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승근·양지윤기자] 적막하다 못해 쓸쓸했다. 집무실을 방불케 할 정도로 잦은 보고로 붐빌 것이란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심지어 변호인단조차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드문드문 가족만 드나든다는 해당그룹들의 주장은 사실로 보였다.
오히려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는 탓에 특실 병동의 공기는 일반 병동보다 한층 무거웠다. 다만 취재가 이뤄진다는 소식에 그룹 대외홍보를 맡고 있는 담당부서만 바빠졌다. 몇몇은 직원들을 현장으로 보내 혹시나 있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취재는 지난 27일 오전 7시부터 보호자 외에는 모두 병동을 나가야 하는 오후 9시까지 두 장소로 나눠 진행됐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입원 중인 서울대병원 본관 12층 VIP 병동과 이재현 CJ그룹 회장,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이 머물고 있는 암병동 6층 특실의 기척을 놓치지 않고 따라갔다.
◇서울대병원 암병동 6층..가족 외 방문 전혀 없어
27일 오전 7시. 이재현 회장과 조석래 회장이 입원 중인 서울대병원 암병동 특실은 이제 막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암병동 6층에 위치한 특실은 일반 병동과 같은 층을 사용하고 있지만 출입문이 분리돼 있고, 내부에 간호사 스테이션이 별도로 위치해 있어 보호자 등 관계자 외에는 출입이 엄격히 제한됐다.
총 5개(6101~6105)의 입원실을 갖추고 있으며 이재현 회장은 특실 가장 안쪽 병실에 입원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재현 CJ회장이 입원 중인 서울대병원 암병동(사진=최승근 기자)
엘리베이터는 일반 병실과 함께 사용하지만 특실 병동 안쪽에 비상계단이 따로 있어 다른 환자나 보호자들과 마주치지 않고 출입이 가능한 구조다.
아직 대부분 환자들이 아침을 맞지 않은 6층 병동은 조용했다. 의사들과 간호사들만이 오전 회진 점검을 위해 분주한 움직임을 보였다.
오전 8시쯤 CJ그룹 홍보실 직원 한 명이 병동을 찾았다. 입원실을 향하지 않고 복도에서 대기하며 기자의 움직임을 체크했다. 오는 2월 1심 선고가 예정된 상황에서 갑자스런 취재를 부담으로 받아들이는 듯 보였다.
현재 CJ그룹은 철저히 정중동 행보를 보이고 있다. 언론의 관심을 극도로 경계한 채 법리적 다툼에 주력하고 있다. 대법원까지 간다는 각오로 장기화 태세에 돌입했다.
◇지난 17일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수척해진 모습이 눈에 띈다. ⓒNews1
오전 내내 특이사항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간혹 의료진이 진료를 위해 다녀갔을 뿐 그룹 임원이나 변호인단의 방문은 없었다. 가족 역시 이 날은 이 회장을 찾지 않았다.
바이러스 감염을 극도로 조심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가족 외에 외부인의 방문에 제약을 두고 있다는 게 그룹 및 병원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일반 병실의 환자들과 보호자들이 복도에 나와 담소를 나누는 것에 비하면 이재현 회장을 비롯한 특실 병동의 환자들은 병실 내에만 머무르며 조용히 오전을 보냈다.
오후에도 특실 병동은 차분했다. 점심시간이 지나면서 CJ 홍보실 직원 한 명이 더 병원을 찾았다. 같은 시간 CJ 임원 중 한 명이 현장 철수 여부를 물어왔다.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는 하소연도 이어졌다.
이후 두 명의 CJ 홍보실 직원이 번갈아가며 특실 병동 앞에서 기자와 함께 자리를 지켰다. 취재원이 뒤바뀌었다. 이 회장이 입원해 있는 암병동의 하루는 너무나도 조용했다.
이 회장은 지난 8월 신장이식 수술 이후 바이러스 감염을 우려해 최대한 외부인과의 접촉을 피하고 있다. 부인인 김희재씨 등 가족 몇몇만이 간간히 병실을 찾는 상황이다.
