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부끄러운 회장님

입력 : 2014-04-07 오후 2:45:56
귀를 의심했다. 그래서 재차 확인했다. 이어지는 한숨. 그리고 답답함.
 
납득이 안됐다. 동부그룹 설명을 아무리 곱씹으며 읽어봐도 이런 류의 인사를 단행할 이유가 없어 보였다. 굳이 찾는다면 김준기 회장과의 친분이다.  
 
최연희. 그가 누구인가. 2006년 한나라당 사무총장 재직 당시 성추문으로 물의를 빚어 당을 떠나야 했던 장본인이다. 당시 출입 기자들과의 술자리에서 여기자 가슴을 만져 파문이 일자 “식당 여주인인 줄 알았다”고 해명해, 전국의 식당 아주머니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다.
 
지방선거를 눈앞에 둔 상황에서 민심이 들끓자 한나라당은 최 의원을 국회 윤리위원회에 제소하기에 이른다. 여성 의원들을 중심으로 당내 비토 소리가 끊이질 않자 박근혜 대표가 공식 사과에 나서는 등 그의 일탈로 한나라당은 최대 위기를 맞아야만 했다.
 
결국 최 의원이 모든 당직을 내려놓고 탈당함으로써 사태가 진정 국면에 접어들지만 이는 사실상의 출당 조치였다. 반성은 그때뿐이었다. 갖은 비난을 무릅쓰고 무소속으로 2008년 18대 총선에 출마, 지역구인 강원 동해·삼척에서 당선되면서 지역 터줏대감임을 입증했다.
 
어렵사리 정치생명을 연장하며 4선 고지에 올랐지만 결과는 비참했다. 지난해 대법원으로부터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벌금 500만원과 추징금 2000만원의 원심이 확정되면서 향후 5년간 피선거권을 박탈당했다. 69세의 적지 않은 나이를 감안하면 더 이상 정치인으로서의 재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런 그가 황혼을 동부그룹에서 맞게 됐다. 그것도 건설과 농업·바이오 분야를 관장하는 회장 직책이다. 동부그룹은 “최 회장은 김준기 회장과 같은 동향으로, 김 회장과는 유년 시절부터 오랜 교분을 맺어왔다”고 설명했다. 강원도의 힘인가. 불어 닥칠 역풍을 감내하고서라도 강행할 명분으로서는 부족해 보인다.
 
민간기업의 인사인 만큼 철저한 자율권과 독립성이 보장되는 터라 이를 놓고 외부에서 왈가왈부하기는 싫다. 그러나 김준기 회장과의 깊은 인연이 최 전 의원이 동부그룹 회장 명패를 갖는 이유가 돼서는 안 될 일이다. 이는 그룹 전체의 자괴감을 낳는 악재다.
 
더구나 동부그룹은 현재 극심한 재정난에 직면, 채권단으로부터 고강도의 구조조정 압박을 받고 있는 위기 상황이다. 조직의 응집력을 모으고 위기를 헤쳐 나갈 수장이 성추행에, 궤변에, 불법 금품수수 전력이 있는 이라면 어느 누가 따를 것인가. 
 
게다가 정계 은퇴 이후 몸담았던 동양그룹은 유동성 위기 끝에 공중분해되며 부회장직을 내려놔야 했다. 그의 화려했던 검찰과 국회 이력은 더 이상 보험용으로도 활용하기 쉽지 않다는 게 재계 중론이다. 이력도 이력 나름이다.
 
인사가 모든 것을 흥하게 할 수도, 망칠 수도 있다. 동부그룹의 윤리경영 의지는 땅에 떨어졌다. 한 직원의 말로 조직 전체가 느낄 수도 있을 비통함을 대신한다. "밖에 나가서 명함을 어찌 내밀어야 할 지 벌써부터 고민입니다."
 
김기성 산업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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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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