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석진기자]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제재로 러시아 경제가 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23일(현지시간) 러시아 국영은행 VTB 캐피털 등 글로벌 은행들은 세계 9위 경제국인 러시아가 서방의 제재로 적어도 두 분기 동안 침체를 경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크림반도 편입 과정에서 경제에 불확실성이 커져 자금 유출이 가속화되고 채권금리는 올라갈 수 있다는 분석이다.
러시아가 서방의 각종 제재 조치에도 크림 복속 의지를 굽히지 않고 군사 개입을 지속하자 이 같은 우려는 더욱 커졌다.
우크라이나 중앙정부는 국경선에 러시아 군 병력 수천 명이 주둔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크림의 수도 심페로폴리 인근에 있는 공군기지는 이미 러시아 군의 수중에 들어갔다.
◇공군기지를 점령한 러시아 군(왼쪽)과 우크라이나 병사 한 명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로이터
통신)
VTB 캐피털 관계자는 "블라디미르 푸틴의 측근 몇몇뿐 아니라 특정 분야 전반에 걸쳐 서방의 제재가 확산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러시아 재무부도 크림사태에 따른 제재로 자국 경제가 어려움에 처할 것이란 견해에 동의하고 있다. 안톤 시루아토프 러시아 재무장관은 "경제 제재로 러시아 금융 시스템에 타격이 없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고백했다.
실제로 러시아 금융권은 크림 악재로 이미 큰 타격을 입었다.
러시아 시장에 불확실성이 급증하자 불안감을 느낀 외부 투자자들이 자금을 급하게 회수하기 시작하면서 통화 가치와 증시가 동반 하락했다.
달러·루블화 환율은 올 들어 약 10%나 상승했다. 달러 대비 루블화 가치가 그만큼 내려갔다는 뜻이다.
러시아 증시 메섹스 지수도 곤두박질쳤다. 이 지수는 올해 들어서만 무려 13.1%나 빠졌다. 같은 기간, MSCI 신흥시장 지수가 5.8% 내리는 데 그친 것과 대조된다.
◇올해 1월~3월 21일 러시아 증시 추이 (자료=트레이딩이코노믹스)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러시아 금융당국은 급하게 기준금리를 올렸다. 지난 3일 러시아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종전의 5.5%에서 1.5%포인트 오른 7%로 전격 인상했다.
그러나 금리 인상 효과로 불안에 떠는 투자자들의 발걸음을 돌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전문가들은 러시아 금융당국의 노력에도 경제 불안감은 쉽사리 가시지 않으리라고 내다봤다. 오히려 이들은 자금 이탈이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캐피탈이코노믹스는 올 1분기에만 자금 유출이 7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 한 해 통틀어 630억달러가 유출된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자금이 빠져나가는 것이다.
미르치아 게오아나 동유럽 경제 전문가는 "경제·지정학적 신냉전이 시작됐다"며 "적어도 2~3년간 경제 불안이 지속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