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황민규기자] 국내 재벌그룹 가운데 가장 복잡한 순환출자 고리를 형성하고 있는 롯데그룹에 최근 심상치 않은 변화가 감지된다. '일본롯데=신동주, 한국롯데=신동빈'으로 정리된 것처럼 보였던 힘의 균형에 지난해부터 미묘한 변화가 일면서 경영권 승계의 방향이 모호해졌다.
재계에서도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으로부터 '왕권'을 계승할 적자(適者)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신동주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경쟁적으로 계열사 주식을 긁어모으면서 치열한 지분 경쟁에 돌입했다. 이 같은 형제 간 경쟁이 지주회사 체제 전환과 함께 진행될 계열 분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변수다.
지난해 연말 동양증권 채권분석팀이 내놓은 '2014 한국기업의 지배구조'에 따르면 롯데그룹은 일본롯데와 대주주 일가가 주요 계열사를 직접 소유하는 구조로, 비교적 안정적인 경영권을 유지하고 있지만 고령(1922년생)인 신격호 회장의 건강상황 등을 감안해 머지않아 경영권 승계 작업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왼쪽부터)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 신동주 롯데홀딩스 부회장.(사진=각사 홈페이지)
◇호텔롯데-롯데쇼핑 상호출자 단절..“지배구조 개편 신호탄”
증권가에서는 지난해 다시 시작된 형제 간 지분 경쟁 구도를 롯데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으로 해석하고 있다. 지난 10여년간 잠잠했던 형제가 갑작스레 '주식쇼핑'에 나선 배경에 임박한 지배구조 개편이라는 변수가 도사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경영권 승계가 아니더라도 롯데가 전면적 지배구조 변환에 나서야 하는 근거는 충분하다. 동부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롯데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가능성에 대한 근거로 지주회사 전환 관련 세제 혜택 종료 임박, 롯데정보통신의 기업공개(IPO) 추진, 호텔롯데의 상장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는 점 등을 꼽았다.
특히 지난해 말 호텔롯데와 롯데쇼핑의 상호출자가 해소되면서 이 같은 시나리오에 더 힘이 실리고 있다. 차재현 동부증권 연구원은 "두 회사의 상호출자가 해소되면서 지배구조 개편이 더 용이해졌다"며 "롯데호텔, 롯데쇼핑이 각자 지주회사로 가는 방향을 잡은 것이라는 해석이 나올 수 있다"고 진단했다.
비교적 구조가 흡사한 삼성그룹 계열분리 시나리오가 답안을 제시할 수도 있다. 지나치게 복잡한 출자구조를 연관성이 높은 사업부문끼리 '그루핑(Grouping)'하면서 계열사 간 시너지 효과를 증대하는 효과를 노리는 것. 또 최근 사정기관의 전방위적 압박이 지속되고 있는 점도 정부가 권장하고 있는 지주사 전환을 앞당기는 요인으로 작용 가능하다.
다만 지난해 국회가 신규 순환출자만을 대상으로 순환출자를 금지키로 하면서 기존 순환출자 구조를 지니고 있는 재벌그룹들에게는 면죄부를 안겨줘 직접적 부담은 덜었다는 평가다. CEO스코어는 총 51개의 순환출자 고리를 지니고 있는 롯데그룹이 이중 10개 고리를 끊는데 소요되는 비용이 3조8663억원에 달한다고 밝힌 바 있다.
◇2013년 11월 기준 호텔롯데 VS 롯데쇼핑 보유지분.(자료=동부리서치, 감사보고서)
◇롯데그룹 지배구조·경영권 열쇠는 '호텔롯데'
롯데그룹 순환출자 구조의 핵심이 되는 계열사는 롯데쇼핑으로, 신격호 총괄회장과 신동빈 회장이 각각 1.0%, 14.6%의 지분을 갖고 있다. 하지만 실질적 지주회사 역할은 호텔롯데가 맡고 있다. 일본 롯데홀딩스가 19.2%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호텔롯데는 주요 계열사 대부분에 골고루 출자하고 있다.
이처럼 지배구조 사슬의 정점에 있는 호텔롯데가 상장될 경우 지배구조 개편의 방향성이 명확해진다. 형제 간 우열을 판단하기 어려운 호텔롯데의 지분구조가 분명하게 드러남과 동시에 본격적인 계열분리와 지배구조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는 게 증권업계의 공통된 견해다.
