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수연·김병윤 기자] 국민연금의 '주주행동주의(Shareholder Activism)' 움직임이 심상찮다. 주요 상장사들의 주주총회가 예정된 14일 '슈퍼주총'에서 국민연금이 의결권 강화에 따라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증권가에서는 국민연금의 의결권 강화를 기업투명성과 주가상승 제고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운용주체를 독립기구로 분리해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반면 재계에서는 기업의 경영안정성을 저해할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다. '관치'로 얽혀있는 국민연금 자체의 지배구조를 먼저 개선해야 한다는 반발도 제기됐다.
◇기업투명성·주가수익률 제고 '긍정적'
지난 28일 발표된 '2014년 국민연금기금 의결권 행사지침 개정안'의 핵심은 주주권 강화다.
의결권 주체는 기금운용본부와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로 새롭게 구성됐다. 기본적으로 기금운용위원회는 의결권행사지침에 따르고, 의결권행사지침에 따른 판단이 어려운 안건에 대해서만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 내부에서 결정하게 된다.
이들은 이사회 출석률 등을 따져 선임반대 조치 등을 결정한다. 다만 당초 예정됐던 횡령과 배임을 저지른 이사 선임에 대한 반대 내용은 재계의 반발에 부딪혀 제외됐다.
최근 국민연금은 의결권 강화 이후 실제로 실력 행사에 나섰다. 지난 6일 만도의 2대주주인 국민연금은 증자를 통해 모기업인 한라건설을 편법 지원하고 기업가치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만도 대표이사 재선임에 반대했다.
만도 측은 "증자 이후 오히려 주가가 올라 주주가치가 훼손된 것은 아니다"라며 반발했지만 국민연금기금 의결권 행사 전문위원회 측은 "향후에도 이같은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사안이 발생했을 경우 적극적으로 개입하겠다"고 밝혔다.
의결권 강화에 대해 증권가에서는 일단 반기는 분위기다. 적극적인 감시를 통해 기업투명성을 강화하고 주가상승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영곤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국민연금의 주주권 강화는 주주권익 침해에 대한 감시 강화, 대기업 오너들의 배임·횡령 혐의, 부실 계열사 편법지원 등을 방지하는데 긍정적"이라며 "기업의 내부유보금 사용 측면에서 정부의 경제민주화와 고용창출·내수진작이라는 정책방향에도 부합한다"고 설명했다.
◇해외 주요 공적연기금의 주주권 행사 내용(국민연금실무평가위원회·한국경제연구원)
그동안 국민연금은 지나치게 주주권 행사에 소극적이었다. 주주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꾸준히 제기돼왔지만 번번히 좌절됐다. 현재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내용은 '의결권 행사'가 유일하다. 주주관여, 주주제안, 주주소송 등 미국과 캐나다 공적연기금이 행사하는 주주권 내용들은 모두 배제돼 있다.
박경서 고려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도 "그간 국민연금은 시장의 이해관계 상충으로 기업들의 눈치보기식의 의결권 행사가 주를 이뤘다"며 "최근의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행보는 기업의 경영감시를 강화해 경영투명성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는 주가 수익률 제고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할 것으로 예상된다. '캘퍼스 효과(CalPERS)' 효과는 흔한 외국 비교사례로 인용된다. 미국 최대 공적연금 캘퍼스의 포커스 리스트(감시기업 선정)에 오른 기업들의 주가는 최근 30년 사이 큰 폭으로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김재칠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민연금은 일단 기본적으로 '재정안정화'와 '수익최대화'를 목표로 한다"며 "적절한 주식투자로 기업가치를 높이면 자연스럽게 주가상승에 반영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해외사례와 비교하기에는 국민연금의 특성이 다르다는 지적도 있다. 캘퍼스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부분적인 자산을 운용하는 특정 직종을 위한 연금이고,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국민연금과는 차이가 있다는 설명이다.
◇경영안정성 저해 우려..운용본부 독립은 '양날의 칼'
재계에서는 이같은 지나친 주주강화가 경영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운용의 기본취지인 '수익극대화'에도 어긋난다는 의견이다.
이영곤 연구원은 "능동적 주주권을 광범위하게 행사할 경우 민간기업들의 경영권을 심각히 침해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한 기업경영 위축과 자본시장 왜곡의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422조원에 달하는 운용기금을 앞세워 정부가 간접적으로 힘을 행사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민영화 공기업이나 금융지주회사의 사외이사 선임 등에 공공연히 입김을 행사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국민연금 지분 투자 상위기업(2014년 3월 12일 기준)(출처:금융감독원·하나대투증권)
이상철 한국경영자협회 사회정책팀장은 "기본적으로 주주는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는다"며 "하지만 지금 문제는 반기업 정서나 정치적인 측면으로 연기금들이 의결권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기금운용본부를 하나의 기구로 독립시켜야 한다는 의견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정부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의사결정을 보다 합리적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형구 고려대 경영학부 교수는 "핵심은 연기금의 독립성 보장 여부"라며 "기업 투명성 제고·주가 영향 등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연기금이 독립적으로 자신들의 의견을 표명할 수 있는지가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운용본부 독립은 그 자체로 '양날의 칼'이 될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다. 전문성이 결여된 인사들로 이뤄진 운용본부의 심의로 자칫 '수익성 극대화'라는 기본적인 취지가 무너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국민연금에는 연기금심의위원회라는 의사결정기구가 있다. 실제 이들은 대부분 관리 출신으로 재무적인 지식이 부재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들 중 일부는 실제로 주식투자나 위험자산에 대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재칠 연구위원은 "현재 국민연금은 투자회사의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하고 있는 정도에 그쳐 이를 사실상 전문적으로 분석하는 정도까지 가지 못한다"며 "독립성 확보에 앞서 내부 구성원들이 재무능력을 확보한 인력들인지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는 "순수하게 운용본부가 국민연금 기금운용이라는 취지에 맞는 재정안정성과 분석력을 전제로 할 때만, 독립성이 보장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