우선은 건강 회복과 함께 눈앞에 닥친 재판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고 복수의 관계자들이 전했다. 경영에서는 거의 손을 놓았다는 얘기도 들을 수 있었다.
식사는 잘 하고 있는 편이다. 면역력 회복이 가장 시급한 관계로 외부 음식보다는 병원에서 주는 식사를 주로 먹고 있다고 병원 관계자들이 귀띔했다.
앞서 이 회장은 17일과 23일 두 차례 법정에 모습을 드러낸 바 있다. 당시 무척이나 수척해진 모습에 그룹 총수로서의 위엄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일부 동정여론은 CJ그룹에 큰 힘이 됐다.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도 이 회장과 같은 암병동 특실에 머물고 있다.
지난 25일 맥박이 갑자기 불규칙하게 뛰면서 새벽 3시30분쯤 급히 서울대병원을 찾았다. 조 회장은 지병으로 심장부정맥 질환을 앓고 있다. 의료진은 협심증 증상이 보인다는 진단과 함께 심전도 검사를 실시했다. 당분간 안정이 필요하다는 소견이 이어졌다.
검찰수사 과정에서 제기된 일각의 의혹을 덜 수 있게 됐다. 그간 일각에서는 조 회장이 왕성한 경영활동을 보이다 갑자기 병력 병원을 찾은 것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왔다.
그러다 지난 18일 검찰의 구속영장이 법원에 의해 기각되면서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됐다. 특히 법원이 고령과 병력 등을 이유로 조 회장 구속수사에 난색을 표하면서, 부담을 느낀 검찰이 불구속 기소로 방향을 전환할 것이란 게 대체적 전망이다.
◇지난 18일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이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들어서고 있다.ⓒNews1
◇서울대병원 본관 12층..경계 삼엄
서울대병원 12층 VIP 특실 병동. 김영삼 전 대통령 등 거물들이 머무는 탓에 경비가 극도로 삼엄했다. 병동 출입구에서는 출입을 일일이 통제하는 한편 환자 입원 여부조차 확인해주지 않았다.
◇지난 4월15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항소심 선고 공판을 받기 위해 구급차를 타고 서울고등법원으로 들어오고 있는 모습.ⓒNews1
오전 9시 아침식사 시간이 끝나자 VIP 특실병동에서 트레이가 조용히 빠져 나왔다. 각 식판에는 병실 호수와 입원 환자의 이름이 일일이 적힌 메모지가 놓여 있었다. 기자가 식판을 일일이 확인한 결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서울대학교병원 병실 요금표(사진=양지윤 기자)
오후 1시50분 점심시간이 끝난 뒤 트레이가 나왔다. 서울대병원 관계자에 따르면, 이날 김 회장의 점심 메뉴는 죽이었다.
VIP 병동은 쥐죽은 듯 하루종일 조용했다. 전날 검찰의 결심 구형(징역9년·벌금1500억원) 직후여서 드나드는 사람이 없었다. 다만 CJ그룹과 마찬가지로 한화그룹 역시 대외홍보실 직원을 따로 보내 기자의 동선과 취재 현황을 근거리에서 지켜봤다.
한화그룹 관계자에 따르면 결심 직후 김 회장은 법무팀의 보고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회장 측은 전날 공판 참석 등의 일정을 감안해 안정을 취하는 듯 보였다. 극도로 심리적 불안정을 맞던 시기에서 벗어나 어느 정도 담담함을 되찾았다는 전언이다.
같은 층 일반 병동의 한 중년 여성은 "간호사들이 오며가며 특실병동에 입원한 김 회장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들었다"며 "돈이 아무리 많아도 아프면 다 똑같은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같은 층을 쓰는 환자들은 김 회장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그의 입원 여부를 알고 있었다. 해당층 특실병동에는 김영삼 전 대통령도 입원해 있다.
이날 하루 동안 지켜본 기업 총수들은 일반 환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외부 시선을 의식한 듯 평소에 비해 방문자가 더 줄면서 이들이 입원한 특실은 일반 병실보다 더 적막했다.
2013년의 마지막 금요일이 그렇게 쓸쓸하게 저물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