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美, 푸틴 돈줄 죈다..러시아, 역공 개시

오바마, 두 번째 칼 꺼내 들어..20명 추가 제재
푸틴, 에너지 판로 다양화·핵 협상 카드로 '반격'

입력 : 2014-03-21 오후 3:48:34
[뉴스토마토 윤석진기자] 미국이 우크라이나 주변을 무력으로 점거한 러시아를 상대로 2차 제재에 들어갔다.
 
'푸틴의 친구들'로 알려진 정치인사들과 그들이 자주 찾는 은행을 제재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본토와 동유럽 일대를 휘젓고 다니지 못하도록 막겠다는 의도다.
 
유럽연합(EU)도 1, 2차에 이은 3차 제재로 미국과 함께 블라디미르 푸틴 정부를 계속해서 압박할 계획이다.
 
이에 러시아는 서방측의 안보·경제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이란과의 핵협상과 에너지 공급 문제를 걸고넘어졌다. 또 9명의 미국 정치인들에 대해 비자 발급을 중단하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서방과 러시아의 공방전이 이대로 지속된다면 양측 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바마, 두 번째 칼 꺼내 들어..러시아 핵심인사 20명 '제재'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사진)은 20일(현지시간)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안을 발표했다. 이번 제재안에는 16명의 정부 관료와 푸틴 대통령의 측근 4명이 추가됐다.
 
(사진=로이터통신)
이바노프 대통령 행정실장, 블라디미르 야쿠닌 러시아철도공사 사장, 세르게이 미노로프 전 상원 의장 등이 제재 대상에 포함됐다.
 
세계에서 4번째로 큰 원유 공급업체를 이끄는 겐나디 킴첸코 볼가 그룹 회장도 블랙리스트에 들어갔다. 고위 관료들이 개인 금고처럼 이용한다는 뱅크 로시야도 제재 대상으로 지목됐다.
 
러시아가 서방의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크림반도의 귀속 절차를 밟아가고 있기 때문에 제재를 강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러시아 하원은 크림 공화국의 러시아 합병 조약을 통과시켰다. 이제 오는 21일 상원의 승인을 거쳐 푸틴이 사인만 하면 크림은 러시아 땅이 된다.
 
EU와 오바마 대통령이 크림의 러시아 복속에 강력하게 반대하며 각종 제재를 단행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셈이다.
 
지난 17일 오바마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의 측근과 야누코비치 우크라이나 전 대통령 등 11명의 자산을 동결하고 여행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내린 바 있다.
 
이에 러시아 고위 관료들은 코웃음을 쳤다. 1차 제재 때 11명 안에 포함됐던 드미트리 로고진 러시아 부총리는 "나는 해외에 어떠한 자산이나 계좌를 가지고 있지 않다"며 "미국의 제재안은 장난꾸러기가 벌인 일 같다"고 비웃었다.
 
러시아가 서방의 제재에도 꿈쩍하지 않자 EU도 추가 제재안을 마련 중이다. EU는 지난 19일에 열린 EU 정상회담에서 러시아 합병을 추진한 인사 12명을 새롭게 제재 대상에 포함하기로 했다.
 
지난 17일에는 21명을 제재키로 한 바 있으니, 지금까지 총 33명이 블랙리스트에 오른 것이다. 또 EU는 오는 6월 러시아 소치에서 열리기로 한 주요 8개국 정상회담(G8)을 취소하는 한편 필요에 따라 제재 대상을 늘릴 수 있다고 경고까지 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상황이 악화되면 언제든지 3차 제재에 들어갈 것"이라며 "다음 제재 때는 경제 제재가 포함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러시아, 에너지 판로 다양화·핵 협상 카드로 '반격'
 
서방의 제재 수위가 높아지자 러시아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러시아는 상대가 경제 제재로 압박해 들어오자 동일한 방식으로 맞대응하고 있다.
 
먼저 러시아가 꺼내 든 카드는 에너지 판로 다양화다. 파이낸셜타임즈(FT)는 20일자 신문에서 러시아 석유회사들이 유럽 수출 의존도를 낮출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러시아 국영석유회사 로즈네프티는 아시아 시장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 회사의 회장 이고르 세친은 직접 일본 도쿄에서 열린 투자포럼에 참석해 투자를 호소하기도 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러시아산 원유의 75%는 유럽으로 수출된다.
 
그런데 최근 셰일오일 혁명으로 막대한 양의 원유를 생산하게 된 미국이 유럽에 에너지를 공급하겠다고 나서면서 러시아의 마음이 급해졌다. 유럽이 당장은 수입처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장기적으로 러시아의 국부가 줄어들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에너지 사업은 러시아 정부의 주요 외화벌이 수단이다. 석유와 천연가스 수출은 전체 수출의 70%, 연방정부 재정수입의 52%나 차지한다.
 
