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희주기자] 세계 제조업 지표가 엇갈린 흐름을 보이면서 경기 회복 신호에 대한 갈피를 잡기가 어려워졌다.
세계의 굴뚝이라 불리는 중국의 제조업 경기가 위축세를 벗어나지 못했고, 유로존 역시 제조업 경기 확장세가 둔화됐다.
이러한 가운데 20일(현지시간) 발표된 미국의 마르키트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반등세를 연출하며 한줄기 희망을 보탰다.
◇먹구름 드리운 中-유로존 제조업.."독일 너마저도"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중국이다. 지난달 중국의 제조업 PMI는 6개월만에 위축세로 돌아선 뒤 2개월 째 위축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날 HSBC가 발표한 중국의 제조업 PMI 잠정치는 48.3를 기록해 7개월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시장 전문가들의 예상치 49.4에도 못 미치는 결과다.
고용지수는 46.9로 지난 2009년 2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보였고, 신규주문지수도 7개월만에 처음으로 위축세로 전환됐다.
업계에서는 중국 정부가 질적 성장에 집중하는 정책을 펼침으로써 제조업 경기 성장 모멘텀이 약화됐다고 평가했다.
중국 정부는 올해 국가 성장 모델로 수출이나 투자보다는 국내 소비지출을 확대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또 실물 수요가 둔화가 되고 위안화 강세 등이 제조업 경기를 위축세로 이끌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취홍빈 HSBC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중국 정책 당국은 올해 안정적인 성장세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미세 조정이 가능한 정책을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 HSBC 제조업 PMI 변동 추이(자료=HSBC, 뉴스토마토)
제조업 경기 둔화는 이제 유로존에서도 남얘기가 아니다. 넉 달째 이어졌던 유로존 제조업 경기의 확장세가 이달 들어 멈칫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기관 마르키트는 유로존의 2월 제조업 PMI 잠정치가 53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앞서 시장 전문가들은 직전월과 동일한 54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지만, 예상 밖에 둔화된 모습이다.
그간 유로존의 제조업 경기를 이끌어온 강대국 독일마저도 실망스러운 결과를 떠안았다.
독일의 제조업 PMI는 직전월 56.5에서 54.7로 하락했다. 앞서 지난 1월에는 32개월만의 최고치 56.5를 기록하며 제조업 강국다운 면모를 과시했지만, 이달 생산지수가 57.6으로 3개월만에 최저치를 기록하면서 전체 지수를 하락세로 이끌었다.
프랑스는 여전히 부진했다. 같은 기간 프랑스의 PMI는 위축세가 더 악화돼 48.5로 하락했다.
생산지수는 모처럼 확장세로 돌아서면서 7개월만의 최고치인 50.5를 기록했으나 신규주문지수가 5개월째 하락하고 고용지수 역시 4개월 연속 부진한 모습을 나타냈다.
시장 전문가들은 유로존 내에 아직 리스크가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실업률이 기록적인 수준을 이어가고 있는 데다가 물가상승률도 현저히 낮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제임스 호와트 캐피탈이코노믹스 이코노미스트는 "회복이 진행되고 있기는 하지만, 유로존이 위기로부터 빠져나오는 속도가 느려졌다"며 "유로존이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한 두가지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美 대도시 제조업경기..날씨 탓만 하기에는 심각해
이와는 달리 미국의 제조업 경기는 예상밖에 호조를 보였다. 이날 마르키트가 발표한 2월 제조업 PMI 잠정치는 소폭 하락할 것이라던 시장 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엎고 4년만의 최고치 56.7을 기록했다.
신규주문지수가 58.8로 집계되면서 2010년 5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에 올랐고, 생산지수도 3.7포인트 올라 57.2를 기록했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의 제조업 경기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뉴욕과 필라델피아 등 미국 제조업 경기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대도시의 지표는 모두 둔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발표된 필라델피아의 제조업 지수는 마이너스(-) 6.3으로 집계돼 아예 9개월만에 위축세로 돌아섰고, 지난 18일 뉴욕연방준비은행이 발표한 2월 엠파이어스테이트 제조업 지수도 4.48을 기록해 직전월의 12.51은 물론 사전 전망치 9.0에도 크게 못 미쳤다.
◇美 필라델피아 제조업 지수 변동 추이(자료=Y차트)
다음주 시카고 연은이 발표할 예정인 시카고 지역의 제조업 PMI 역시 직전월의 59.6보다 둔화된 58.2로 전망됐다.
일각에서는 비정상적인 한파의 영향으로 제조업 경기가 일시적으로 둔화된 것으로 풀이하고 있지만, 시장의 우려를 완전히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더글라스 보스윅 체프델레인외환 매니징 디렉터는 "이번 지표들은 재앙"이라며 "강세로 마무리됐던 지난해 말과는 달리 미국 경기가 모멘텀을 잃었다는 두려움이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추운 날씨가 경기 둔화에 한 몫 했겠지만, 내구재 생산과 고용부터 소매판매와 주택시장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부문이 위축된 사실의 인과관계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취약한 글로벌 경기 회복세 반증하나
반등의 기미 조차 보이지 않았던 이달 중국의 지표나 유로존의 둔화세로 인해 글로벌 경제 회복의 취약성이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왔다.
일부 전문가들은 중국 최대 연휴인 춘절의 영향으로 제조업 경기가 타격을 입었을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지만, 50개의 세부항목들이 뚜렷한 경기 위축세를 나타내 이 같은 의견은 힘을 받지 못했다.
제조업 강국 중국의 타격으로 주변 신흥국은 물론 유로존까지 연쇄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전망됐다.
폴 젬스키 ING 투자관리 대표는 "위축되는 속도로 보면 크게 충격받지 않아도 되지만, 세계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인만큼 하루 빨리 정상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로존 역시 걱정되기는 마찬가지다.
레나 코밀레바 G+ 이코노믹스 이코노미스트는 "유로존은 글로벌 수요에 충격을 줄 수 있는 가장 큰 리스크를 갖고 있다"며 "유로존 내 국가들의 격차도 세계 경제 회복세를 저해하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토르벤 카버 삭소캐피탈마켓 최고경영자(CEO)는 "그간 유로존이 회복세를 보여왔던 것은 사실이나, 매우 점진적인데다가 고르지 못한 모습이었다"며 "이번 PMI 지표로 유로존이 아직 위기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