장에 풀리는 달러가 줄어들기 때문에 달러화 가치는 높아지고 인플레 가능성은 낮아진다. 인플레 회피 수단이자 안전자산인 금을 지니고 있어야 할 이유가 사라지는 셈이다.
퀸시 크로스비 푸드덴셜파이낸셜 시장 전략가는 “경제지표가 호전되고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는 가운데 연준이 양적완화 규모를 줄여 금값이 하락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미국 경제가 살아나면서 위험자산인 주식 쪽으로 자금이 몰리는 현상도 금값 하락의 원인이다.
이날 미국 다우존스 지수는 전날보다 0.07% 오른 1만6179.08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유럽과 일본 증시는 올 들어 두 자리 수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금이 매력을 잃게 된 이유 중 또 한 가지는 저조한 물가 상승세다. 물가가 오르면서 화폐가치가 떨어져야 실물자산인 금의 위력이 발휘되는데 현재 미국의 물가 상승률은 연준의 목표치인 2% 근처에도 못 미치고 있다.
미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11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기 대비 1.2% 상승하는 데 그쳤다. 이는 시장 전망치인 1.3%를 하회하는 수준이다.
마크 뉴슨-스미스 X커넥팅 트레이딩 판매 부문 대표는 "그동안 금 시장은 양적완화 축소 우려 탓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왔다"며 "매도세가 증가한다 해서 놀랄 일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금값, 올해 들어 29% 하락..12년 금 랠리 종료?
금값이 하락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금 가격은 올해 들어서만 29% 하락했다. 일 년 동안 금값이 이 정도로 폭락한 것은 지난 1981년 이후 처음이다.
◇2013년 금값 추이 (자료=CNNMoney)
사실 이같은 매도세는 생소한 것이다. 금은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12년간 달러의 대체재이자 안전 자산으로 인식되면서 꾸준히 랠리를 이어왔다.
지난 2008년 12월에서 2011년 6월 사이, 연준이 2조달러의 자산을 매입할 당시만 해도 금값은 무려 70%나 상승했다.
2011년 9월 초에는 1900달러를 사상 최초로 돌파하기도 했다.
그러나 양적완화 축소설이 퍼진 올해 부터 금값은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양적완화가 축소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미리부터 금을 파는 이들이 하나둘씩 늘어났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지난 6월28일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이 FOMC 회의 직후에 가진 기자회견에서 “경제상황이 개선되면 자산매입 규모를 줄일 수 있다”고 언급만 했는데 금값은 하루 만에 무려 3.6% 하락했다.
이후에도 버냉키는 매월 양적완화 규모를 축소 가능성을 언급하며 실제로 자산 매입 규모가 줄었을 때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금값이 내려가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파이낸셜타임즈(FT)의 보도에 따르면 올 한 해 동안 금 상장지수펀드(ETF)에서 800톤 이상의 금이 빠져나갔다.
빈 그래디 피닉스 선물옵션 대표는 “엄청난 양의 ETF 매도세를 목격하고 있다”며 금 거래 시장의 분위기를 전했다.
억만장자로 알려진 조지소로우와 다니엘 로에브 써드 포인트LLC 매니저도 금 매도 대열에 동참했다. 이들은 지난 2분기 동안 금 상장지수펀드(ETF)인 SPDR골드트러스트 주식을 모두 처분했다.
심지어 3년간 금 강세론을 굽히지 않았던 헤지펀드계의 거물 존 폴슨은 지난달 "금을 추가 매입하지 않을 것"이라며 "인플레이션이 언제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고백했다.
◇금값 “오른다” VS “하락한다”..전망 분분
이처럼 금값을 끌어내리는 요인들이 한 데 모이면서 1200달러 선이 붕괴되자 전문가들은 12년간 이어지던 금 랠리가 끝나고 내년부터 금 매도세가 가속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제프리 큐리에 골드만삭스 애널리스트는 "금값은 내년에도 낮은 수준을 이어갈 것"이라며 "보통 양적완화 축소 조치가 시작되면 금값에 바로 반영된다"고 말했다.
애쉬라프 라이디 시티인덱스 수석투자전략가는 "경기침체(디플레이션) 우려감에 1100달러로 더 하락할 것"이라고 점쳤다.
경제 매체 CNBC도 이날 금 트레이더들의 의견을 인용해 금값이 1200달러 밑으로 내려앉은 것을 계기로 1180~1200달러 사이를 오갈 수 있다고 전했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스턴경영대학원 교수는 금값이 1000달러까지 밀릴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낮은 가격에 이끌려 금 매수세가 증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케빈 데미레트 리어 캐피털 대표는 "올해 금값 하락은 과도한 면이 있다"며 “금이 다른 자산에 비해 저평가돼 있다는 여론이 확산되면서 2014년에는 금값이 반등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과 신흥국을 중심으로 금 소매 판매가 증가하면 금값이 올라갈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제임스 스틸 HSBC 애널리스트는 "가격에 민감한 투자자라면 매우 구미가 당기는 수준"이라며 "중국의 소매 판매가 증가하면서 금값이 제법 상승할 것"이라고 말했다.
데이비드 고버트 마렉스 스펙트론 전문가는 “금값 강세장이 끝났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1200달러 선 붕괴를 잘 수습하면 매수세가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