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병윤기자] "내가 주주총회에 왔는지, 직원총회에 왔는지 모르겠다."
지난 28일 열린 신일산업 주주총회 현장에서 만난 한 주주의 말이다.
적대적 M&A와 경영권 분쟁으로 시장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신일산업 주주총회가 그들만의 리그로 막을 내렸다.
주총장을 급히 마련하면서 주주들이 앉을 자리조차 턱없이 부족했다. 주총 현장의 앞자리 대부분은 신일산업의 직원들이 널찍이 차지하고 앉아 정작 주주들이 앉을 공간은 없었다. 주주들이 자리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신일산업 직원들과 마찰이 빚어지기도 했다.
주주들을 더욱 당황스럽게 만든 것은 김영 신일산업 대표이사에게 발언권을 달라며 외치는 주주들을 대하는 신일산업 직원들의 강압적 태도였다. 신일산업 직원들은 "감히 회장님께서 말씀하시는데 방해하냐"고 주주들에게 소리를 질렀고, 한 직원은 손을 들고 발언권을 달라는 주주에게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이날 주총은 예정된 9시가 훌쩍 지난 10시15분이 돼서야 시작됐다. 회사 측이 인수 의향을 밝힌 황귀남씨 측이 제출한 위임장 일부를 인정하지 않아 양측의 실랑이가 지속됐기 때문이다.
황씨 측이 회사에 제출한 다른 주주들의 위임장에는 '회사에 제출한 자신의 위임장을 취소하고, 황귀남씨 측에 내 권한을 위임한다'는 문구가 삽입돼 있음에도 회사 측은 주주의 의사가 불분명하다며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실랑이가 길어지자 주총 장소 안에 있던 주주들이 실랑이가 벌어진 곳으로 나와 해당 주주들에게 직접 전화해서 확인하라고 외쳤지만 회사 측은 이를 듣지 않았다.
회사 측은 “황귀남씨 측이 수원지방법원에 감사인 지정 요청을 했다”며 “회사 측과 황귀남씨 측 법적 대리인 2명씩 문제가 되는 주주 위임장을 검토하자”는 중재안을 제시했다.
지지부진한 상황은 결국 회사 측이 직접 해당 주주들에게 전화를 걸어 황귀남씨 측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확인하고서야 끝났다.
◇신일산업 직원이 황귀남 주주를 지지한 주주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의사를 재차 확인하고 있다.
진통 끝에 시작된 주주총회에서 김영 주주총회 의장(신일산업 대표이사)은 의결권 가능 수를 언급하고 주총 개회를 선언했다.
황씨 측은 본격적인 투표 시작 전 "김영 대표이사가 보유한 420만주 중 300만주의 행방이 불투명하다"며 김영 대표이사의 주식 중 일부가 의결권이 제한된다고 주장했다. 행방이 불투명한 300만주 중 150만주는 신한은행에 담보로 제공돼 대출을 받았고, 나머지 150만주는 SC제일은행에 담보로 제공돼 대출을 받은 것이다.
신한은행 담보제공 건은 공시가 됐지만 SC제일은행의 150만건은 공시가 안 돼 공시위반으로 의결권이 제한될 뿐더러 300만주 담보 제공으로 대출받은 자금이 김영 대표이사가 우호지분 확보로 쓰였을 가능성이 있다는 게 황씨 측 주장이었다.
황씨 측은 회사 측에 답변을 요구하며 투표를 진행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김 의장은 일단 투표를 진행하고 나중에 법적인 문제가 있는지 확인해 보겠다며 의결권 가능 주식 수를 밝히고 주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투표 개시를 선언했다.
곧이어 황씨가 제안한 정관변경의 안에 대한 투표가 시작됐고, 황씨 측과 회사 측이 표를 직접 확인하면서 주총장의 긴장감은 고조됐다.
결과는 나온 듯 보였지만 회사 측이 한참을 의논하면서 발표는 미뤄졌다. 그런데 갑자기 김영 의장은 '자본시장법 5%룰' 세부 사항을 거론하며 황씨 측의 지분 중 일부의 의결권이 제한된다고 밝혔다.
황씨 측이 발언권을 달라며 즉각 반발했고, 이에 동조하는 일부 주주들은 근거를 댈 것을 요구했다.
이에 김 의장은 "황귀남씨와 일부 주주들 간의 특수관계가 의심된다"며 "감사법인 두 곳에 문의를 한 결과 그럴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다리는 주주들이 있으니 주총을 빨리 진행해야 한다"며 더 이상의 발언권 요청을 외면했다.
주주 중 황귀남씨와 특수관계인 의심을 받아 의결권을 제한당한 구우승 성진하이테크 이사(신일산업 지분 5.2% 보유)는 황당하다는 입장을 내보였다.
그는 "요즘 은행 금리가 너무 낮아 회사자금의 투자를 주식으로 선회했다"며 "본사는 김해에 있지만 지점이 천안에 있어 신일산업 천안공장 증설로 관심을 갖고 투자를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회사 측이 무슨 근거로 저런 소리를 하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결국 황씨 측 의결권 행사 가능권 중 약 10%가 제한되면서 사실상 주주총회는 신일산업 뜻대로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