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미애기자] 삼성생명법으로 불리는 보험업법 개정안이 진통 끝에 발의됐다.
보험사의 계열사 지분보유 한도를 공정가액(시가) 기준으로 바꾸자는 내용으로, 삼성그룹의 현 순환출자 구조를 뒤흔들 수 있어 개정 여부를 둘러싸고 재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현행 보험업법은 보험사가 자사의 대주주나 계열사의 유가증권을 보유할 때 보유한도를 총자산의 3%까지로 제한하되, 유가증권을 사들일 당시의 '취득가액'을 적용 기준으로 규정하고 있다.
반면 개정안은 보험사가 계열사 주식이나 채권을 보유할 때 시장가를 기준으로 계산토록 해 보유한도를 초과한 회사는 5년 안에 이를 매각하도록 규정했다.
◇개정시 삼성생명, 삼성전자 지배력 약화 불가피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등 국회의원 14명은 지난 7일 보험회사 자산운용비율 규제를 손보는 보험업법 개정안을 공동 발의했다. 발의 과정에서 삼성의 대관력이 집중된 것으로 전해지면서 한차례 논란이 이는 등 진통을 거듭했다.
개정안대로 통과될 경우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곳은 삼성생명이다. 24개 생명보험사 가운데 삼성생명 외에는 총자산 대비 주식 비중이 5%를 넘는 곳이 없다. 때문에 정·재계에서는 이번 개정안을 삼성생명법으로 통용하기도 했다.
실제 삼성생명을 축으로 삼성전자 등 주요 계열사를 총수 일가의 지배 하에 두는 삼성으로서는 매우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삼성생명은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삼성전자(지분 7.6% 보유) 등 계열사 주식 14조원어치를 유예기간인 5년 안에 팔아야 한다. 이는 곧 삼성생명 지분을 20% 넘게 소유한 이건희 회장의 삼성전자 지배력이 약화됨을 의미한다.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삼성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삼성그룹의 환상형 순환출자 지배구조가 급격히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금산분리 강화의 효과도 배가된다.
무엇보다 최근 삼성SDI와 제일모직에 이어 삼성종합화학과 삼성석유화학을 합병하며 계열사 단순화 작업과 함께 경영권 승계 작업에 착수한 삼성으로서는 밑그림을 다시 짜야 할 만큼 대형악재가 아닐 수 없다.
◇보험회사의 자산 및 부채구조(2013.12 현재), 단위:백만원,%.(출처=금융감독원)
◇삼성생명 "보험업 특성 이해해야"
현행 보험업법이 대기업 금융사가 자사의 대주주나 계열사 지분을 보유할 때 자기자본의 3%까지만 허용하도록 규정한 것은 금융계열사가 고객 돈을 이용해 다른 계열사를 지배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또 은행과 증권 등 대부분의 금융업종은 시장가격을 기준으로 자본비율을 제한하는데 비해 보험업만 취득가격을 기준으로 하고 있어 형평성 문제도 내포하고 있다.
특히나 이런 예외 규정으로 혜택을 보는 경우는 삼성생명이 유일해, 현행법을 두고 시민사회 등 재야 쪽에서는 계열사 주식 보유량이 많은 삼성생명을 위한 '특혜'이라는 비판을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다.
반면 보험사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는 반론도 있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보험사는 1~2년 단기 운영이 아니라 30∼40년 동안 고객과의 계약을 유지해야 하는 특성상 단기수익을 추구하는 은행·증권사와는 명확히 구분돼야 한다"고 반발했다.
이 관계자는 "보험사는 자산을 장기로 운용하는데, 유가증권을 시가에 따라 수시로 오르락내리락 한다면 자산 운용의 안정성을 어떻게 보장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또 "보험사가 다른 계열사 유가증권을 다른 금융사와 동일하게 시가로 팔게 한다는 것이 장기적으로 운용하는 보험의 특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게 아닌가 한다"며 "과거에 취득한 주식을 법이 바뀌어서 현재의 시가로 평가해 3% 넘는 부분을 강제로 매각하는 것은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시장 공정성에도 문제가 있다"고 항변했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 관계사 지분의 강제 매각이 이뤄진다면 삼성전자 등 대표기업의 경영권이 외국에 넘어갈 우려도 있다"고 덧붙였다. 삼성은 지배구조와 관련해 그룹 차원의 공식적 입장은 밝히지 않고 있다.
◇야권·시민단체 "삼성 특혜..형평성 맞춰야"
반면 야권 성향의 대다수 시민단체는 형평성을 맞추기 위한 조치로서 개정안에 공감한다는 뜻을 밝혔다.
경실련 관계자는 "그동안 삼성만이 특혜를 받아온 게 사실"이라며 "형펑성을 맞추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의 지배구조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도 이 관계자는 "현재 삼성의 지배구조가 바람직하지 않다"며 "총수 일가의 지분이 극히 낮은데도 순환출자에 의한 지배구조를 이어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좋은기업지배연구소 측 또한 "보험업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삼성의 지배구조에 영향을 주는건 맞다"면서 "보험업법 기본개념은 자산 운용을 잘해서 보험 계약자들에게 이익을 돌려주라는 것이다. 이건희 회장의 지배구조를 위해서 보험 계약자들이 희생을 해야 하느냐는 반론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취득원가를 적용하다 보니 분모가 상승함에도 분자 값이 고정돼 사실상 자산운용비율 규제의 유효성을 훼손하고 있다는 주장도 더해졌다.
이어 이 관계자는 "5년 유예를 두기 때문에 급격하게 시장의 변화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면서 "삼성의 입장에선 5년 안에 지분을 팔거나 다른 곳에서 사야 되는 거라서 부담이 있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당연히 져야 되는 부담"이라고 말했다.
야권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개정안 발의를 주도한 이종걸 의원은 8일 삼성 측 반론 등 일각의 우려에 대해 "외국인에게 지배 의결권이 넘어갈 수 있다는 반론들이 있는데 삼성전자의 주주구성을 보면 그런 걱정은 가능성이 없는 기우"라고 일축했다.
또 "5년 유예기간을 두는 등 여유 규정을 뒀다"며 "법 처리 과정에서 또 다른 사회적 의견이 있고, 타당하다면 충격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충분히 논의할 수 있다"고 완화 가능성을 열어놨다.
일단 개정안은 발의됐지만 법안 심의 과정은 안갯속이다. 상임위 전체회의에 상정되더라도 15일의 숙려기간을 거쳐 법안심사소위원회로 넘겨지므로 빨라야 6월 임시국회에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새누리당이 강하게 반대에 나설 것으로 보여 현 의석구조상 본회의를 통과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개정안의 최종 운명까지 삼성의 부담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