향후 호텔롯데가 공격적 투자와 성장 전략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대규모 자금조달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내부적으로도 상장을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호텔롯데는 2018년까지 국내외 40여개 호텔과 리조트를 설립하고 면세사업도 공격적으로 확장할 예정이며, 롯데월드타워 건설에 따른 막대한 자금 투입도 예정돼 있다.
호텔롯데의 상장이 추진된다면 지난 2006년 롯데쇼핑이 상장하면서 얻은 3조원 수준의 자금 조달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막대한 실탄이 확보되면서 지배구조를 안정적으로 재분할하는 동시에 차세대 성장동력에 대한 집중투자가 가능해진다.
물론 반대 의견도 있다. 호텔롯데는 부채비율이 낮고 현금흐름이 양호하기 때문에 충분히 차입금을 통한 자금조달이 가능한 구조다. 호텔롯데의 상장이 내부적으로 검토될 수 있지만 자금조달을 위해 꼭 상장만이 유일한 대안은 아니라는 얘기다.
◇롯데정보통신 IPO 이슈도 관건
롯데정보통신의 기업공개(IPO)가 올해 이뤄질 것이라는 점도 지배구조 개편의 중요한 근거다. 롯데정보통신의 최대주주는 롯데리아(34.5%), 대홍기획(28.1%)이며, 이밖에 롯데제과(6.12%), 호텔롯데(2.91%), 롯데칠성음료(1.54%) 등 주요 계열사들이 지분을 나눠서 보유하고 있다.
무엇보다 신동빈 회장(7.5%) 신동주 부회장(3.99%), 신영자 롯데쇼핑 사장(3.51%) 등 총수 일가 지분도 15%에 이른다. 롯데그룹 지분구조의 연결고리에 있는 롯데쇼핑은 롯데리아(38.7%)와 대홍기획(34.0%)을 지배하고 있고, 다시 롯데정보통신은 롯데쇼핑 지분 4.8%, 롯데건설 지분 5.3%를 보유하는 순환출자 구조다.
아울러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지난해 11월 롯데정보통신 사내이사직을 돌연 사임하면서 롯데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쏜 상황이다. 상장에 앞서 오너 일가 퇴진으로 투명성 강화 의지를 보여줬다는 분석과 함께 순환출자의 한 축을 담당하는 롯데정보통신이 상장과 함께 현금을 확보해 복잡한 출자구조를 해소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신동주·신동빈 ‘왕권 쟁탈전’..향방은?
현재 장남 신동주 부회장과 차남 신동빈 회장이 보유 중인 그룹 내 주요 계열사의 지분율은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박빙이다. 롯데그룹 계열사의 지난해 3분기 사업보고서를 기반으로 보면 신동빈 회장의 계열사 보유지분이 근소한 차로 우세하지만 사실상 큰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
신동빈 회장은 지난해 롯데푸드, 롯데케미칼, 롯데제과, 롯데칠성, 롯데손해보험 등 계열사 주식 매집에 나섰다. 신 회장은 상호출자 해소를 위해 롯데제과와 롯데칠성음료의 지분을 매입했으며, 자기주식 처분에 나선 롯데케미칼과 롯데손해보험의 주식을 모으기도 했다.
그는 앞서 지난 2011년 2월 그룹 회장에 오르면서 후계구도를 가시화시켰다. 이듬해 2월 정기 임원인사에서 50대 중후반의 상대적으로 젊은 그의 측근들이 대거 발탁되면서 국내경영에 있어서는 신동빈 체제로 돌입했다는 평가다.
반면 신동주 부회장은 지난해 8월 거액의 사재를 들여 핵심 계열사인 롯데제과 지분을 매입해 주목을 끌었다. 5달 연속 매입으로 신동주 부회장의 롯데제과 지분율은 3.52%에서 3.69%로 증가했다. 신동빈 회장의 지분율(5.34%)과의 격차를 1.65%포인트까지 줄이게 됐다.
이를 두고 재계 일각에서는 신동주 부회장이 향후 경영권 향배에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는 롯데제과에 대한 지배력 강화 차원에서 주식을 매입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아울러 롯데쇼핑과 호텔롯데의 상호출자 고리가 끊긴 것 또한 신동주 부회장의 입지를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신격호 회장의 시대가 다음 세대를 맞고 있다. 왕좌를 노리고 있는 왕자들의 치열한 경쟁이 롯데그룹 제2의 도약을 위한 '청사진'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태조가 태종을 기다리고 있다. 세종 시대를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