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그 암덩어리 대통령이 만든 겁니다

입력 : 2014-03-13 오후 4:24:54
[뉴스토마토 이상원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규제개혁의 목소리를 연일 쏟아내고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 10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는 "규제는 우리의 원수, 우리 몸을 자꾸 죽여가는 암덩어리라고 생각해서 아주 적극적으로 들어내는 데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또 12일 무역투자진흥회의에는 "(규제완화를 위해) 사생결단을 하고 붙어야 한다"거나 "불타는 애국심,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까지 거론하며 공직자들을 독려했다.
 
도대체 왜 규제가 '원수', '암덩어리'라고 불리게 된걸까.
 
물론 불합리한 규제는 없애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그 수많은 규제를 누가 만들었는지를 우선 돌아본다면 박 대통령의 발언은 그 수위가 과하다 못해 부적절한 수준이다.
 
박 대통령이 말하는 규제는 국민과 기업의 활동에 제한을 가하는 행정적인 조치들인데, 법령과 각종 행정규칙들이 그것이다.
 
법령과 행정규칙은 누가 만드느냐. 행정부와 입법부만이 생산할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 역시 같은 맥락에서 규제를 생산한다.
 
법률과 시행령, 시행규칙, 훈령, 고시 등 한해에도 수십 수백건의 규제가 정부와 국회에 의해 생산되고 있다.
 
국회에서 정치권이 입법해서 생산하는 규제들도 있지만, 특히 행정부에서 국회의 동의없이 생산할 수 있는 시행령과 시행규칙, 훈령, 부령 등의 규제는 국민체감도가 더 높은 규제에 해당한다.
 
물론 이런 규제들도 쉽게 한 번에 만들어지진 않는다.
 
법률의 입법절차를 보면 반드시 민간에 입법예고를 거치고 규제영향평가도 받아야 한다. 그리고 법제처 심사, 차관회의, 국무회의, 대통령의 재가를 거쳐 국회에 제출된 후 국회의 동의를 거쳐야만 공포될 수 있다.
 
시행령 역시 입법예고와 규제심사를 거쳐 법제처심사, 차관회의, 국무회의, 대통령재가, 공포의 순서를 거친다.
 
각 부처에서 생산사는 부령 역시 입법예고와 규제심사, 법제처심사를 거친다.
 
이미 규제를 심사하는 과정은 충분히 돼 있다. 불합리한 규제를 없애고자 한다면 이 과정에서의 문제점을 따져봐야 할 것이다. 아울러 왜 당시에 그 규제가 필요했었는지도 따져봐야 할 것이다.
 
모두 행정부의 규제심사를 거쳐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인데, 행정부의 최고 수장인 대통령이 스스로 만든 규제들에 대해 '암덩어리'나 '원수'를 운운하는 것은 너무 우스운 일 아닌가.
 
더군다나 시행령은 이름까지 '대통령령'이고, 모든 법률과 시행령은 국무회의를 거쳐 대통령이 사인을 해야만 만들어질 수 있다.
 
무려 5선 의원 출신인 박 대통령이 20년간 국회의원생활을 하면서 직접 발의한 규제법안은 없다고 가정하더라도 동료 의원들의 입법안에 공동서명한 규제법안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만든 것을 자신이 혁파하겠다고 외치는 것은 그야말로 모순(矛盾)이다.
 
이미 만들어진 규제라도 문제가 있다면 당연히 고쳐야 한다. 그러나 자신이 만든 것을 없애면서 이처럼 과하게 생색을 내는 것은 좀 낯뜨겁지 않으신지.
 
이번 발언들은 사전에 비서진들이 준비해 놓은 원고에는 없는 발언이라고 한다. 평소 수첩에 적힌 것만 읽으실 땐 느끼지 못했던 과감함이 많이 느껴지는 이유가 그 때문이겠지만, 이쯤되면 차라리 그냥 읽으시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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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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