푸틴(사진) 정부에서도 아시아를 기회의 땅으로 보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에너지전략
(사진=로이터통신)
2035'를 수립하고 20년 동안 아시아를 상대로 한 원유판매를 지금의 두 배로 늘리기로 했다. 천연가스 판매는 다섯 배 늘릴 계획이다.
 
블라디미르 포타닌 노릴스크 최고경영자(CEO)는 "어떻게 서방의 제재에 대응할지 고민 중"이라며 "중국을 중심으로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는 극동 아시아 시장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러시아 정부는 서방의 고위 인사 제재에 동일한 방식으로 맞대응했다. 이날 러시아 외무부는 공식 성명을 내고 "9명의 미국 인사들에 대한 비자 발급을 금지한다"고 밝혔다.
 
명단에는 존 베이너 하원의장, 해리 리드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 존 매케인 상원의원, 로버트 메넨데즈 상원 외교위원장 등이 포함됐다.
 
러시아는 또 미국과 유럽이 껄끄러워하는 중동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인테프팍스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외무부는 지난 19일 이란 핵협상에서 기존의 입장을 바꿀 수 있다고 발표했다.
 
현재 러시아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5개 상임이사국 중 하나로 독일을 포함한 'P5+1' 자격으로 이란과 핵 개발 중단 협상을 진행 중이다. 러시아는 그동안 서방의 요구를 반영해 이란의 핵개발에 반대해왔다. 그러다 크림사태로 양측 간 관계가 악화되자 이란의 핵 개발을 지지할 수도 있다며 으름장을 놓는 것이다.
 
이란의 핵 보유는 미국의 우방인 이스라엘과 중동의 안보에 엄청난 위협이기 때문에 미국이 막으려 하고 있다.
 
세르게이 랴브코프 러시아 외무차관은 "우리도 궁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핵 문제를 이용하고 싶지 않다"며 "그러나 크림 문제로 서방과의 긴장감이 고조된다면 러시아는 입장을 바꿀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서방 VS 러시아..남는 건 동반 경기침체뿐
 
이런 가운데 크림반도를 얻기 위한 서방과 러시아의 공방전이 이어지면 양측 경제에 엄청난 피해를 줄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이러한 우려를 확인시켜 주듯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는 러시아 신용등급 전망을 하향 조정했다.
 
이날 S&P는 러시아 국가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췄다. S&P는 "러시아의 크림 반도 합병으로 지정학적 리스크가 높아지고 있다"며 "미국과 EU의 경제 제재 가능성으로 투자금 유입이 줄어들어 이미 취약한 러시아 경제 성장세가 추가로 둔화될 수 있다"고 강등 이유를 설명했다.
 
아울러 S&P는 올해 러시아 경제성장률을 종전의 2.2%에서 무려 1%포인트 줄어든 1.2%로 하향 조정했다. 경기 하락세를 종료하고 올해 부터 반등할 것이란 기대감이 여지없이 무너진 상황이다. 러시아의 평균 국내총생산 성장률은 3.8%다. 최근 러시아는 1%대 성장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 2008~2013년 3분기 성장률 추이 (사진=트레이딩이코노믹스)
 
국제부흥개발은행(IBRD)도 비슷한 예상을 내놨다. IBRD는 보고서를 통해 "앞으로 러시아가 서방의 추가 제재를 받지 않는다 해도 지금까지의 리스크 만으로도 향후 2년 동안 1%포인트 성장률이 내려갈 것"이라고 밝혔다.
 
S&P와 IBRD는 러시아 경기 하락 이유로 외부 투자 부진을 꼽았다. 글로벌 자금이 러시아를 이탈하면 그동안 정부가 추진해 온 인프라·기간시설 구축 등 경제개혁의 동력이 사라진다.
 
사실 러시아 경제 부진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측에도 적지 않은 해를 끼친다. 서방 은행들이 러시아 정부와 기업에 엄청난 돈을 빌려줬기 때문에 러시아 경제가 악화되면 은행들도 타격을 입을 수 받게 없다.
 
러시아 중앙은행에 따르면 러시아의 외채는 지난해 7320억달러로 집계됐다. 그 중 2000억달러는 최근 2년 동안에 생겨났다. 경제 개혁 명목으로 러시아에서 엄청난 자금을 끌어 쓴 것이다.
 
국제 결제은행(BIS)에 따르면 2013년 9월 기준으로 유럽은 러시아에 1840억달러를 빌려줬다. 이는 유럽 은행 총 자산의 0.4%에 해당하는 규모다. 미국은 은행 총자산의 0.25%를 차지하는 370억달러를 꿔줬다.
 
러시아 최대 철광석 기업 메탈로인베스트는 프랑스 더치스뱅크, 이탈리아 유니크레딧, 네덜란드 ING그룹에서 11억5000만달러를 빌렸다.
 
가디언은 "러시아에 돈을 빌려준 은행들은 이미 손해를 보고 있다"며 "우크라이나 사태가 더 악화된다면 피해 규모는 더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오는 5월25일에 열리는 우크라이나 대선까지 서방과 러시아의 제재 주고받기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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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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