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애 (사진제공=NEW)
[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KBS2 '황진이'부터 MBC '로열패밀리', '해를 품은달', '메디컬탑팀'까지 배우 김영애의 이미지는 강력한 카리스마 그 자체였다. 사나운 인상을 짓고 욕망에 타오르는 노년의 여성이었다. 이러한 강한 이미지에서 뿜어져나오는 묵직한 무게감은 언제나 작품에 긴장감을 높였다.
영화 '변호인'에서는 불온서적을 읽었다는 이유로 공권력에 처참히 짓밟힌 대학생 진우(임시완 분)의 모친이자, 평범한 국밥집 주인 순애로 분했다. 방송에서 보였던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과는 전혀 다른 우리네 아줌마 혹은 할머니였다. 김영애의 탁월한 연기력은 '변호인'의 승승가도에 또하나의 힘을 실었다는 평가다.
지난해 12월 30일 삼청동 한 커피숍에서 김영애와 만났다. 그는 극중에서 보였던 카리스마 넘치는 캐릭터나 시장 할머니와는 또다른, 우아함과 기품이 넘치는 여배우였다.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부드러웠고, 배려심이 엿보였다.
◇김영애 (사진제공=NEW)
◇"'변호인', 이렇게 말이 많을 줄은 몰랐다"
영화 '변호인'의 흥행세는 실로 놀라울 정도다. 비수기라는 겨울시즌임에도 불구하고 역대 최고 흥행 영화인 외화 '아바타'(1362만명)보다도 관객몰이 속도가 빠르다.
만듦새가 좋고 배우들의 호연이 돋보이며, 메시지가 명확한데다, 과거와 현재를 반영하는 스토리가 흥행 요소로 꼽힌다.
하지만 국내 정치사에 굵직한 영향을 끼친 故 노무현 대통령의 이야기를 다뤄서인지, 정치적인 접근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일부 누리꾼을 통해 포털사이트 별점테러까지 자행되기도 했다.
개봉 전부터 말이 많았던 '변호인'에 김영애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출연을 결심했는지 궁금했다.
"드라마에서 보였던 이미지를 바꾸고 싶었어요. 카리스마 있고 딱딱한 이미지에서 탈피하고 싶어서, 단지 그 이유만으로 출연했어요. 배우는 다양한 면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나는 너무 한쪽으로 굳혀지는 것 같았죠."
그러면서 김영애는 정치적인 논란이 많아 아쉽다는 의견도 내비쳤다. 배우로서의 이미지만 생각해서 출연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개인적으로는 정치적인 논란에 서는 것을 바라지 않았어요. 정치적인 얘기가 있을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어요. 영화의 내용이 정치적인 이야기에 묻히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지금 보면 너무 극단적으로 양쪽으로 갈려서 싸우고 있잖아요. 왜 이렇게 됐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냥 자체만으로 좋은 영화이기 때문에 영화 내용만 생각해줬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김영애 (사진제공=NEW)
◇"송강호와 첫 연기.. 망신당할까봐 긴장했어요"
윤여정, 김해숙과 함께 김영애는 노익장을 과시하는 여배우 중 한 명이다. 드라마마다 굵직하고 중요한 역할을 도맡아, 젊은 배우들 틈바구니 속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만큼 연기력이 뛰어나다. 김영애가 연기를 하면 그것이 마치 답이고 교과서인 듯 완벽하다. 어느 누구도 김영애의 연기를 평가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김영애도 송강호 앞에서는 긴장을 했다고 한다.
"송강호가 훌륭한 배우라 생각해서 긴장했어요. 대배우라 그런지 편하게 잘 받아줬어요. 긴장을 덜 할 수 있었던 건 송강호 덕분이야."
김영애와 송강호는 '변호인'을 통해 첫 만남을 가졌다. 그리고 첫 촬영은 순애가 송우석(송강호 분) 변호사를 만나 아들을 찾아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이다. 송 변호사가 인권변호사로 변화하게 하는 첫 과정이다.
"바로 코 앞에서 눈 쳐다보고 울면서 애 찾아달라고 하는 장면이 첫 촬영이었어요. 다 처음보는 사람들 뿐이고. 얼굴이 두꺼우니까 하지 그걸 어떻게 해. 대사도 까먹고, 짜증도 많이 부렸어요. 긴장되고 예민해져서. 두 번째가 면회하는 장면이었어요. 더 많이 긴장했죠. 국밥집을 처음에 찍었으면 그나마 덜 부담스러웠을꺼야."
김영애는 송강호에 대한 칭찬을 이어갔다. 임시완을 챙겨주는 모습에서 송강호의 인품을 느꼈다고 한다.
"송강호가 시완이를 정말 열심히 챙기더라고요. 나는 촬영 직전에 누굴 가르쳐주면 내게 깨져서 안 돼요. 잘 못 가르쳐줘요. 그런데 송강호는 촬영 직전에도 잘 알려주더라고요. 그건 최고의 선배를 만난다는 거예요. "
"반대로 나는 좀 야속했어요. '강호씨 나 어떡해'라고 우는 소리 좀 하면 '선배님 왜 그러세요'하고 말아요. 그래도 좋은 배우랑 하니까 기분이 좋더라고요. 합도 잘 맞고 서로 시너지가 나는 것 같더라고. 사실 배우가 배우를 인정하는게 쉬운 건 아닌데 역시 최고라고 인정하게 됐어요."
김영애는 51년 생으로 환갑이 넘었다. 그럼에도 아직도 매년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들며 다양한 작품에 출연한다. "좋은 작품을 만나, 연기를 잘해서 칭찬받고 싶다"라는 이유 때문이다. 연기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더 열심히 하게 된다고 한다.
"늘 미쳐서 연기하려고 한다"는 말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데뷔 43년, 최고의 연기를 펼친다는 평에도 최선을 다하는 김영애의 태도는 본받아 마땅하다고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